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과잉관광’

▲ 김지연 PD

우리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OO에서 꼭 해야 할 일’, ‘OO의 맛집 TOP3’ 같은 문구들을 흔하게 접한다.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하거나 즐겁기만 해야 할 여행이 골치 아프게 느껴질 때면 이런 글이 반갑기도 하다. 그런데 여행은 원래 ‘골치 아픈’ 일이었다. 서양에서 ‘여행’을 뜻하는 travel은 고문의 도구였던 ‘3개의 몽둥이’(three poles)를 뜻하는 라틴어 ‘trepalium’에서 나왔다. 같은 어원을 가진 파생어는 'travail’(진통, 고생, 노고, 노동)이다.

사람들에게 여행이 노동이나 고문처럼 고생스러운 일이었다는 건가? 지금도 ‘집 나서면 고생’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현대인에게 여행은 즐거운 경험이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여행’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한 14세기에는 비행기도 기차도, 자동차도 없었다. 도보와 마차 말고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법하다. 우리에게 여행이 친근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미국 역사가 대니얼 부어스틴은 <이미지와 환상>에서 지난날 일종의 모험이자 ‘수고로운 일(travail)’로서 고유한 경험이던 여행(travel)이 대중사회화와 상품화로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관광(tour)이 된 현실을 지적했다. 여행은 상품이 되었고 점점 사람들의 경제적 여유가 늘어날수록 여행상품 수요는 폭증했다. 미지의 모험이자 예측 불가능한 경험의 연속이라는 여행의 본질은 사라졌다.

제주도 관광은 이런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천혜의 관광지 제주도는 1980년대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여유가 생긴 한국 사람들이 선택한 인기 여행상품이었다. 조선 시대에 섬으로서, 유배지로서 본토에서 받았던 차별의 역사, 해방 이후 ‘육지 것들’ 탓으로 터진 4.3항쟁의 아픔…. 제주도에 담긴 역사와 눈물은 아름다운 관광상품 제주도의 후광 아래 가려졌다.

넉넉한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질수록 제주도의 눈물은 깊어졌다. 1990년 300만이 조금 못 되던 관광객은 2016년 1500만 명을 돌파했다. 섬의 지하수가 고갈돼 일부 지역은 제한급수를 실시했다. 넘쳐나는 쓰레기는 수십억을 들여 육지로 보내야 할 지경이다. 심각한 교통난은 결국 섬의 비자림로 숲길을 벌목하는 동기가 되었다. 제주도는 스스로 다 품지 못할 만큼 사람들이 쏟아지고 있는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으로 인한 제주도의 심각한 교통난은 결국 비자림로 숲길을 벌목하는 동기가 되었다. ⓒ pixabay

과잉 관광객에 신음하는 제주도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2015년, 정부는 늘어나는 관광 수요에 맞춰 공항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국토교통부가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를 제주 제2공항 후보지로 선정한 것이다. 주민들과 사전 상의 없이 내린 일방적 결정에도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사(史) 최대 사업, 제주 제2의 반환점’이라며 환영했다. 

많은 제주도민들이 생계를 접고 촛불을 들었다. 수풀을 걷어내면 보이는 용암동굴과 조선 시대 봉수대가 있던 ‘망오름’, 1천여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다는 수산리, 전설이 머물고 있는 진안할망당…. 이 모든 것들이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이 가진 보물이다.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훼손하고 제주를 상징하는 오름을 깎아내면서까지 ‘환영’해야 하는 이유가 ‘제주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 미래는 제주도민의 것이 아니다.

제주가 가진 역사와 아픔이 아닌 ‘아름다움’만을 소비하는 관광은 그 미래가 길 수 없다. 지금 관광객들의 행태를 살펴보자. 관광객들은 제주도에 온다기보다 제주도라는 이름을 가진 스튜디오에 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모두 손에는 휴대폰과 카메라를 들고 ‘내가 제주도에 있다’는 것을 자랑한다. 그들의 사진에는 늘 같은 풍경, 이미 누군가가 소비한 모습이 반복된다. 제주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의미들이 고작 사진 찍으려 오가는 공항 아래 파묻힐 예정이라는 건 비극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제주도 관광’은 바뀌어야 한다. 관광 상품이 돼버린 ‘여행’의 본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제주도를 찾을 예정이라면 한창 싱그러운 성산읍을 다녀와 보면 어떨까? 친절한 가이드도 예쁜 기념품도 그곳에는 없다. 그 대신 그동안 알지 못한 제주도를 만날 수 있다. 4.3항쟁과 강정마을에 이어 성산읍 투쟁은, 제주도가 버텨온 슬픔의 그림자는, 제주의 아름다움이 자연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제 사진이 아닌 마음에 찍히는 진짜 제주의 아름다움을 즐겨보자. 덤으로 제주도를 망칠 제2공항을 멈추는 데도 도움이 되는 1석2조의 계획이 되지 않을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유연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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