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리사이클(Recycle)’

▲ 오수진 기자

편리함은 인간을 불편함에서 해방시켰다. 그러나 인간의 편리함으로 생태계는 불편해졌다. 수난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3월 환경부 국립생태원은 제주 앞바다에서 죽은 채 발견된 바다거북을 부검했다. 거북의 몸 속은 해양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을 바다거북이 해파리나 해초로 착각해 삼키면 소화불량이나 장천공 등이 발생해 폐사에 이른다. 매년 적어도 만 마리 이상 바닷새와 십만 마리의 상어, 돌고래 등이 해양 쓰레기를 먹고 죽어간다. 전문가들은 짧게는 2050년, 멀게는 2100년이면 지구 생물의 절반이 멸종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쉽게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플라스틱에 과도하게 길들여진 인류는 '편리함'이 무엇인지 새롭게 정의 내려야 할 때가 됐다.

제주도는 지난 2016년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를 시행하고 ‘재활용도움센터’를 설치했다. 2006년 도입된 ‘클린하우스’는 종이와 캔, 플라스틱 등 재활용품을 24시간 분리배출할 수 있었지만, 제대로 분리배출되지 않아 실제 재사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재활용도움센터’는 분리수거 도우미가 상주해 정해진 시간에 제대로 된 재활용 수칙을 지켜야만 버릴 수 있게 분리배출을 유도한다. 가령 플라스틱은 상표와 뚜껑을 떼고 안에 내용물과 이물질까지 씻지 않으면 버릴 수 없다. 제주도 대형마트는 자율포장대에 무료로 비치하던 종이상자를 모두 치웠고, 지자체와 업계는 일회용 종이컵과 그릇, 비닐 등을 축제나 행사장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방안들은 번거로움이 가중돼 시행 초 도민의 반발이 심했다. 쓰레기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제대로 배출하면 비용과 환경 측면에서 득이 많지만, 편리함에 익숙해진 시민들은 불편함을 원하지 않았다.

▲ 바다거북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그물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 이엔브이컨텐츠

플라스틱 위해성에 경각심을 갖게 되면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관심도 높다. 미국 환경운동가 비 존슨이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에서 강조한 개념으로 쓰레기를 거의 배출하지 않고,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쓰레기는 재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일상생활에서 쓰레기 없이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해야 하는 일이 훨씬 많고, 현대사회에서 안 쓰는 일이란 쓰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1년 동안 배출한 쓰레기가 1L 유리병에 들어간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모든 나라에서,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특히 대체품 선택 폭이 매우 제한적인 우리나라에서는 귀농해 자급자족하지 않는 이상 ‘플라스틱 제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의 주장은 강박으로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게 아니라, 불편하지만 친환경적인 생활 방식의 전환은 소비경제와 독성물질로 얼룩진 인류의 건강과 환경 모두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 폐자원 수입 규제로 비닐과 스티로폼 등이 수거되지 않아 겪은 혼란을 기억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놓이자 시민들은 환경에 관한 자기 생각들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대포장이나 불필요한 쓰레기,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요구도 빗발쳤다. 심각함을 마주하고서야 ‘불편함’을 수용한 셈이다. 바다의 영물이던 푸른바다거북이 인간의 편리성을 대가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것은 인간과 자연이 더 이상 상리공생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는다. 그 지경에 이르기 전에 ‘불편함’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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