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제천 옥순봉

망망한 호수 위에 점 하나로 둥둥 떠보면 사방이 온통 기암절벽이다. 빼어난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된다. 퇴계 이황과 단원 김홍도, 직필 때문에 죽은 김일손 등 수많은 문신과 화가가 옥순봉을 찾았으나 필봉이 무딤을 한탄해야 했으리라. 옛 글과 그림은 과장이 허용됐지만 옥순봉 앞에서는 표현이 궁했을 것 같다.

켜켜이 쌓인 석벽을 가까이서 보면 절묘하게 깎인 자태에 놀라고, 멀리서 보면 솟아오른 위용에 압도된다. 이웃 나라 태산이 부럽지 않다. 아기자기한 우리 자연이 더 포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옥순봉, 구담봉, 제비봉 등은 형제처럼 호숫가에 늘어서서 방문객들을 반기는 듯하다.

퇴계는 왜 제천 옥순봉을 ‘단양 관문’으로 삼았을까

▲ 옥순봉 일대는 수평절리와 수직절리들이 발달하고 남한강의 침식작용으로 하식애가 생성돼 절경을 이루고 있다. ⓒ 이복림

옥순봉은 월악산국립공원 봉우리 중 하나로, 제천10경과 단양8경에 들어간다. 충북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속하지만, 단양군 단양읍 장회리와 경계를 이룬다. 조선 명종 때 관기 두향은 단양군수 퇴계 이황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청풍군수가 허락할 리가 있나? 퇴계는 단애를 이룬 석벽이 마치 대나무 순이 솟아오른 것과 같다 하여 ‘옥순봉’(玉筍峰)이라 이름 짓고,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한 옥순봉은 해발 283m 낮은 산이지만 청풍호가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빚어냈다. ⓒ 최유진

옥순봉은 청풍호와 함께 있어 더욱 절경이 됐다. 자연경관을 그린 그림을 산수화(山水畵)라 했으니 산이 물을 만나지 않은 곳은 화가들도 외면했다. 해발 283m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확 트인 정상부는 전망 데크가 깔려 있어 쉬어가기 좋다. 여기에 세월을 간직한 소나무들이 운치를 더해준다. 유람선을 타면 석벽을 더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다. 청풍 유람선은 ‘충주~청풍’, ‘청풍~장회’ 2개 노선으로 운영된다. 옥순봉 정상에 우리 일행과 함께 오른 이재신 제천시의원은 산세를 가로지르는 물줄기를 가리키며 ‘남한강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옥순봉 정상에서는 거북이 모양 암봉인 구담봉, 월악산 영봉, 충주호 하류 쪽 모습을 볼 수 있다. ⓒ 최유진

“소백산, 월악산, 금수산 협곡을 가로지르는 남한강, 이게 흘러 여주, 이천, 용인, 양평으로 해서 한강까지 물자를 서울로 실어 나를 때 다 배를 이용했죠. 지금은 충주댐 때문에 호수가 됐지만 옛날에는 흐르는 강이었어요. 굽이굽이 흐르는 강, 이게 어디까지냐 하면 강원도 오대산 진부에서 시작해요. 그 남한강을 끼고 역사가 흘러왔지요. <메밀꽃 필 무렵>도 그중 하나인데, 남한강을 끼고 살아가던 보부상들의 삶을 그린 거죠. 젖줄이죠. 너무 멋있죠?”

그는 “옥소 권섭 선생이 남한강 일대를 배경으로 무수히 많은 시를 지었다”며 제천 축제인 ‘옥소문화제’도 소개했다. 조선 후기 권섭 선생은 제천에 살며 지역의 아름다움을 문학으로 표현했다. 이 의원은 “옥순봉 정상으로 가는 3개 코스를 데크길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노인들도 쉽게 등산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거룻배 모는 사람 병풍 속으로 들어가네”

▲ 김홍도가 연풍 현감 시절 단양 일대를 유람하고 옥순봉을 그렸다. <병진년화첩>의 첫 번째 그림으로, 왼쪽에 ‘병진춘사단원’(丙辰春寫檀園)이라 쓰여 있다. ⓒ 삼성미술관 리움

김홍도의 만년 대표작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 중 한 폭인 보물 제782호 ‘옥순봉도’(玉筍峯圖)는 그가 정조의 초상화를 잘 그린 공로로 연풍 현감이 됐는데, 그 직후인 1796년에 그렸다. 그림 오른쪽 아래 조각배에 두 선비가 앉아있다. 현감 시절, 그는 배를 타고 옥순봉을 유람했다.

‘서리 내린 붉은 벼랑엔 가을 맑은 물 고요하고
거룻배 모는 이는 옥(玉)병풍 안으로 들어가네
천태만상이 화락에 쌓여 부족함이 없으니
화옹(畵翁)과 시선(詩仙) 모두 아직 할 일이 없어라’

단양군수를 지낸 황준량이 옥순봉을 노래한 시다. 구한말 의병장 유인석과 함께 왜군 소탕에 앞장섰던 정운호는 제천8경을 노래하며 옥순봉을 제7경으로 꼽았다. 조선 시대 여러 문헌과 지리도서에도 옥순봉에 관한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 시대 문신 김일손도 이곳을 탐승하면서 절경의 협곡을 극찬했다. 그는 실록을 만드는 사초에 훈구파를 비판하는 내용을 적었다가 무오사화로 능지처참을 당한 인물이다. 실학자 이중환은 <산수록>에 ‘옥순봉은 수많은 봉우리가 온전히 돌로 되어 있으며, 우뚝 솟아 마치 거인이 손을 잡고 있는 것 같다’고 기술했다. <여지도서> <해동지도> <1872년지방지도> <대동여지도> 등에도 옥순봉이 주요 경관으로 표기됐다.

카약을 타고 옥순봉을 바라보라

▲ 카약과 카누 체험은 충북 제천시 수산면 옥순봉로 342 청풍호카약카누체험장에서 사전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수산면 농특산물직판장도 함께 운영된다. ⓒ 이복림
▲ 카약과 카누 여러 대가 구비돼 있다. ⓒ 이복림

“주변 풍광을 다른 데와 비교할 수가 없어요. 수도권에서 가까운 곳은 접근성은 좋죠. 다만 그런 곳들은 카누와 카약이 동적이지만, 여기서는 약간 정적이에요. 풍류를 즐기고 시도 한 수 나오고… 거기는 스포츠라면, 여기는 인문학입니다. 주변 경치 보느라고 세게 노를 젓지 않아요.”

한국관광공사 관광두레 PD로 활동한 이재신 의원은 “다른 지역보다 청풍호에서 운영되는 카약·카누 체험은 분명 다르다”고 설명했다. 제천 청풍호는 인공호수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호수다. 제천시는 2013년 국민체육진흥공단 지원으로 ‘청풍호카약카누체험장’을 조성해 수산면 주민들로 이뤄진 ‘수산나드리영농조합법인’에 운영을 맡겼다.

박재철 조합 대표는 “청풍호에서 카누와 카약을 타면 옥순봉, 옥순대교 등 수많은 절경을 볼 수 있어 다른 지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며 “운영 5년차인데 연간 4~5천여명, 누적 2만4천여명이 방문해 체험 여행을 했다”고 말했다. 카약카누체험은 슬로시티 수산면에서 시속 7~8Km 속도로 즐기는 친환경 무동력 스포츠다. 카누는 외날 노, 카약은 양날 노를 사용한다. 프로그램은 매시간 정시에 운영되며, 1시간쯤 걸린다. 예약은 단체로만 받는데 자세한 사항은 슬로시티 제천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 청풍호에서 카약·카누를 타면 옥순봉과 옥순대교 등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 관광두레

“맨날 보는 거지만 산천이 계속 변하잖아요. 그때그때 변하는 걸 계속 바라보고 다녀야 하는데…”

박 대표는 무조건 ‘빨리빨리’를 외치는 관광 행태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슬로시티 수산면에 귀촌한 그는 옛 선조들처럼 조각배 띄우고 손님들과 여유를 나누려 한다. 여기저기 서두르는 여행자보다, 진득하게 자연을 온전히 느끼려는 이가 더 반가운 이유다. 옥순봉은 눈에만 담을 게 아니다. 의젓한 자태를 내 마음에 비춰봐야 한다. 그러면 자연에서 즐거움만이 아니라 배움까지 구하는 옛 선비를 닮을 수 있을 것이다.

청풍 물길 100리, 출렁다리로 재미 더한다

▲ 제천시 수산면 옥순대교 인근에 222m 규모 출렁다리 조성 계획을 담은 조감도. ⓒ 제천시

제천시는 수산면 옥순대교 인근부터 옥순봉에 이르는 총 연장 222m 출렁다리를 설치할 계획이다. '청풍호 물길100리 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당초 2021년 준공이 목표였으나, 올 11월로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청풍호 물길100리 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은 수산면 괴곡리 일원에 1.9㎞ 규모의 탐방로와 출렁다리, 수변데크(200m)를 조성하는 것으로 총사업비는 64억7천400만원이 투입된다.

시는 지난 2008년 1월에 1억 1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토지주택연구원에 프로젝트 연구를 의뢰했다. 청풍호 일대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레저 및 문화체험의 중심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옥순봉 출렁다리는 3월부터 설계 현상공모와 실시설계, 문화재현상변경허가 등 세부 절차에 착수했다. 시는 예정대로 절차가 추진되면, 다리 설치에 3개월 가량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신 의원은 “출렁다리가 생기면 내륙의 바다 청풍호 일대를 보다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옥순봉 정상으로 가는 3개 코스를 데크길로 조성해 누구나 쉽게 등산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 : 양안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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