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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펼침막 들고 군함도로 가자"

기사승인 2019.05.07  22: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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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비현장] '흑역사' 감춘 일본 하시마섬 방문기

지난달 14일 오전 10시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마츠가에 국제터미널. 나가사키항에서 하시마섬(군함도)으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이곳에 환경재단의 ‘피스앤드(&)그린보트’ 한·일 참가자 38명이 모였다. 피스&그린보트는 한일 양국 시민 1000여명이 약 일주일간 함께 배를 타고 한중일 유적지를 돌며 동아시아 역사와 환경문제를 생각하는 프로그램이다.

“모두 우산은 접어주세요. 군함도에 들어가서는 우산을 쓸 수 없습니다. 지금 비가 오는데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요. 가 봐야 압니다.” 

비바람 탓 연중 100일만 들어갈 수 있는 섬

 
바다에서 바라본 군함도(하시마섬) 전경. 회색 벽이 섬 전체를 둘러싸고 철근 콘크리트 건물들이 늘어선 외관이 1920년대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한 해군 전함 '도사(土佐)'를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軍艦島)’라 불린다. 파도가 울타리를 넘을 정도로 높게 치는 날에는 배가 섬에 접안할 수 없다. © 박지영

군함도 관광 규정상 비가 와도 우산을 펼 수 없다고 현지 한국인 가이드가 설명하자 참가자들은 각자 들고 있던 우산을 접고 우비를 챙겼다. 비는 한두 방울씩 내렸지만 군함도 도착까지 1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비바람이 거세질 수도 있었다. “군함도에 일곱 번 왔지만 일곱 번 모두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고 한 중년 한국인이 걱정했다. 하시마섬 관광홈페이지는 “풍속 5미터(m), 파도 높이 0.5m를 초과하는 경우 접안·상륙을 금지하며, 날씨 기준을 충족하는 일수는 연간 100일로 가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스&그린보트 참가자들과 일본 시민 등 200여 명을 태운 배가 출발했다. 군함도는 약 6만3000㎡(약 1만 9천 평)의 해저 탄광 섬으로, 야구장 2개 정도 크기다. 나가사키 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9km 떨어진 바다에 있다. 20대 때 군함도 안에서 탄광 일을 했다는 일본인 노신사가 승객들 앞으로 나와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과거 군함도 전경과 군함도에 살던 어린아이들의 모습 등 생활상을 담은 화면이었다.

영상에는 간단한 영어 자막이 나왔지만, 노신사의 일본어 외엔 다른 말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 한국인 가이드가 있었지만 배에 탄 이후 마이크 사용이 허락되지 않아 동시통역을 하지 못했다. 대다수 한국인 승객들은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일본어 설명만 제공, 외국인은 ‘깜깜이’ 관광 

 
군함도 탄광 노동자였다고 자신을 소개한 일본인 노신사가 마이크를 잡고 TV 화면을 보여주며 일본말로 설명했다. 배를 탄 1시간 동안 군함도의 역사, 생활상, 주변 시설 등을 소개했지만 대다수 한국 승객들은 알아들을 길이 없었다. © 박지영

흐린 날씨에도 배는 다행히 군함도 입구에 접안했다. 관광객들은 노신사를 따라 미리 정해진 견학 코스로 이동했다. 탄광 노동자들이 이용한 공동목욕탕이 있던 종합사무소, 30·31호동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 석탄을 저장하고 운반선에 실어 나르는 저탄 벨트 컨베이어 등 일부 시설을 멀찌감치 볼 수 있었다. 시설 보호를 위해 곳곳에 울타리가 설치돼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 강제징용된 한국인 노동자들이 가혹한 조건 속에 석탄을 캐다가 목숨까지 잃었던 곳. 군함도는 1974년 폐광 후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전까지 무인도로 방치됐다. 오랜 세월 동안 태풍과 비바람을 맞아 건물들 대부분이 뼈대 정도만 남긴 채 용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돼 있었다.

군함도에 도착해서도 한국인 관광객들의 답답함은 이어졌다. 노신사가 하는 말을 현지 가이드가 통역하긴 했지만, 마이크나 오디오 장비가 없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평소 서양인들도 많이 온다고 하는데, 외국인들은 제대로 설명을 듣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흥미로운 생활문화 유적지’로 포장된 섬 

“(당시 군함도에 살던 사람들이) 소변과 대변을 모아서 바다에 버리면 물고기들이 몰려듭니다. 그러면 군함도 사람들은 ‘저것들도 먹고 살겠다고 온다’ ‘본토 사람들은 저 물고기들을 사시미로 먹는다’며 웃곤 했지요. 여기 군함도에서는 여자 때문에 싸움도 많이 났습니다. 삽도 휘둘렀지요. 하지만 여자가 중재하면 남자들은 금방 화해하고 잘 지냈습니다.” 

노신사의 설명은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을 흥미롭게 묘사하는 데 집중돼 있었다. 탄광 작업과 갱 구조를 설명할 때도 “작업이 끝나면 ‘동료들이 안 죽었다’고 안심했다” “갱 안에는 화장실이 없었는데, 소변을 볼 때는 고양이처럼 조금씩 싸고 모래 같은 걸로 파서 덮었다”며 우스개처럼 말했다. 끌려온 한국인, 중국인 노동자들의 참상 등 ‘흑역사’는 거론하지 않았다.

 
우비를 쓴 관광객들이 노신사가 안내하는 견학 코스를 따라 군함도 곳곳을 살펴보고 있다. 탄광 노동자들이 이용한 공동목욕탕이 있던 종합사무소, 노동자들이 살았던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 등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 박지영

피스&그린보트 일본인 참가자 노히라 신사쿠(54)씨는 “군함도를 너무 미화했다”며 “조선인 강제징용 등의 역사적 사실은 빼놓고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으로만 포장했다”고 평했다.

누구에겐 ‘지옥’이었던 곳 ‘세계문화유산’으로 홍보 

<을사조약 이후 일본의 ‘한국병합’ 과정 연구> 등 다수 논문을 통해 근대 한일관계사를 조명해 온 한성민(47)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군함도 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1887년 굴착한 제1 수직갱, 군함도를 둘러싼 방파제 두 가지인데 관광 코스에선 아파트 등 다른 시설들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실제 그 아파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제대로 얘기하지 않았다”며 “군함도 내 아파트는 높이에 따라 신분이 달라지는 차별적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거센 파도 때문에 아파트 바닥이 항상 물에 젖어 있는 최하층에는 주로 조선인과 중국인이 살았다. 중간층에는 일본인 노동자가, 그 위층에는 간부들, 아파트 최정상에는 관리소장이 살았다고 한다. 일본식 사당인 신사(神社)도 맨 위층에 있었다.

 
노동자들이 살았던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들. 1916년에 세워진 30호 동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노신사의 설명에 따르면 태풍이 칠 땐 아파트 옥상까지 파도가 올라갔다. 군함도에는 거주용 아파트, 병원, 파출소, 영화관, 학교, 유치원 등 총 71개의 건물이 있었다. © 박지영

노동 조건 또한 차별적이었다. 누워서 일해야 할 만큼 가장 열악했던 작업장에는 중국인이 투입됐고 조선인, 일본인 순으로 작업환경이 나아졌다고 한다. 한 교수는 그러나 “일본인에게도 하시마는 지옥섬이었다”며 “일본인은 그래도 서서 일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는데, 그 여유란 ‘차라리 죽자’고 할 수 있는 ‘자살할 수 있는 여유’였다”고 말했다. 당시 탄광에서 일했던 일본인 노동자들 역시 일본 사회의 최하층민이었고 조선인,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탄광 작업에 강제 동원됐다는 것이다.

‘하시마섬 전체가 하나의 가족이었다’고 미화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존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한수산의 소설 <군함도>에는 섬을 탈출한 조선인들이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피폭 피해까지 보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나가사키 시내 '군함도 디지털 박물관'에서 틀어주는 영상은 “하시마 탄광에는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도 적지 않았다”며 “나라와 출신지 관계없이 목숨을 걸고 동료로서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설명한다. ‘하시마섬 전체가 하나의 가족과도 같았다’고도 표현했다.

일본 케센여학원대학 국제사회학과에서 가르치는 재일동포 이영채(48) 교수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일본이) 어둡고 잔인하고 인간으로서 만들어서는 안 될 공간을 만들어서 강행했음에도 그런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한 사진과 영상, 그리고 아이와 여성의 이야기로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쟁 시기 강제동원 등의 잘못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탄광 사고로 죽은 노동자나 임금·처우 문제, 탈출 사건 등 탄광의 여러 구조적 문제를 왜곡·은폐했다는 것이다.

 
나가사키 시내 '군함도 디지털 박물관'의 전시물. 박물관 내에는 30m 길이의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는데 일본인 탄광 노동자들과 섬에 살던 아이들의 모습 등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한국인 노동자 등 강제징용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 박지영

아베 정권이 정치화한 군함도, 한국 대응 필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015년 군함도를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역사의 전모를 밝히라’고 일본 정부에 권고했다. 강제징용 사실 등을 공개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권고를 여전히 무시하고 있다.

이영채 교수는 “일본 정부는 서민들에게 ‘군함도가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유네스코 권고 사항을 하나도 지키지 않으며 국제 조약을 무시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와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가 지적하지 않으면 아베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해주는 쪽으로 활용될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지금 군함도 관광코스가 일본 사회에서는 대중화했습니다. 새로운 아베 정책입니다. 군함도가 메이지 시대의 산업유산이 됐고 일본 사람들은 이런 산업유산들을 관광하며 자긍심을 가집니다. 전후의 일본 모습보다는 전전의 모습인 메이지 유신 시대의 유적지를 만드는 것이죠. 관광이지만 정치화한 것입니다. 교묘하죠. 그러니까 한국에서 말하는 강제징용 문제는 넣기 싫겠죠.”

   
▲ 이영채 교수는 아베 정권이 일본인에게 자긍심을 불어 넣는 유적지로 군함도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강제징용 등 어두운 역사를 밝히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JTBC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강제징용 실상 확인 거부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1943년에서 45년 사이 500~800명의 조선인이 하시마 탄광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화장(火葬) 관련 문서로 확인된 사망자만 50여 명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하시마 탄광을 운영했던 기업 미쓰비시는 조선인 강제 징용의 정확한 규모와 사망자 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일본 정부에게 유네스코 권고 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시민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군함도를 많이 방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일 시민단체들이 가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 못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방문해 메모도 남기고 항의와 시위도 하는 것이죠. ‘강제징용 사실 정확하게 기록하라’ 등의 펼침막을 한국 시민들이 단체로 준비해서 오면 훨씬 더 효과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여행사들도 군함도 투어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또 일본 나가사키로 직접 가서 야마사 해운, 군칸지마 크루즈 등 5개 회사의 군함도 투어를 이용할 수도 있다. 현지 투어는 보통 오전 9시, 오후 1시 출발로 하루에 두 번 운영되며 비용은 뱃삯과 상륙 후 시설이용료 등 약 4500엔(약 4만8000원) 정도다.


편집 : 박지영 기자

박지영 장은미 기자 bing8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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