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옥천묘목축제 20돌 행사 성황

‘흙에서 자란 내 마음 /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 풀섶 이슬에 함추룸 휘적시던 곳’

정지용의 시 ‘향수’의 고장, 옥천의 좋은 흙에서 농민들이 마음을 다해 기른 묘목을 전시판매하는 옥천묘목축제가 성황리에 끝났다. 지난 3월 28일부터 나흘간 열린 옥천묘목축제는 올해로 스무 돌을 맞았다.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고향 같은 옥천

기차역에서 내려 잠시 옥천읍내를 돌아다녀 보면 이곳이 정지용 시인의 고향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옥천역 앞 ‘지용시비’에는 그의 시 ‘고향’이 새겨져 있고, 작은 영화관에도 ‘향수시네마’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심지어 옥천 특산물인 포도와 복숭아에도 ‘향수포도’, ’향수복숭아’라는 이름이 붙었다. 금강변을 따라가는 자전거 산책로 이름도 ‘향수100리’다.

옥천은 <한겨레신문> 창간 주역인 청암 송건호와 육영수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사의 큰 인물을 여럿 길러낸 옥천은, 사람 기르듯 묘목과 모종도 잘 기르는 곳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식물 생육에 좋은 마사토 땅에서 농민들이 정성을 다해 묘목을 기른 덕분이다.

▲ 옥천역 앞 지용시비에는 정지용의 시 ‘고향’이 새겨져 있다. ⓒ 정소희
▲ 옥천묘목축제장 입구. ⓒ 옥천군청

“10년 만에 참가 농원 두 배로 늘었어요”

행사 마지막 날인 31일 옥천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30분쯤 달리자 축제장인 이원면에 도착했다. 옥천군청 김흥수 산림관리팀장은 옥천묘목축제의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다고 자랑했다.

“세종, 경산, 조치원도 묘목을 기르지만, 단일 품종이거나 규모가 작은데, 이곳 옥천은 조경수, 유실수, 과실수를 모두 기르고 규모도 전국에서 제일 큽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묘목축제를 열었다가 한 해 만에 포기했는데 여기는 계속했지요. 이번 축제에 참가한 농원이 72개인데, 10년 전만해도 절반 수준이었지요.”

묘목축제뿐 아니라 옥천 포도·복숭아 축제 등 지역축제 업무를 10년 이상 해왔다는 그는 지역 축제의 발전 방향에 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축제를 찾는 사람들이 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다르다 보니 정해진 예산을 어디에 안분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방문하는 시간에 따라 관심사가 다르니 프로그램 짤 때도 그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요. 지역축제 어디를 가도 먹거리시장이 판박이라서 차별화 고민도 했습니다. 지역축제다 보니 (축제에 참가하는) 지역의 문화단체, 예술단체, 농업단체의 특징이 다 다른데, 이 사람들 목소리를 어떻게 하나로 모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에 생긴 로컬푸드 매장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대전 같이 큰 지역에도 옥천로컬푸드 매장을 내고 싶습니다.

▲ 묘목축제장으로 방문객들이 들어서고 있다. ⓒ 옥천군청

행사장에는 어린이를 위한 승마체험장, 드론체험부스, 동물농장 등이 운영되고, 인공호흡교육과 군장비교육 등을 하는 곳도 있었다. 조경과 농사에 관심있는 이들을 위한 농기구 시연·판매 부스, 공예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부스 등도 자리 잡았다. 묘목을 파는 4개 부스에는 옮겨 심기 위해 접붙이기와 가지정돈 등을 거친 어린 나무와, 꽃 모종 등이 즐비했다.

▲ 방문객들이 묘목을 구경하고 있다. ⓒ 정소희

이주민과 함께하는 지역축제

‘지역공(동)체일자리사업’이라는 이름의 부스에서는 손뜨개 인형이나 열쇠고리를 팔고 있었는데 부스를 지키는 이가 이주여성이었다. 캄보디아에서 옥천으로 온 지 7년째인 정민아(27) 씨는 “군청에서 하는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참가했다”면서 “올해는 날씨가 추워서인지 작년보다는 손님이 좀 적다”며 아쉬워했다.

다문화가족협의회에서 운영하는 베트남 음식 부스도 행사장 입구에 있었다. 한 군청 직원은 “전에는 지역축제에 함께하기 쉽지 않았는데, 10년전보다 다문화가정이 많이 늘어 이주민과 함께하는 지역축제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 ‘묘목 나누어주기’ 행사는 특히 인기를 끌어 많은 이들이 묘목을 받아갔다. ⓒ 정소희
▲ 싱싱농원 강상규 대표는 “나무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으로 축제에 참가한다”고 말했다. ⓒ 정소희

대를 이어 묘목 농사 짓는 농민도 많아요”

옥천에서 묘목농업을 한 지 14년째라는 강상규(62) 싱싱농원 대표는 “옥천 하면 나무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으로 좋은 품질의 묘목을 골라 온다”고 말했다.

“축제장에 나오는 묘목은 평소보다 15%쯤 쌉니다. 이원면이 묘목으로 유명한 이유는 마사토 덕분이죠. 물이 잘 빠지는 토양이라 묘목이 잘 자랍니다. 예전에는 대량구매하는 손님이 많았는데 올해는 주로 소량으로 팔리네요. 경기가 이렇다 보니… 작년 3분의 1 수준인 것 같네요. 작년에 가뭄이 들어 고객들이 많이 찾는 유실수 묘목을 많이 내오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 축제운영위원 명찰을 목에 건 산·들·바람 농원 대표 정상봉 씨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정소희

산·들·바람농원 정상봉 대표는 귀농해서 묘목을 가꾸고 있는데 5년째 축제에 참가했다.

“귀농한 지 10년이에요. 여기서 10년은 얼마 안 된 거예요. 대를 이어 묘목 농사 짓는 집도 많으니까요. 전국에서 묘목으로 제일 유명한 곳에 자리 잡기 위해 옥천으로 왔습니다.”

▲ 동생들과 나들이 온 심영은(왼쪽) 씨가 묘목축제에서 산 작은 화분을 들고 촬영에 응했다. ⓒ 정소희

“젊은이도 많이 찾아오는 축제가 됐으면…”

축제장에는 젊은이들도 꽤 눈에 띄었다. 대전에서 동생들과 함께 온 심영은(26) 씨는 싸게 산 작은 화분을 자랑했다.

“이 꽃은 인터넷에서 8천원인데 3천원에 샀어요. 가드닝(gardening)에 관심이 많아 꽃을 보러 왔거든요. 축제에서 (꽃이나 묘목을) 많이 사려고 했는데 계좌이체나 카드결제도 안 된다고 해서 (축제장 주변) 농원으로 가려고요. 그래도 세 번째 찾는 옥천묘목축제인데 화장실도 새로 짓고 주차공간도 이전보다 편리해졌네요.”

가족단위 방문객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대전에서 두 딸과 함께 온 이용호(43) 씨 부부는 “장난감 증정 등 행사도 다채롭고 아이들도 즐거워해서 내년에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 날씨는 쌀쌀하지만 하늘이 맑아 축제를 알리는 애드벌룬이 더욱 선명해 보인다. ⓒ 정소희

편집 : 강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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