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한겨레21> ‘고아들의 18 청춘’

누군가에게 봄은 두려움이다. ‘누군가’ 속에는 2천명 아이들이 있다. 보호시설 퇴소아동들은 만 18세가 되는 3월이면 시설을 떠나야 한다. 자립청소년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정책이 바뀌고 지원금도 증가했다. 하지만 2017년 전체 보호종료자 중 대학진학자는 전문대학을 포함해 13.7%에 그쳤다. 전체 고교졸업자 대학진학률(68.9%)을 고려한다면 5분의 1에 불과하다. 그뿐 아니라 2014년부터 5년간 아동양육시설 퇴소자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이 되는 비율은 24.4%다. 

<한겨레21>에서 아동보호시설에 자립생 인터뷰 섭외를 요청했다. “저희 집(아동양육시설) 아이들도 그동안 많이 연결해드렸어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던데요, 뭘.” 그리고 4월 1일 발행한 <한겨레21> 특집 ‘고아들의 18 청춘’. 언론 보도가 지속되는데도 달라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언론의 프레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한겨레21> 기사를 통해 생각해 본다.

▲ 4월 1일 발행한 <한겨레21> '고아들의 18 청춘' 특집. 아동양육시설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탐사보도했으나, 일부 부족한 점이 보인다. ⓒ 한겨레21

<한겨레21>에서는 6꼭지를 할애해 고아 특집을 내보냈다. 큰 프로젝트지만 내용은 ‘특집’을 무색하게 한다. ‘규석이의 이야기’에서는 규석이가 대학진학을 포기한 뒤 방황하는 모습과 대학진학률이 70%가 되는 사회에서 만18세에 자립해야 하는 법이 불합리하다는 주장을 편다.

오래 보호한다고 고아들 미래가 밝아질까

기사로는 만 18세라는 나이에 퇴소한 것이 문제인지, 규석이 개인의 방황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 이어지는 주장은 논리 비약이다. 진학률이 높아지면 퇴소아동 보호기간이 늘어나야 하는가? 현행 제도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보호시설 거주가 가능하다. 문제는 진학도 취업도 못한 아이들이 퇴소한다는 점이다. 단순 보호나이 상향이 이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까? 인문계학생이 진학을 하고, 전문계 학생이 졸업 후 취업하는 것은 고아뿐 아니라 학생 모두에게 주어진 사회 시스템이다. 그런데 유독 시설 아이들만 준비되지 않은 채 사회에 내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겨레21> 보도에는 근본적인 질문이 보이지 않는다.

이어지는 기사는 정착금을 탕진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애완견에 200만원을 소진하고, 남자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 아버지가 찾아와 돈을 가져가고, 도박에 빠져 모두 탕진하는 아이들. 독자가 보기에는 모두 개인 문제로만 보인다. 만 18세 퇴소라는 구조적 문제가 아닌 성인 이후에도 생길 수 있는 개인의 문제로 치환된다. ‘나약한 약자’ 프레임은 무능력하고 귀찮은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지막 기사에서는 자선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선행을 보여준다. ‘만 18세 퇴소 나이가 너무 낮다’고 주장하려면 퇴소 나이가 높아 긍정적인 사례를 제시해야 한다. 개인의 선행은 문제의 근본 해결이 아니다. 구조 속 ‘아이히만’은 어디든 넘쳐난다.

내가 이해한 부분은 복잡한 LH전세임대절차, 단체생활에 지친 아이들, 부족한 자립전담관 정도다. 만 18세 퇴소라는 문제제기와 해결에는 빈약한 내용이다. 아동보호시설 관계자의 하소연은 <한겨레21>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왜 시설에서 탈출하려는지 살펴야

진학률과 취업률이 낮은 상황에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것은 이상한 통계가 아니다. 이상한 것은 왜 진학률과 취업률이 낮은 상황에서 아이들이 밖으로 내몰리고 있냐는 것이다. 그렇게 사회로 나온 아이들은 또 다시 약자가 된다. 아동 1명을 10년간 시설에서 키우려면 보육교사 임금 등 직접 지원 예산만 연간 2500만원, 총 2억5천만원이 든다.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키운 아이들이 보호 종료 후 다시 수급자가 된다는 건 정책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이제는 ‘얼마’가 아닌 ‘어떻게’라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아이들 진학률이 낮은 이유가 단체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시설 내 폭력, 심리적 문제, 입소 시기에 따른 적응 차이에 있는 것은 아닌지 심층탐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해결방안은 단순 지원금 확대가 아닌 개인공간 증축, 심리상담관 확대, 입소 시기별 교육 정책 등으로 명확해질 것이다. 해외 모범사례 또한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틀에 박힌 ‘약자’ 프레임은 독자를 설득하지 못한다. 독자를 설득할 수 없는 이야기는 결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편집 :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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