[몸 한끼, 맘 한끼] ⑤ 두 번째, ‘내 그릇에는요’ 작품 인터뷰

껍질을 벗기고 툭툭 썰고 달달달 볶다가 푹- 끓여냅니다. 요리를 마치면 접시 위에 가지런히 올린 후 식탁에 내어 나가요.

나 자신을요.

자연 안에서 본성을 안고 태어났지만, 어디 그렇게 살 수가 있나요. 나 자신을 다듬고 쳐내고 볶아내고, 속 끓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나라는 고유한 향을 덮어버리는 향신료를 치기도 해야 해요. 주어진 상황에 맞게 나를 조리해서 세상에 내어놓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본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어버리게 돼요. 그래서 조금 슬퍼지죠.

▲ 둘째날 ‘내그릇에는요’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 이현지
▲ 나를 상징하는 음식을 찾아 음식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 이현지

[몸 한끼, 맘 한끼] 세 번째 시간에는 ‘음식자화상’을 그려보았습니다. 나라는 그릇에 담을, 나를 상징하는 음식을 그리는 시간이었어요. 달콤하다/맵다/짜다/말랑하다/부드럽다/텁텁하다 등 맛과 식감의 표현을 찾아보고, 이를 나의 성격을 서술하는 표현과 연결하여 상징 음식을 찾았습니다. 실제로 맛과 식감의 표현은 사람의 성향을 나타낼 때 쓰는 경우가 많죠. 이 과정을 거쳐 한끼 참여자 분들은 자신을 수박, 양파, 귤, 카레, 콩국수, 오므라이스 등으로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그림을 다 그린 뒤 둘러앉아 자화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김윤환 님의 이야기에 공감이 됐어요. 윤환 님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 생활을 한 25살 청년인데요. 자신을 여러 조각으로 썰려 있는 ‘폭립’으로 표현했습니다.

▲ 김윤환님은 폭립으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 이현지

폭립은 큰 덩어리로 나오지만 뼈 사이사이를 잘라 나눠 먹는 음식이죠. 윤환 님의 자화상은 미국 지도라는 큰 그릇에 폭립이 여러 군데에 조각조각 나뉘어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가운데는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져 있고, 빨간 하트도 표현돼 있어요. 윤환 님의 그림엔 하나하나 상징이 잘 기획돼 있었습니다.

윤환 님께 인터뷰를 요청하니 눈을 반짝이며 인터뷰를 응해주었습니다. 강사 생강과 윤환 님은 폭립 자화상에 관해 조금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 김윤환님은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던 자신이 폭립같다고 설명했습니다. © 이현지

음식자화상을 소개해달라는 말에 윤환 님은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음식자화상이란 과제에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좋아하는 음식인 폭립이었습니다. 윤환 님은 미국의 여러 지역, 여러 가정에서 자랐는데요. 미국이란 그릇 위, 윤환 님이 살던 위치에 썰어진 폭립을 그렸습니다.

“제 안에 너무나 많은 모습이 있었어요. 그 주(州)에 있었던 저 자신을 각각 다른 색깔의 폭립 조각으로 표현했어요. 또 음식을 조리하다 보면 폭립이 타서 나오기도 하는데요. (폭립에 까맣게 표현된) 여기 태운 부분들은 제가 받은 상처들이에요. 오늘 들은 ‘못생긴 사과’ 이야기처럼요.”

윤환 님은 여러 지역에서 살면서 그 환경에 자신을 맞추며 살았습니다. 여섯 가정에서 지냈고, 혼자 살기도 하고, 친구들 집에서 지낼 때도 있었죠. 그때마다 자신이 다르게 요리되었다고 했습니다. 윤환 님은 이를 두고 “저도 모르게 생존본능으로...”라고 말했어요. 생존본능으로 어떨 땐 부드러운 식감으로, 어떨 땐 딱딱하게 자신을 조리했다고 합니다.

생강이 윤환 님의 이야기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생강: 재미있는 통찰이네요. 사람들이 먹는 것으로 생명을 유지하잖아요. 맛과 식감이 생존 본능과 연결돼 있다고 하더라고요. 맛을 느끼지 못하면 우리가 식욕을 느끼지 못할 테고, 살 수 없겠죠. 사람은 자연에서 먹을 것을 찾았고, 맛으로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구분하기도 했을 거고요. 그 이야기가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요.

▲ 김윤환님이 [몸 한끼, 맘 한끼]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 이현지

살기 위해 여러 조각의 모습으로 살아온 윤환 님.

윤환 님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지금은 좀 더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이 조각조각 조리된 자신을 이어 붙이는 접착제가 되었다고 해요. 현재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몸 한끼, 맘 한끼]에도 참여하게 되었죠. 이어서 윤환 님은 “상처도 있고 혼란도 있는 자신이지만, 사람들이 자기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내비쳤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끝자락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생강: 상황에 따라 조리된 시간을 사시다가 지금은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을 가지며 지내시네요. 조리해야 하는 상황들에 약간 부정적인 경험들이 있으셨던 거 같아요.

윤환 님: 네.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서 미국에서 돌아왔어요. 미국이란 나라가 저랑 잘 맞는데도, 일단은 저를 조리하는 게 안되고 싫어서요. 여기서도 조리하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생강: 조리하지 않는 삶...

윤환 님은 무엇인가 발견한 듯 “오!”하고 외치며 ‘조리하지 않는 삶’을 되뇌었습니다.

▲ 김윤환님이 [몸 한끼, 맘 한끼]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 이현지

살다 보면 있는 그대로 내 모습으로 살기보다 ‘조리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학교, 직장, 가족, 취미모임, 친구들 등 어느 집단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요리되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또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합니다. 그러다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죠. ‘이 모습이 정말 나인가?’ ‘나는 누구지?’ 내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어려워집니다.

까맣게 상처 입기도 한 조리된 폭립으로 자신을 그린 윤환 님. 이제는 자기를 조리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자신을 마주 봅니다.

슥슥, 툭툭, 달달, 푹- 조리하지 말아 보세요.

내 모습 그대로, 그냥 덩그러니 두어보아요.

그리고 가만히 살펴보아요.

나 자신을요.


미술치유 프로그램인 [몸 한끼, 맘 한끼]를 진행하는 이현지 <미로우미디어> 대표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하면서 사단법인 <단비뉴스> 영상부장으로 일했으며 졸업 후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습니다. 미술과 영상, 글쓰기를 결합하는 컨셉트의 <미로우미디어>는 서울시의 도농연결망 '상생상회' 출범에 기여했고 <단비뉴스>에는 [여기에 압축풀기]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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