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3주기 추모문화제

25일 낮 2시, 구의역 1번 출구 앞 도로에 사람들이 하나 둘 앉기 시작했다. 옆으로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화를 한 송이씩 든 손들이 비장해 보였다. 10여분이 지나자 인도까지 사람들로 메워졌다. 이들은 모두 ‘김군’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나다'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2016년 5월 28일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3주기를 맞았다. 당시 은성PSD 직원 김 모 군은 19살 나이로 숨졌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홀로 정비하다 들어오는 열차에 치였다.

▲ 임선재 서울교통공사노조 PSD지회장은 생전 김군과 함께 일한 동료다. 그는 김군에게 편지를 띄우며 청년노동자의 사고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 최유진

“작년 말 우리는 또 한 명의 청년노동자를 네 곁으로 떠나 보냈어. 우리가 김군이고 우리가 김용균이며 우리가 김태규라는 마음으로 다신 청년노동자 떠나 보내지 않겠노라고 약속할게.”

임선재 서울교통공사노조 PSD지회장은 생전 김군과 함께 스크린도어를 정비했다. 임 지회장은 "이윤보다 생명과 안전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돼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며 "생명과 안전이 우선시되고 현장의 모든 차별이 없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게 너를 진정으로 추모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위원장은 추모제에서 청년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관해 발언했다. ⓒ 최유진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위원장은 "구의역 사고 후 스크린도어 사고가 2년 만에 70% 줄었지만 지하철 현장을 벗어나 보면 사회에는 또 다른 청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며 "작년 말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동지의 죽음 후 산업안전법이 개정됐지만 또 다른 김군의 죽음을 막을 법이 충분히 보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주범중(맨 왼쪽) 씨 등 서울교통공사 노조원들이 추모제에서 노동자 차별 철폐를 위한 군무 공연을 펼치고 있다. ⓒ 최유진

추모제에서 서울교통공사 노조원들이 노동자 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공연을 펼쳤다. 절도있는 군무를 선보인 주범중 씨는 올해로 23년 째 노조활동을 하고 있다. 주 씨는 1997년 서울교통공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그는 “비정규직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노조도 없이 개인이 사장에게 부당함을 이야기해야 하는 어려운 구조였다”며 함께 추모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임금격차가 심해지는 사회 구조를 바라보지 않고 나만 바라보면 여기 있는 비정규직은 남이 될 수밖에 없다”며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최유진

“기업에 책임을 묻고, 기업이 더 이상 이런 살인을 반복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우리 모두 김군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을 해서 죽은 자들이 우리에게 남긴 빚을 갚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이상윤 집행위원장은 “질 낮고, 위험하고, 임금이 낮은 그런 일자리가 생기면서 청년들이 죽고 다치고 병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청년들을 다같이 돌보자는 과제를 김군이 우리에게 던졌고, 산 사람들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재 유가족 모임 ‘다시는’, 정말 다시는

이번 추모제에는 주최 쪽 추산 400여명이 참석했다.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 숨진 고 김태규 씨의 누나, 외식업체에서 현장실습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동균 군의 어머니,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제주 현장실습생 고 이민호군의 부모,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다친 한혜경 씨와 어머니까지 산업재해 유가족들이 함께 했다.

▲ 고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씨가 추모 연대사를 전하고 있다. ⓒ 최유진

“내 자식이 현장실습을 나가서 적재기라는 기계에 깔려가지고 생을 달리하는 순간을 CCTV 동영상으로 보는 순간, (산업재해 유가족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그때야 느꼈고…”

고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씨는 추모 연대사를 전했다. 이 씨는 “여러 산재 사고를 겪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데가 딱 한 군데 있다”며 “노동부는 현장실습생들이 나가서 일하는 데가 안전한지 않은지 신경도 안 쓴다”고 비판했다.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지금 법사위에 계류중인데, 이게 통과가 되면 고등학교 2학년만 되면 학생이 아닌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면서 현장에 바로 투입됩니다. 죽음으로 내모는 거예요.”

이 씨는 산업재해 유가족 모임 ’다시는’의 일원이다. 이 모임에는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속해 있다. 그는 도제학교 교육을 막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드는 데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자식들한테 어른 말 잘 들어라, 선생님 말 잘 들어라 절대 그런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물에 빠져 죽든가 기계에 깔려 죽습니다. 대한민국 현실이 그렇습니다. 자식들한테 애 낳으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럴 권리 없습니다.”

네 탓도, 내 탓도 아니었다

▲ 천형일 씨가 추모문화제에서 국화 한 송이를 들고 동료 노조원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 최유진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2015년에 서울시가 처음 했거든요. 당시 구의역 김군 사고 이후에 그 전까지는 거의 안 이뤄지다가 그 사건 이후에 급반전해서 이뤄졌는데, 그렇게 보면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다고 봐요. 그런데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신분 제약 같은 것이나 업무 범위가 정규직과는 동떨어진 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 정밀하게 이뤄져야 진정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고 보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아직까지 부족하지 않나 생각해요.”

서울교통공사 수서차량사업소에 근무하는 천형일(49) 씨는 22년간 노조 활동을 해왔다. 그는 “신분 이동이 위험의 최소화를 가져온다고 보진 않는다”며 “업무에 관한 안전조처 같은 세세한 요구들이 다 받아들여지고 해결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신분 보장뿐 아니라 업무 시스템이 변화되는, 진정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시간가량 진행된 추모 집회가 끝나자 시민들은 김군이 숨진 구의역 9-4 승강장에 헌화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 관계자는 “오는 28일 저녁 6시 30분에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로 소공원 앞에서 고 김태규 건설 노동자 49재와 구의역 김군 3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는 27일 오전 전태일기념관에서 '구의역 3주기, 반복되는 청년노동자 죽음을 막기 위한 토론회'도 열 계획이다. 메모지를 붙여 김군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추모의 벽도 28일까지 운영한다. 사고가 벌어진 구의역 9-4 승강장을 포함해 강남역 10-2, 성수역 10-3 승강장에 마련돼있다.


기자의 말: “나도 비정규직이었다”

2016년 6월, 나도 비정규직이었다. 일명 ‘프리뷰어’로 방송 외주제작사에서 또다시 외주를 받아 일하는 처지였다. 취업 준비로 고정적인 일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책이었다. 그러나 업무 효율은 최악이었다. 1시간짜리 영상에 수많은 말이 쏟아졌다. 이어폰을 끼고 귀가 멍멍하도록 소리를 키우고, 키보드에 손가락 뗄 겨를도 없이 모조리 받아 적었다. 대개 2시간, 많게는 3시간까지도 걸렸다.

물론 집에서 편하게, 새벽에 짬 내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 대신 일을 끝내면 손목과 어깨에 저릿한 통증이 들었다. 이런 수고와 불편을 최저시급 6천원으로 보상받았다. 그러고서 편의점에 가면 자괴감이 몰려왔다. 1천원 컵라면을 사면 내 노동 가치에서 단순히 6분의 1만 떼어낸 것일까? 못다한 공부와, 근육통과, 불면을 생각하면, 분명 컵라면 하나를 엄청 비싸게 사는 셈이었다.

그런 일자리도 경쟁이 치열했다. 구인 담당 작가에게 숙련된 경험을 과시하면서도 깍듯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녹취록 작업을 할당받은 영상에서 김군을 만났다. 김군이 사망한 이유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미편집 영상이었다. 작은 모니터를 통해 그가 있던 구의역 사고 현장을 보며, 언제든 대체될 위기와 언제든 다칠 위험에 처한 노동자의 현실을 봤다. 이미 김군은 세상을 떠났고, 남은 것은 그의 가방 속 컵라면이었다.

2016년 소속조차 없던 나와, 은성PSD의 김군과, 그리고 2018년 한국발전기술의 김군까지 모두 거대한 산업체 속 작은 부품이었다. 겉으로는 쉽사리 보이지 않아, 고장이 나 빠지고서야 존재를 알아줬다. 문제는 산업체가 원인을 찾아 부품이나 시스템을 고치는 대신, 신속한 교체를 택한다는 것이었다. 밑바닥에서 위험을 감당하는 이들을 알면서 방치했고, 사고로 잠시 공백이 발생해도 빠르게 ‘정상’을 되찾았다. 우리 사회에 수많은 ‘김군’들이 열악한 노동자의 대명사로 불리지 않도록, 새롭게 정의해줄 수 있는 날은 언제 오려나?


편집 : 권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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