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양안선 PD

그날 나는 672번 버스를 타고 있었다. 서울 신촌에서 방화동 가는 버스다. 중간고사 때문에 전날 중앙도서관에서 밤을 샜다. 사람 없는 아침 버스에서 반쯤 감긴 눈으로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었다. 버스기사님 머리 위에 달린 조그마한 모니터에서 그 소식이 흘러 나왔다. 거대한 선체가 바다 한가운데 기울어진 채 잠겨 있었다. 놀란 것도 잠시, 밑에 흘러나온 ‘전원 구조’라는 글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들 중 하루라고 생각했다.

4월 16일. 이날은 더 이상 평범한 날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잠깐 사이에 저버린 청춘들이 우리 가슴에 남았다.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해마다 이날이 돌아오면 가슴이 아려온다. 사라져 버린 책임자들로 남은 부모와 유족들은 한 맺힌 날이 되었다.

왜 그토록 많은 생명이 구해달라 발버둥치다 떠나게 내버려 두었는지, 뒤집어진 선체가 완전히 가라앉기까지 51시간 동안 안에 있던 애들은 왜 단 한 목숨도 구하지 못했는지, 대통령이 사고 즉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으면 달라졌을 텐데, 사고 발생 후 7시간 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 없이, 의문만 쌓이면서 5년이 흘렀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아 버린 아이들을 부모들은 가슴에 묻었다. 가슴에 묻었지만 그 영혼은 고통 없이 자유로운 곳으로 훨훨 날아가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 영혼은 아직도 맹골수도를 떠나지 못하고, 부모들 마음도 팽목항을 맴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어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고 보낼래야 보낼 수가 없다.

▲ 5년이 흐른 지금도 아이들 영혼과 유족들 마음이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이 우리 사회가 건넬 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이자 책무다. © pixabay

이런데도 자유한국당 차명진 전의원은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고 했고, 정진석 의원은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그러면 안 된다. 이제 징글징글해요'라는 말을 퍼 날랐다.

정치인이라면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 문책을 하는 데 앞장서야 마땅할 텐데 끔찍한 막말로 부모들 마음 속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우려 먹는다’고 했는데 가버린 아이들의 부모들은 우려 먹는 것이 아니라 ‘울며 먹는다’. 아이들이 불쌍하고 진상규명과 문책이 없으니 억울하고 원통해서 울며 울며 하루 하루를 견디는 것이다.

차명진 전의원은 거짓말까지 덧붙여 허언을 하고 있다. 그는 ’개인당 10억의 보상금을 받아 안전사고 대비용 기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유족들이 10억의 보상금을 받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작년 말 기준 세월호 희생자 180명의 유가족은 ‘4•16 세월호 참사 배상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평균 4억7천만원을 인적배상금과 위로지원금으로 받았을 뿐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세월호 유족을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얻고 있다는 피해의식에서 ‘우려먹는다’거나 ‘해 처먹는다’고 생각했을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말까지 늘어 놓으면서 거꾸로 ‘세월호 참사’를 우려먹고 해 처먹고 있는 것이다.

‘징글징글하다’며 피로감을 느끼기에는 세월호 참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 5년이 흐른 지금도 진상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만하면’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리학자 하르트만에 따르면 진실성이란 상대가 진실을 알길 원하는 소망이며 그에 대한 도덕적 책임까지 지는 태도라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들은 진실성이 결여된 일말의 사실뿐이다. 침몰 당시 CCTV 영상이 조작됐다는 것이 5년이 지난 이제서야 드러나는 것이 세월호 진상 규명의 실상이다.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향한 진실성 있는 자세는 결여돼 있다. 5년이 흐른 지금도 아이들 영혼이 그 바다 위를 떠돌고 유족들 마음이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들에게 2014년 4월 16일 이전의 삶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평범한 나날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그날의 진실을 밝혀주는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이자 책무다.


편집 : 박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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