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독립열전] ⑧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지키기'

‘우리말 지키기’도 목숨 건 ‘독립 투쟁’

<앵커>

(임지윤) 최유진 기자! “말과 글을 잃으면 민족도 결국 없어진다” 혹시 누가 한 말인지 아시나요?
(최유진) 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우리 말은 물론 우리글인 한글연구에 평생을 바친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의 말이지요.
(임지윤) 그렇습니다. 주시경 선생의 한글 연구와 후학양성이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이 무척 크죠?
(최유진) 네.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한글 교육을 받은 후학이 55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들이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말과 글을 지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한글과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는 거죠.
(임지윤) 네. 일제시대 국어학자들의 험난한 투쟁 과정을 그린 영화 '말모이'가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최유진 기자! 영화속 명대사들이 국민의 공감을 얻기도 했죠?
(최유진) 그렇습니다. 지난 1월말 개봉돼 28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는데요. 일견 영화적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는 곳에 뜻이 모이고, 그 뜻이 모이는 곳에 독립이 있지 않겠나”라는 대사에서 보듯 국어학자들에게 우리말은 곧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임지윤) 그렇습니다. 일제의 갖은 고문과 탄압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숨 걸며 한글을 지키고,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일제시대 국어학자들의 투쟁을 권영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말모이>. 우리말이 금지된 시대, 국어학자들의 우리말 사전 편찬사를 감동적으로 다룹니다. 목숨 걸고 전국 각지의 말을 모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피나는 노력이 잘 묻어납니다. 조선어학회라고 불리는 민족단체 소속 33명의 국어학자 이야기입니다.

뒤에 보시는 장소는 울산광역시 외솔 기념관입니다. 외솔은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조선어학회의 중심인물이던 최현배 선생을 가리킵니다. 외솔은 “국어는 우리 민족정신의 형성 기반이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라는 스승 주시경 선생의 가르침을 평생의 교훈으로 삼습니다. 이런 민족주의적인 언어관이 있었기에 외솔은 평생 독립투쟁의 일환으로 국어 연구에 몰두합니다. 외솔은 조선어학회 33인의 힘을 모아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우리 말 사전 작업에 운명을 겁니다.

하지만 간악한 일제가 사전편찬의 민족사적 의미를 모를 리 없습니다. 사전 편찬이 한창 진행되던 1942년 10월, 일제는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체포합니다. 감옥에 갇힌 29명의 회원은 물 먹이기, 공중에 달고 때리기, 불로 지지기 등의 갖은 고문에 시달립니다. 일제는 억지 자백도 강요합니다. 결국 국어학자들은 내란죄 혐의로 고통스런 옥고를 치릅니다.

인터뷰) 한글학회 김한빛나리 사무처장 

"33분이 함흥 경찰서에 끌려가죠. 그 당시에 간사장이었던 이극로 선생님, 최현배 선생님, 33분이 옥고를 치르게 되는데... 그래서 사전 편찬 작업은 3년 동안, 광복이 돼서 다 풀려났지만 3년 동안 완전 중단됐어요. 그 당시 조선어학회의 모든 사전편찬 자료, 인물 다 뺏기고..."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8일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일제에 압수되었던 ‘조선말 큰 사전’의 원고가 발견됩니다. 2만6500여 장 원고의 방대한 분량입니다. 이를 정리한 국어학자들은 1947년 마침내 ‘조선말 큰 사전’을 출간합니다. 조선말 큰사전은 이후 현대 국어사전의 표본이 됩니다.

인터뷰) 한글학회 김한빛나리 사무처장

"최현배 선생님하고 그 당시 조선어학회 상무이사였던 유재하 선생님이 원고를 손으로 다 써서 복사본을 만들어서 원본은 한 분이 갖고 사본은 한 분이 가져서 자기 집 마당에 깊숙이 땅을 파서 보관했던 그런 일화도 있거든요.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그만큼 사전편찬 작업에 온갖 그야말로 목숨까지 바쳐가며 한 거나 마찬가지죠. 그렇게 해서 우리 사전이 지켜져 왔고 그 사전을 바탕으로 해서 다른, 지금까지도 거기에 보태고, 시대에 따라서 고칠 건 고치고..."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 프랑스가 독일과 전쟁에서 패해 독일에게 빼앗긴 땅 알자스와 로렌 지방 학교의 프랑스어 공부시간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때 아멜 선생님의 말. 아멜 선생님은 이어 "비브 라 프랑스(VIVE LA FRANCE)" 즉 “프랑스 만세”라고 씁니다. 일제시대 우리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건 국어학자들 모습과 닮았습니다. '한글이 목숨'이다. 지식인들이 한자나 일본말만 쓰던 1932년, 서울의 한 음식점 방명록에 쓴 외솔 최현배 선생의 붓글씹니다. 일제에 맞서 우리 말과 글을 목숨처럼 지키려던 국어학자들의 민족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시점입니다. 단비뉴스 권영지입니다.

(영상취재 : 권영지 / 편집 : 권영지 / 앵커 : 임지윤, 최유진)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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