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장애인’

▲ 오수진 기자

2017년 가을, 홍콩에 갔다. 공항에서부터 여행 내내 귓가에 맴돌던 기계음을 잊을 수가 없다. ‘뚜뚜뚜뚜.’ 에스컬레이터나 횡단보도, 승차권 발매기 근처만 가면 어김없이 쩌렁쩌렁 이 소리가 울렸다. 가만 보니 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신호였다. 그때부터였을까? 거리에 이동약자를 태우는 데 시간 지체를 주저하지 않은 버스,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 앞이 보이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불편한 시선을 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몸이 불편하지 않은 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 모두에게 거리의 요란한 기계음은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였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공동체와 유기적으로 융합되지 못하는 한국의 장애인들은 삶을 ‘부정’당한다. 새해 첫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청각·언어 장애인의 전화 소통을 돕는 손말이음센터 수화 중계사를 무더기 해고했다. 이들 중계사는 지난 2005년부터 청각·언어 장애인에게 통신중계서비스를 했다. 청각장애인에게 이곳은 사회와 연결되는 ‘생명줄’과 같은 곳이었다. 그런 곳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김원영 변호사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질병, 가난,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소수권자들을 ‘실격당한 자’로 표현한다. ‘실격’은 기준 미달 등으로 자격을 잃음을 뜻하는데 그의 말처럼 이들은 사회에서 단지 정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의 권리’를 박탈당해 어떤 일을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 홍콩에서는 장애인이 이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횡단보도와 에스컬레이터, 승차권 발매기 등에서 일명 '도움신호'가 24시간 작동된다. ⓒ 오수진

장애인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의학적 장애에 따라 1~6급으로 나눠 복지서비스를 차등지급 해왔던 장애인 등급제(오는 7월 폐지)나 선거철만 되면 장애인들을 퍼포먼스의 도구로 활용하는 정치인들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해찬과 홍준표, 두 거대정당 전현직 대표의 장애인 비하 발언 역시 상대를 향한 성찰이 빠진 상호작용의 연속이다. 지난 2017년 서울 강서구 주민들은 특수학교 설립 문제를 두고 반대 투쟁을 벌였다. 그들은 공개된 곳에서는 장애인을 한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라 말하면서도 자기 이해관계가 걸리면 이기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 건강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것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어떤 곳이든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보편적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은 집에서 나오는 것부터 모험’이라고 한다. 소수자의 삶이 일반인의 삶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사회는 이들을 위한 성찰이 필요하다. 사회와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장애에 노련해져 불편한 시선 따위는 감수해야만 하는 이들의 삶이 ‘잘못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사회는 말해줘야 한다. 소수자의 삶도 사회를 구성하는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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