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폭력’

▲ 김현균 기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폭력의 역사’에는 과거를 잊으려는 주인공 ‘조이 쿠삭’이 나온다. 범죄조직의 킬러였던 그는 과거를 후회하며 ‘톰 스톨’로서 작은 카페 사장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그가 가게를 습격한 괴한들을 죽인 뒤 상황이 급변한다. 예전 적대 조직 두목 ‘칼 포카티’, 같은 조직에 있던 형 ‘리치 쿠삭’이 나타나 조이와 가족들을 위협한다. 일상을 지키기 위해 그는 그들 조직을 함께 쓸어버린다.

‘폭력의 역사’가 ‘킬빌’ 같은 액션영화였다면 어떻게 끝났을까? 킬빌의 주인공 ‘베아트릭스 키도’도 과거의 적을 없애기 위해 폭력을 동원한다. 자기를 노리는 조직원 수십명을 칼로 베고 간부들을 척살한다. 마지막으로는 두목을 찾아가 심장을 터트리고 그가 데리고 있던 자기 딸을 되찾는다. 영화는 엄마와 딸이 TV 만화영화를 보며 해맑게 웃는 장면으로 끝난다. ‘폭력의 역사’도 ‘킬빌’ 같이 끝났다면 조이가 그의 가족들과 편안하게 아침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끝났을 거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게 끝나지 않아 명작이 됐다.

▲  지난달 25일부터 2박3일간 진행된 자유한국당의 국회 점거 현장.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진 취지를 잊은 한국당의 행동은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 KBS

조이의 과거가 알려진 뒤, 그의 가정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아내와 함께하는 잠자리는 부드럽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거칠고 과격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일진’들을 평화롭게 대하려던 아들 잭은 아버지 과거를 알고 난 뒤 ‘일진’을 때려눕혀 병원에 입원시켰다. 조이가 그와 가족을 노리는 범죄조직을 폭력으로 응징한 뒤, 그의 가정은 망가져버린다. 잭은 아버지를 노리던 조직의 두목을 엽총으로 쏴 죽인다. 조이가 적들을 소탕하고 집으로 돌아간 날 식사시간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조이는 어디까지나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자신과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

주먹 쥔 손으로는 악수를 할 수 없다.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 수도 없고,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주먹 쥔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뭔가를 부수는 일 뿐이다. 제아무리 선한 목적으로 주먹을 휘둘러도 남는 건 상처 입은 손과 맞은 이의 피멍뿐이다. 7년 전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아무리 다수당의 강압적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폭력이라도 폭력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다수당이 아무리 불의하게 행동해도 그걸 막기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면 사람들은 폭력만 보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을 지난달 25일 자유한국당은 무시했다. 당원들은 국회의장실과 국회 의안과 사무실을 점거했다. 문희상 의장이 나가려 하자 한국당은 여성 의원들을 의도적으로 앞세워 가로막았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걸어 잠근 문을 열기 위해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어쩔 수 없이 ‘빠루’를 쓴 것을 민주당의 억압으로 몰아갔다. 그들이 국회에서 단절된 폭력의 역사를 재현한 이유는 패스트트랙 법안을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언어의 폭력까지 가세해 상처가 아물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국회가 빨리 정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다.

여당과 다른 야당이 아무리 합의를 했어도 반대하는 정당이 하나쯤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반대의견이 정당하다면 다른 정당들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패스트트랙 법안은 앞으로 한국 정치환경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어 정당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모두 들을 필요가 있다. 그 소중한 기회를 자유한국당은 폭력으로 날려버렸다. 폭력은 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수단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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