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피스 앤 그린보트’ 선상 토론회

“1950년부터 2015년까지 65년 동안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83억 톤(t)이에요. 이중 26억t은 사용 중이고 재활용하는 것은 약 9%에 그칩니다. 나머지는 버리거나 매립하거나 소각하죠.”

한일 양국 시민 1천여 명이 한 배에 타고 동북아시아의 환경과 역사문제 등을 함께 생각하는 ‘피스 앤 그린보트’ 프로그램 중 지난 10일 열린 ‘플라스틱 시대와 우리의 자세’ 토론회에서 김영춘(57)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한 말이다. 1년 9개월 최장수 해수부 장관 재임 기록을 세운 후 지난 4일 퇴임한 그는 이날 발제자로 나서, 플라스틱이 해양 환경 등에 끼치는 영향과 대안을 설명했다.

국내 해양 사고, 매일 1건은 ‘이것’ 때문에 발생

▲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피스 앤 그린보트’ 선상 토론회에서 장관시절 고민했던 플라스틱 바다 쓰레기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장은미

그는 “장관 시절 제 책상에는 매일 해양 사고 현황 보고서가 올라왔는데, 사고 원인이 해양 쓰레기인 경우가 1건씩은 꼭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지난 2013년부터 5년간 발생한 국내 해양사고 8081건 중 11%가 플라스틱 쓰레기 탓이었다. 우리나라 바다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연간 6만 7천t으로, 해양생물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합성섬유로 된 그물도 넓게 보면 플라스틱인데, 버려진 그물에 물고기가 갇혀죽는 ‘유령어업’ 등으로 연간 어획량의 10%인 3800억원 가량의 조업 손실이 발생한다. 그는 바다에서 잘게 부서진 미세플라스틱이 먹이사슬에 들어와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현상도 설명했다.

김 전 장관은 “해수부에서 수거 대신 예방 중심의 ‘해양플라스틱 제로화’ 정책을 고민했다”며  “어민들이 폐부표, 폐어구 등 해양 쓰레기를 책임지고 회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나 전자어구식별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륙에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바다에 쓰레기를 보내지 않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환경부와 협업으로 포장재와 일회용품을 줄이는 사업을 추진하고 주변 국가들과 바다 쓰레기 공동 조사 및 유입방지 협력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회의원으로 돌아간 그는 올해 중 약칭 ‘해양폐기물 관리법’을 발의, 이런 대안을 현실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버리기’ 유도한 플라스틱 제조사의 마케팅

홍수열(44)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도 발제를 통해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는 “1950년대 일회용품이 출시됐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쉽게 버리지 않자, 플라스틱 업계가 쓰레기를 만드는 것에 산업의 흥망이 달려있다고 여기고 버리기를 유도하는 마케팅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플라스틱 사용량은 1950년 연간 2백만t에서 65년 후 연간 4억8백만t으로 2백 배 이상 늘었다.

“160년 전 당구공을 만드는 코끼리 상아를 대체한 물질이 플라스틱이었어요. 이후 플라스틱은 어마어마하게 영역을 확대해왔죠. 다른 나라에서는 석유에서 뽑아낸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 합성수지 전체를 플라스틱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선 그런 것들을 플라스틱으로 인식하지 않아요. 현재 플라스틱 쓰레기 1%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그게 계속 누적돼 해양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 등으로 인간 생존이 위협받고 있죠.”

바다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리는 국가 순위를 보면 1위가 중국이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대부분 상위권에 있다. 그는 “개별 국가가 아니라 아시아와 전 세계적인 협력관계 속에서 이런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쓰레기 대란’과 ‘필리핀 불법수출 쓰레기 사건’ 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고 그는 덧붙였다.

▲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플라스틱은 우리 주변 대부분의 물건에 포함돼 있다”며 해양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 등으로 위협 받는 인간의 건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장은미

‘대안적 소비’ 어떻게 가능할까 토론

토론 참석자 40여 명은 발제를 들은 후 플라스틱으로 된 물건과 그것의 대체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서하늘(17‧서울 송곡관광고)양은 “우리가 쓰는 많은 물건에 플라스틱이 들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며 “물건을 오래 쓰는 습관을 들이고, 콩이나 숯으로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홍 소장은 “대체 물질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플라스틱 속성을 제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곡물 등을 이용했을 때 유전자변형 식물과 같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답했다.

▲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덜 쓰는 방법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참가자들. ⓒ 장은미

배에서 환경재단 지원으로 ‘플라스틱 없이 살기’에 도전한 참가자 10여명은 대나무 칫솔, 샴푸 바(샴푸 겸용 비누), 휴대용 컵, 대나무 빨대, 치클 껌(천연성분 껌) 등을 써본 경험담을 발표했다. 신고운(32·경기도 부천시)씨는 “(일반)껌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나무 칫솔은 이미 쓰고 있었는데 대나무 향이 너무 좋다”며 “다만 사람들이 쉽게 살 수 있도록 공급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구나경(21‧서울시 등촌동)씨는 “대나무 빨대를 사용한 뒤 세척하는 게 번거로웠지만 환경보존에 일조한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 좋게 참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수진(32‧서울시 구로동) 씨는 “입이 작은 편인데 대나무 칫솔이 커서 사용하는데 불편했다”며 “관련 물품의 선택 폭이 넓다면 더 많은 소비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20‧서울시 신사동)씨는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 캠페인 참여를 계기로 플라스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며 “샴푸 바가 좀 딱딱해서 아쉬웠지만 대체품들 대부분이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 배에서 환경재단 지원으로 ‘플라스틱 없이 살기’에 도전한 참가자들이 소감을 전했다. ⓒ 장은미

생산과 유통 단계에서 대체품 선택 쉬워야

홍수열 소장은 플라스틱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체품을 쓰는 게 쉽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 없는) 고형비누를 만들고 그것을 파는 가게에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해외에서는 '라이프 위다웃 플라스틱(Life Without Plastic)' 등 온라인 상점에서 대체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산자 책임도 강조했다. 음료 용기 중에 플라스틱 몸체와 라벨(상표)이 분리가 안 되는 것이 많은데 생산단계에서 아예 그런 제품을 만들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또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해서, 재활용이 안 되는 제품을 만들었을 때 물건이 안 팔리겠구나하는 위기의식을 생산자들이 느끼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쓰레기 정책과 관련해서도 홍 소장은 “정부가 분리수거와 관련해 보다 세밀한 기준을 제시하고 가정에서는 세제, 화장품, 약품 등 내용물을 반드시 비우고 세척해서 내놓는 등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편집 : 이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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