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자기가 다 가지고 있는 집도 있고, 침실만 갖고 있는 집도 있고, 화장실과 붙어 있는 집도 있죠.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은 임대료를 내지만, (주방·세탁실 등 공동으로 쓰는) 이런 것은 사용료를 내는 거죠...이런 공유마을을 건설할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는 겁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꼽히는 승효상(67)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 9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도시 재개발과 주택정책 등에 관한 생각을 밝혔다. 승 위원장은 ‘혼자 사는 집’이 가장 지배적인 가구형태가 된 현실과 관련, ‘사생활을 존중하되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공유마을 건설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침실·화장실 등은 독립, 나머지 시설은 공유

▲ 혼자 사는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에 맞춰 ‘사생활을 존중하되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공유마을을 많이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승 위원장이 말하는 공유마을은 침실과 화장실 등 최소한의 사적 공간은 독립적으로 쓰되, 주방이나 세탁실, 응접실 등은 함께 쓸 수 있도록 공동주택을 설계해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개념이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셰어하우스’를 공동주택 단위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승 위원장은 노래방, 찜질방, 세탁방 등 이미 상업화한 서비스처럼 마을의 공유시설을 사용료를 내고 쓰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공유마을은 특히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서로 필요한 부분을 도와주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노인끼리 살고, 아이끼리 살면 안 되거든요. 같이 살아야 해요. 같이 사는 게 건강한 사회거든요. 건축을 통해서 그렇게 같이 모여 사는 사회를 형성해 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거죠.”

승 위원장은 우리나라 주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파트의 경우 ‘공동체가 거의 완전히 붕괴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개인의 사생활은 철저히 보장되지만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잘 모르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개인의 프라이버시(사생활)가 망가지면 안 되지만 지키는 범위 내에서 접촉의 기회를 다변화하고 다양화해서, 만나는 것이 엄청나게 즐거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건축가의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승 위원장은 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공유마을을 포함,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지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주택정책이 가장 잘 돼 있다고 평가받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경우 공공임대주택비중이 (전체주택의) 67%인데 서울은 7%가 안 된다”고 꼬집었다.

도시재생은 외과수술이 아닌 침술 방식으로

승 위원장은 전국에서 추진 중인 재개발·재건축과 관련, “외과수술적인 재개발이 아니라 침술 같은 도시재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개발이라고 하는 것은 외과수술처럼 다 도려내고 새로 이식하는 건데, 재생은 아픈 부위에 침을 놓았을 때 주변부까지 작용해서 전체가 건강한 세포로 살아나는 침술과 같은 겁니다. 그래서 도시재생을 도시침술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 외과수술과 같은 재개발 대신 침술처럼 마을 전체를 되살리는 도시재생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는 승효상 위원장.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그는 잘 건축된 공공시설, 문화시설 등이 주변까지 살리는 침술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도시침술 작업은 기한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해야 하며, 특히 주민들의 참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과거엔 세입자 등 거주민을 내쫓고 새 건물을 지어 부동산 가치를 올리는 방식으로 재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승 위원장은 “주민 참여가 없는 도시재생은 신기루나 허상을 만드는 것이며 장소의 정체성을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팔고 집값 올리면서 불행해지는 삶

“집은 자기의 존재방식이기 때문에 집값이 버블(거품) 되면 자기 존재가 버블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결단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승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세계 27위지만, 행복지수는 80위로 낮은 이유가 집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을 부동산 가치로만 생각하고 사고파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간은 땅 위에 집을 짓고 그 위에 거주함으로써 존재한다”고 한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를 인용하며 “자기 존재가 귀하다면 집을 팔고 사는데 관심을 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거주하는 곳에서 얼마나 내 존재 양식을 빛나게 만들까에 골몰해야 자신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승효상 위원장은 “자기 존재가 귀하다면 집을 사고파는 일에 관심을 끄고 어떻게 자신의 존재양식을 빛나게 만들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빈자의 미학’으로 삶을 짓는 건축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부산 대신동 난민촌에서 태어난 승 위원장은 8가구가 마당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던 어린 시절 집과 우연히 가본 서울 금호동 달동네에서 ‘빈자의 미학’이라는 자신의 건축철학이 탄생했다고 회고했다. 비록 남루하지만 만남과 나눔을 위한 공간구조를 가진 달동네가 ‘가짐보다는 쓰임, 더함보다는 나눔, 채움보다는 비움’이라는 미학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승효상 위원장은 달동네 공간에서 얻은 건축적 영감을 바탕으로 책 <빈자의 미학>을 썼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그는 또 오스트리아 유학시절 ‘장식은 죄악’이라고 주장한 건축가 아돌프 로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1907년 화려한 비엔나의 왕궁 앞에 밋밋하고 실용적인 건물을 세움으로써 ‘모더니즘(반봉건 합리주의)’ 사조를 촉발한 로스가 건축으로 혁명을 할 수도 있으며 건축가는 예술가가 아니라 지식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건축가로서 선 하나를 긋는데도 여기 사람의 삶이, 운명이 달려있다는 생각에 엄청난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우리나라 최악의 건축물로 ‘청와대 관저’와 ‘국회의사당’을 꼽았다. 대통령 가족이 생활하는 관저는 경호와 보안, 권위만을 생각해 거주자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폐쇄적이며 국회의사당은 장식 외에 다른 기능이 없는 열주(기둥)와 돔(원형지붕)을 가진 ‘가짜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고. 비민주적이고, 봉건적이고, 진정성 없는 가짜 건축 속에서 이뤄지는 삶이 진정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봅니다.”


경제방송 SBSCNBC는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 2019 시즌방송을 3월 14일부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1시부터 1시간 동안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영상과 주요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편집 :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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