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단톡방(단체 카카오톡)에서 피해 여성을 품평하고, 성적으로 소비하고, 불법으로 촬영한 영상을 유포하는 것이 (가수 정준영 등) 그들의 놀이문화였던 거죠. 남성들의 카르텔이라고 할까요? (일반인들도) 누가 야한 동영상을 올렸을 때 문제제기를 하기는 쉽지 않죠. 인간관계 때문에요. 하지만 내가 그걸 묵인했을 때 범죄의 방조자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서 ‘아니다’고 해야 변화가 생깁니다.”

1991년 국내 첫 성폭력상담소 개설에 참여한 후 28년간 여성인권운동가로 활약해 온 이미경(58)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이 4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정준영 몰카’ 등 최근 성범죄 사건들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 소장은 피해여성 지원과 입법 운동 등을 통해 성폭력특별법(1994년), 남녀차별금지법(1999년), 남녀고용평등법(1999년) 등의 제정과 개정에 기여했다.

2015년 이미 예고됐던 ‘버닝썬’ 약물 성폭행

이 소장은 가수 승리가 지분을 가진 클럽 ‘버닝썬’에서 약물을 이용한 성폭행이 빈발했다는 보도와 관련, “이미 지난 2015년부터 (일부 클럽 등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고발이 있어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범죄예방 캠페인을 벌였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 강남지역과 홍대 인근 주점·클럽들을 대상으로 술에 약물을 탄, 이른바 ‘작업주’를 만들지 않는다는 내용의 스티커를 부착하도록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를 마케팅에 활용한 기업과 이를 비호한 공권력을 응징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이 소장은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는 피해자가 정신을 잃기 때문에 사건의 전말을 인지하기 어려워 (범죄 해결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며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아 돈을 번 클럽 등 기업과 이들을 비호한 공권력이 있다는 게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청장이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했지만 여론은 지금까지 뭘 했냐는 반응”이라며 “신뢰를 잃은 검찰과 경찰은 굉장히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소장은 특히 이 사건 관련 동영상을 찾는 사람들로 인해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성범죄 동영상 검색도 똑같은 범죄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력형 성범죄 진상규명 위해 공수처 필요

이 소장은 여배우 성 착취 사망사건,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범죄 의혹과 관련 “국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권력이 성범죄와 사건 은폐에 쓰였다”며 “과거 수사가 무엇을 감추었으며 여기에 권력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밝히는 게 재수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고통 속에 숨진 피해자와 어렵게 증언하고 있는 목격자에게 진상규명으로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며 “죄를 짓고도 떳떳하게 살고 있는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현 정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공권력의 범죄 은폐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법안이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소장은 성범죄 사건 재판과 관련, ‘가해자 전문 변호인’의 문제도 제기했다. ‘아동성폭행, 강간, 강제추행 등의 범죄를 무죄 혹은 집행유예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광고하는 법률회사(로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 회사는 홈페이지에 자기네가 지원해서 무죄, 혹은 집행유예를 받은 사건 기록을 올려두고 ‘호객’을 하고 있다고 이 소장은 전했다.

▲ ‘성범죄 가해자 전문 변호인’ 때문에 반성하지 않는 성범죄자가 법망을 빠져나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탄식하는 이미경 소장.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저희가 상담을 진행하다보면, 어제까지 잘못했다고 했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해서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알고 보면 소위 가해자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서 ‘카톡에 절대 사과한다는 말 쓰지 말 것’ 등의 지침을 받은 거더라고요. 정말 이게 사회냐고요.”

이 소장은 이런 변호사들이 가해자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는 일도 늘었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폭력이 시장으로 가 버렸다”고 탄식했다. 그는 사법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합의나 공탁을 이유로 가해자에게 감형을 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돈을 냈다고 (범죄를) 감경해 주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며 나아가 범죄라고 생각한다”며 “사법부는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녀의 ‘성인지 감수성’, 부모 언행이 중요

▲ 이미경 소장은 ‘성인지 감수성’이 풍부하고 인권 의식이 있는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가 말과 행동으로 본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외동아들을 둔 이 소장은 “성별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따듯한 품성을 가진 아이로 키우려고 노력했다”며 “부모가 좋은 본이 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좋은 역할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부모가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의심하는 대화를 한다면 자녀들은 부모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죠. 부모의 인식과 태도가 자녀 양육에, 그리고 자녀의 앞길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경제방송 SBSCNBC는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 2019 시즌방송을 3월 14일부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1시부터 1시간 동안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영상과 주요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편집 :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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