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시각장애인 대학생활 동행기 2

도우미 없인 따라가기 어려운 수업

“교수님이 말로만 진행하는 강의가 제일 좋아요. 칠판에 필기하거나 PPT를 사용하는 수업은 무슨 내용이 씌어 있는지 알 수 없어 너무 답답해요.”

점심식사 후에 이어진 강의는 스크린에 PPT(파워포인트)를 띄워 놓고 수업을 진행했다. PPT 내용과 말로 설명하는 내용에 차이가 없어, 듣는 것만으로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비장애인인 기자의 짧은 생각일 뿐이었다. 슬라이드를 넘기려고 치는 키보드 때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시각장애인인 서연주(가명·20) 씨는 불안해했다.

“지금은 뭐 나왔어요? 이번에도 별 내용 없어요?”

비장애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마련한 PPT가 장애 학생에게는 불편을 야기하는 것이다. 연주 씨는 이번 학기에 도우미를 배정받지 못했다. 같은 학과에 도우미 자원봉사를 신청한 비장애인 학생이 없기 때문이다.

“도우미를 하려고 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어요. 같은 학과에서 같은 수업을 들으면 도우미가 배정될 확률이 높긴 한데, 그것도 지원자가 있어야 가능하죠. 배정이 안 됐다고 해 학기 초에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찾아갔는데, ‘넌 혼자 잘 다닐 수 있지 않냐’는 말에 포기하고 그냥 혼자 다니고 있어요.”

▲ 연주 씨 같은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PPT로 하는 수업이 가장 힘들다. 무슨 내용이 스크린에 나타나 있는지 알 수 없고, 그래픽 같은 수업보조 자료는 아예 볼 수가 없어 수업 듣기가 아주 어렵다. ⓒ 박동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정보공시센터가 발표한 ‘2018년 장애학생 지원체제 구축 및 운영현황’에 따르면, 연주 씨가 다니는 학교에 재학중인 장애학생 수는 241명인데 도우미 는 199명으로 1대1로 쳐도 42명이 부족하다.

장애학생 도우미는 시각장애 학생에게 수강 교과목의 주-부교재를 점자나 시각장애인이 텍스트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텍스트 파일로 제작하는 것을 도와준다. 캠퍼스 내 이동과 식사, 과제물 처리 등 학교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지원하고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며 필요한 도움을 준다. 도우미는 긴급 상황이 있을 경우 안전하고 신속하게 장애학생을 도와줄 수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

시각장애 대학생 이해도는 교수마다 달라

PPT를 사용한 강의가 끝난 뒤 쪽지 시험을 치렀는데, 이번엔 낭독할 필요가 없었다. 담당 교수가 연주 씨에게 시험 내용이 들어 있는 USB를 건네 주고, 연주 씨가 갖고 있는 ‘한손에 브레일 나이트’라는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해 시험을 보도록 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말로 불러주면, 연주씨는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해 답을 타이핑했다.

답은 타이핑하는 즉시 교수의 USB에 저장돼서, 답안 작성을 끝낸 뒤 USB를 빼서 교수에게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교수님마다 달라요. 오전 강의 교수님은 시각장애인을 처음 접하셔서 익숙하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실 거구요. 이 강의를 하는 교수님은 시각장애대학생을 몇 번 가르쳐 보셔서 능숙하게 지도를 잘 합니다. 저도 엄청 편하고요.”

비장애인 학생과 별도로 치르는 시험

“다른 비장애인 친구들이 이용하는 학교 중앙도서관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가봤자 할 것도 없어 앞으로도 갈 생각은 없어요. 제가 사는 동네 주변 도서관도 마찬가지예요.”

시각장애 학생의 강의 교재는 일반 학생들 것과 다르다. 점자로 다시 제작을 해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대학교재는 시중 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교내 점자도서관이나 복지관에서 교재를 마련할 수 있다. 시각장애 학생이 교과서를 가져가면, 점자교재로 만들어 준다. 이 점역(글이나 그림 등을 점자로 고치는 것) 작업은 오래 걸려, 교과서를 한 번에 받아볼 수 없다. 진도에 맞춰 조금씩 나온다. 교과서 처음 부분인 1장, 2장이 먼저 변환돼 나오고, 그 부분 진도가 거의 다 나가면 다음 내용을 점역한 교재가 나온다. 학기 내내 빠짐없이 책을 받아봐야 강의에 뒤처지지 않는다.

▲ 일반도서를 점자도서로 점역하면 분량이 상당히 늘어난다. 사진에 나오는 책처럼 분권하는 이유는 두께가 너무 두꺼우면 들고 다니거나 읽기가 어렵고, 점자가 눌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통계청 공식 블로그

연주 씨처럼 진도에 맞춰서 점자책이 나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스브스뉴스>의 ‘수능 끝나고 나오는 수능 특강’ 기사를 보면,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EBS 수능 점자교재는 빠르면 8월, 늦으면 12월이 돼야 나온다. EBS 수능 교재는 수능 연계율이 70%에 이르러 대학 입시에 필수 참고서다. 그 교재로 수능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심한 불평등이다. 이렇게 늦게 나오는 교재는 오타나 누락투성이고, 그림 문제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그림 설명이 전혀 안 돼 있다.

시각장애 학생은 다른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볼 수 없다. 이들이 시험을 치르는 과정이 다른 학생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 학생 혼자 시험장에 나와,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과 다른 강의실에서 시험을 치른다. 센터 선생님이 문제를 불러주면, 말로 답을 부른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 답을 대신 써준다. ‘한손에 브레일 나이트’와 같은 점자정보단말기로도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다만 기기를 전부 포맷하고, 인터넷을 종료한 걸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문제를 불러준다. 커닝을 막기 위한 조처다.

시각장애 친구끼리만 모이고 MT도 가

오늘 수업이 모두 끝나고 행정실을 방문했다. 전에 신청한 복수전공 결과가 언제 나오는지 알아보러 갔다. 전공 관련 행정처리 결과를 알 수 있는 학교 포털 사이트가 음성지원이 안 돼 행정실을 방문할 수밖에 없다. 주위에 비장애인 친구가 있으면 부탁해서 읽어달라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 친구를 사귀기도 쉽지 않다.

“먼저 다가가기가 쉽지 않아요. 내 옆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 거 같긴 한데, 남자인지 여자인지, 말을 걸어도 되는 상황인지도 모르구요. 맞은 편엔 누가 있는지도 파악이 안 돼요. 같이 뭘 하려고 해도 친구들한테 미안해서 잘 안 나가게 돼요.”

보통 시각장애학생이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기는 어렵다. 앞이 보이는 비장애인 학생들은 밥도 같이 먹으러 가고, 행사가 있으면 함께 몰려 간다. 그런 모임에 시각장애인 학생이 들어 있으면 달라진다. 식사를 날라줘야 하고, 음식이 뜨거운지 차가운지, 어디에 어떤 반찬이 있는지도 알려줘야 한다. 화장실도 바로 앞까지 같이 가야 하고, 외출할 때는 한쪽 팔을 내주고 적당한 속도로 걸어야 한다.

술잔이 커 술은 제일 잘 마셔요”

연주 씨는 특수교육과 학생들과 장애대학생들의 교내 소모임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MT를 가는 날에는 모두 모여 회의를 한다. 소모임 내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 친구가 있는데, 그가 접근할 수 있는 장소와 숙소를 찾기 위해서다. 턱이 있는 곳은 피하고 경사로가 있는 곳을 MT 장소로 정한다. 숙소도 마찬가지다. 가능하면 1층으로 숙소를 잡지만 여의치 않으면 반드시 엘리베이터가 있는 숙소를 예약한다.

연주 씨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다. 처음에는 “너도 술을 마셔, 어떻게” 하는 반응이었지만 같이 술을 마시면 친구들 태도가 바뀐다. 올해 학기 초 MT에서는 친구들이 다 뻗고 혼자 남아 있던 때도 있다. “저도 몰랐는데, 시각장애인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면 많이 마시게 돼요. 작은 소주잔에 따르다 보면 양 조절이 안 돼 자주 흘러 넘쳐요. 그래서 커다란 종이컵에 따라 마셨는데, 어느새 주량이 주위에서 제일 커져 있더라구요.”

“취미는 다른 비장애인이랑 비슷해요. 운동이나 음악 감상 같은 거. 저희도 운동해요. 곧 서울에서 열리는 골볼(goalball)대회에도 나가요.”

▲ 골볼(goalball)은 각 3명의 선수로 두 팀이 맞붙어 경기한다. 센터라인을 중심으로 두 구역으로 나뉘어진 경기장에서 진행한다. 경기장에는 돌출된 표식이 있어 선수가 이를 촉각으로 감지해 자기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 pixabay

그는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 애플사에서 만든 ‘에어팟’을 갖고 있다며 자랑했다.

“선 달린 이어폰은 여기저기 걸리고, 그러다 보니 핸드폰까지 자주 떨어뜨려요. 핸드폰 찾는 데만 한참 걸렸죠. 근데 이제 선 없는 이어폰이 나오니까 너무 편하고, 음악 듣기도 더 좋아요.”

운동은 골볼(goalball)을 한다. 골볼은 안에 방울이 들어 있어 소리가 나는 공을 이용해 상대팀 골대에 공을 넣는 경기다. “골볼 정말 재밌어요. 한 경기 하고 나면 스트레스나 기분이 확 풀려요. 축구도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놀라는데, 공에 방울을 넣고 목소리로 서로 위치 파악을 하면서 해요.”

아득한 시각장애 학생들의 장래

대학교 진학하기 전, 연주 씨는 성우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다. 학원도 다니면서 준비를 많이 했다. 그러나 입학할 수가 없었다. 창설 이래 시각장애인이 들어온 적이 없고, 도우미를 붙여줄 수도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기 때문이다.

“제 자신이, 저라는 존재가 부정당한 느낌이었어요.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 자포자기 상태에서 조금이나마 용기를 냈던 게, 고등학교 3학년 끝날 때쯤 고교성우대회에 나갔어요. 그때 경험이 꿈을 계속 갖고 있도록 해줘요. 혼자 계속 준비해서 계속 지원할 거예요.”

졸업 후 진로 문제는 시각장애 대학생에게 크고도 어려운 과제다. 연주 씨가 알고 있는 시각장애 선배들은 아직 아무도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뭘 할 수 있을지,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장애 친화적인 캠퍼스라도 갈 길 멀어

국립특수교육원이 장애대학생의 고등교육 여건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 전국의 348개 대학 422개 캠퍼스가 참여한 <2017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 결과>에 따르면, 연주 씨가 다니는 대학은 상위권 등급을 받았다.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수준이 높은 학교지만, 동행취재를 해 본 결과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연주 씨가 다니는 학교는 전체 대학들 가운데 7.8%만이 받은 ‘최우수’ 캠퍼스다. 37.5%에 해당하는 대학은 장애대학생을 복지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 국립특수교육원

전국 대학들 중 장애학생 교육복지지원이 상위권에 드는 캠퍼스도 아직은 시각장애 학생이 자유롭게 마음대로 수업을 받고 활동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대학 2학년인 연주 씨가 홀로 갈 수 있는 곳은 식당, 기숙사, 강의실, 행정실, 장애학생지원센터밖에 없다. 작별인사를 하고, 기숙사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무거운 짐을 진 듯 힘들고 지쳐 보였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배려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면서도 실제 그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언론도 대개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일회성 보도를 내보내는 데 그친다. 시각장애인 대학생이 겪는 캠퍼스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다. (편집자)

편집: 강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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