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전쟁과 평화’

▲ 이신의 PD

베들레헴에서 우연히 'WALLED OFF'라는 카페를 방문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장벽에 그래피티를 그리는 예술가가 운영하는 카페였다. 전시된 많은 작품 중 유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배경은 천국이다. 세 아이가 천국의 철창을 넘는다. 그런데 아이들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인지 나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작가의 의도겠지만 나는 작가의 특성과 환경적 요인을 고려했을 때 천국은 이스라엘의 이상일 거라 생각했다. 그 속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이스라엘의 천국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자기네 천국으로 들어가는 걸까?

모든 전쟁에는 명분이 있다. 이스라엘은 ‘모세 5경’이라는 명분이 있었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대량살상무기 파괴와 보복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적 명분이 없어 반군 뒤에 숨었다. 감춰진 명분은 명확하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는 친서방 세력이 정부를 장악했다.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은 곧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으로 연결될 것임을 뜻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NATO 영역 밖에 놓겠다는 보장을 하지 않는 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이란과 미국이 각자 명분을 축적하며 전쟁이라도 벌일 듯한 기세다.

▲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구역이며, 'WALLED OFF HOTEL'은 이스라엘이 세운 장벽 바로 옆에 있다. ⓒ google

모든 전쟁은 이처럼 다양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중심에는 자국 이권 보호와 극대화라는 본질이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현대전은 경제전쟁’이라는 말이 나왔던가? 이권은 국가이익 수호라는 명분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 개인의 이익은 전쟁 명분에 포함되지 않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응보적 정의를 떠올린다면 보복성 명분은 정의로워 보인다. 그렇다면 전쟁은 정의로운가?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된 9.11테러 사망자는 약 3천명이었다. 이라크 전쟁으로 사망한 미군과 연합군은 2만5천, 부상자는 10만이 넘어간다. 이라크군 사망자는 약 3만5천이다. 민간인도 수없이 죽었다. 이들의 생명이 3천명과 국가를 위해 희생당할 명분은 무엇인가?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군의 작전명은 ‘이라크의 자유’였다. 지금 와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미국 군수업체의 ‘경제적 자유’였다.

각국의 명분이 정의의 외피를 쓰게 될 때 전쟁이 발발한다. 이스라엘의 정의에는 이방인들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그곳을 탈출하는 방법은 철망을 넘거나 자신들의 또 다른 정의로 들어가는 것이다. 탈출은 난민의 길이고, 또 다른 정의는 테러와 전쟁의 길이다. 결국 이스라엘의 정의는 정의를 파괴한다. 그런 곳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 그곳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내가 한 번쯤 만났을 수도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는 사람들. 그들은 이웃이며, 가족이고 곧 나다.

2차세계대전 실화를 담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는 전쟁 막바지에 죽어가는 이병이 있다. 이병을 바라보는 주인공은 말한다.

“유진 잭슨은 스무 살이었다. 가족들은 국가로부터 그가 중대한 임무수행중 명예롭게 전사했다는 내용의 전보를 받았을 것이다. 사실은 헤게나우의 눅눅한 지하실에서 들것에 실린 채 고통에 울부짖으며 숨을 거둔 것이었다. 다 끝난 전쟁의 또 다른 희생자였을 뿐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신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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