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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0년전 점토판 사전, 고대의 ‘교과서’

기사승인 2019.03.12  14: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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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환의 유물풍속문화사] ㉞ 종이 발명전 학교 교재

   
▲ 한나라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에 세워진 국가 검정교과서 희평석경. ⓒ 시안 비림 박물관
   
▲ 메소포타미아 학교 교재. ⓒ 루브르 박물관

2018년 추석 개봉영화 ‘안시성’은 고구려의 투쟁역사를 재조명하며 호평받았다. 연개소문(유오성 분)이 지시를 따르지 않는 안시성주(조인성 분)를 살해하라고 보낸 사물. 모델 출신 남주혁이 분한 사물은 가공인물이지만, 영화에서 사물이 다니던 수도 평양의 태학(太學)은 실제 고구려 최고 교육기관이다. 372년 한국사 최초의 학교, 태학을 세운 인물은 소수림왕이다. 아버지 고국원왕이 371년 백제 근초고왕과의 전투에서 전사하며 즉위한 소수림왕은 강대국 고구려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즉위 1년 뒤, 태학 설립에 이어 당시 중국 중원을 장악한 티베트 출신 저족의 전진(前秦) 왕 부견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다. 373년에는 율령을 반포하며 통치체제를 갖춘다.

이를 기반으로 조카 광개토대왕(재위 391∼412년)이 고구려를 아시아의 강국으로 키운다. 영화에서 지방 호족의 아들 사물을 비롯해 고구려 귀족 자제들이 다녔을 태학의 교재는 ‘논어(論語)’ ‘맹자(孟子)’ 등의 사서오경일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의 책은 종이로 만들었을까? 3월 신학기를 맞았다. 종이 이전 학교 교재 문화를 들여다본다.

   
▲ 유학 기본 교재인 ‘맹자’의 장유유서 내용이 담긴 한나라 시대 목간. 둔황 출토. BC 2∼AD1세기. ⓒ 란저우 간쑤성 박물관
   
▲ 이집트 신전 경전 샤바카 스톤. BC 8세기. ⓒ 대영박물관

고구려 안악3호묘 벽화 4세기 목간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충주 요금소에서 나와 시내 방향으로 10분여 가면 남한강변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에 이른다. 동네 아낙들 빨래터 받침돌로 쓰이던 넓적한 돌이 5세기 말 고구려비로 1979년 판명되면서 한국 고대사가 다시 쓰인다. 고구려가 신라를 동이족, 신라왕을 매금으로 부르고, 신라 땅에 주둔군 사령관을 두는 등 고구려-신라 관계를 조명하는 새로운 잣대가 담겼기 때문이다. 국보 205호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의 또 다른 볼거리는 고구려 고분벽화다. 묘실 벽에 화려하게 그린 벽화는 1500∼1600년 전 고구려 아니 우리 민족의 풍속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 있는 풍속화첩이다.

일찍부터 대륙문화가 유입된 대동강 남쪽 황해도 안악군 안악3호묘는 묘실 앞 전실 좌우로 작은 측실이 딸렸다. 왼쪽(서쪽) 측실 벽화에 눈길이 멈춘다. 근엄한 표정으로 앉은 묘주 표정이 마치 생존인물처럼 생생하다. 묘주 양옆으로 신하 혹은 집사로 보이는 인물이 한 명씩 서 있다. 왼쪽 인물은 오른손에 붓, 왼손에 목간 하나를 들었다. 무엇인가 쓰는 포즈다. 오른쪽 인물은 목간을 촘촘하게 엮은 목간첩(帖)을 들고 무엇인가 읽는 모습이다. 무덤 제작연도는 357년, 고국원왕 시기다. 4세기 중반 왕, 혹은 왕에 버금가는 최상위 고구려 귀족 무덤에 종이책이 아닌 목간첩을 그려놓았으니 당대 책은 목간첩이었다는 얘기다. 후한 105년 채륜이 종이를 발명했다지만,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은 거다. 안악3호묘 벽화에 목간첩을 그린 15년 뒤 372년 소수림왕이 설립한 태학의 사서오경 책들도 이런 목간첩이었을까?

   
▲ 황해도 안악3호묘 벽화. 357년 제작. 복제품. ⓒ 충주고구려비 전시관

시안(西安) 무릉 박물관 한나라의 죽간 활용 재현

중국 역사고도 시안은 상나라를 무너트린 주나라의 수도 호경이 근처에 자리하는 것을 비롯해 BC 11세기부터 중국 역사의 중심 무대다. BC 221년 통일제국을 세운 시황제의 진나라 수도 역시 시안 근교 센양(咸陽)이다. 진나라를 무너트리고 등장한 한나라(BC 206∼220년)의 시조인 고조 유방과 BC 108년 고조선을 멸망시킨 무제 유철의 무덤도 모두 시안 근교다. 시안 서쪽 흥평현에 거대한 산처럼 버티고 선 무제의 무덤 무릉(武陵)으로 가보자.

중국 당국은 비록 무릉을 발굴하지 않았지만, 주변 부장곽 출토유물을 모아 무릉 박물관을 세웠다. 박물관에는 무제가 정사 돌보는 장면을 인형으로 재현해 놨다. 무제의 말을 받아 적는 서기의 모습을 보자. 큼직한 벼루에 먹을 갈아놓고 붓을 들어 부지런히 적는 것은 종이가 아니라 죽간이다. 대나무를 잘게 잘라 엮은 죽간첩을 펼쳐놓은 모습에서 종이 이전 중국의 필기문화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무제보다 앞선 BC 5세기 맹자나 BC 6세기 공자가 배우거나 가르친 책들도 당연히 죽간이나 목간첩이다. 복원품 말고 실제 유물을 볼 수는 없을까?

중국 간쑤(甘肅)성 박물관 한나라 ‘맹자’ 죽간

무대를 시안에서 서쪽 내륙 간쑤성의 성도 란저우(蘭州)로 옮겨보자. 간쑤성은 한족의 중국 문명권 외곽이자 황하 상류다. 시안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의 경유지다. 란저우 간쑤성 박물관은 기마문화를 대변하는 유물을 비롯해 희귀유물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죽간이다. 간쑤성 서부는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건조 사막지대다. 나무나 섬유로 만든 유물이 썩지 않고 수천 년 보존되기도 하는 이유다.

죽간은 석굴로 이름 높은 둔황(敦煌) 등에서 발굴한 서한(BC 206년∼AD 8년) 시기로 2000년이 넘었다. 가늘고 좁게 자른 대쪽 위에 붓으로 촘촘하게 적은 내용은 다양하다. 편지부터 행정업무, 유학 경전까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죽간은 공자의 말씀을 정리한 ‘논어’와 맹자가 직접 썼다는 맹자 사상의 핵심 ‘맹자’다. 간쑤성 박물관에 남은 ‘맹자’의 내용은 장유유서(長幼有序) 관련 대목이다. 유학의 기본 서적인 사서오경은 물론, 가죽끈이 3번이나 끊어질 만큼 독서를 많이 했다는 공자 위편삼절(韋編三絶)의 책도 죽간첩을 포함한 목간첩이었다.

비석 검정교과서 175년 한나라 희평석경

다시 시안으로 가자. 시안 비림 박물관은 ‘비석의 숲(碑林)’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중국 역사를 아로새기는 다양한 비석으로 즐비하다. 2000년 중국 비석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가운데 한나라 시대 만든 비석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희평석경(憙平石經). 희평(憙平)은 광무제 유수가 수도를 시안에서 뤄양(洛陽)으로 옮겨 재건한 후한의 황제인 영제 유굉의 연호다. 172년부터 사용됐다. 석경(石經)은 돌에 새긴 경전을 말한다.

희평석경은 175년(희평 4년) 유학의 주요 경전을 표준화하기 위해 국가에서 ‘논어’를 비롯한 7개 경전을 검증해 돌에 새긴 비석이다. 용도는? 수도 뤄양의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에 세워 학생들이 올바른 경전 내용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거다. 요즘 국정교과서 혹은 검정교과서다. 200년 뒤 설립된 고구려 태학은 한나라 태학을 본뜬 것이니 교과서 역시 마찬가지였을 게 틀림없다. 동탁이 뤄양을 불태울 때 파괴된 희평석경의 파편들은 시안 비림 박물관, 베이징(北京) 국가박물관, 정저우(鄭州) 허난(河南)성 박물관, 뤄양 박물관 등에 전시 중이다. 한나라를 이은 조조의 위나라는 희평석경을 대신해 같은 내용을 대전체, 소전체, 예서체의 3가지 필체로 기록한 삼체석경(三體石經)을 만들어 태학에 세워 표준 교과서로 썼다.

   
▲ 플라톤의 아카데미 모자이크. BC 1세기. ⓒ 나폴리 국립박물관

플라톤 아카데미의 파피루스 교재

무대를 폼페이로 옮겨보자. 폼페이 포럼에서 북쪽 베수비오 화산 방면 성문인 베수비오문 앞 시미니우스 스테파누스 빌라에서 BC 1세기의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출토됐다. 지금은 나폴리 국립박물관으로 옮겨 전시 중인 모자이크 이름은 ‘플라톤의 아카데미(Plato’s academy)’, 혹은 ‘철학자들(Philosophers)’로도 불린다. 플라톤이 BC 380년경 아테네에 세운 그리스문명권 최초의 학교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모습을 담았다.

등장인물 7명 가운데 앞줄 5명은 그리스 특유의 오른쪽 어깨나 상반신을 드러내는 히마티온을 입었다. 가운데 앉아 지시봉을 들고 천구도를 가리키는 인물이 스승 플라톤으로 추정된다. 학생들을 보자. 상반신을 드러낸 4명 가운데 3명이 손에 파피루스 스크롤을 들었다. 지식을 담은 책이다. 지중해 연안에서는 나일강 삼각주에서 자라는 파피루스로 책을 만들었다. 이집트에서 지중해 각지로 파피루스를 수출한 주역이 오늘날 레바논의 페니키아다. 페니키아 비블로스는 대표적인 파피루스 무역항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비블로스에서 오는 파피루스로 책을 만들어 ‘비블리아’라고 불렀다. 기독교 시대 책을 대표하는 성경 바이블은 비블리아가 어원이다. 파피루스(Papyrus)-비블로스(Byblos)-비블리아(Biblia)-바이블(Bible)의 변천 과정이 흥미롭다.

이집트 BC 8세기 비석경전 ‘샤바카 스톤’

런던 대영박물관 중앙 홀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이집트전시실이 나온다. 로제타스톤이나 람세스2세 두상 같은 이름난 유물 사이로 검은색 비석 하나가 눈길을 끈다. 발굴 당시 이정표로 쓰이던 샤바카 스톤(Shabaka Stone)이다. 태양 햇살이 퍼지는 양옆으로 상형문자가 빼곡한 비석은 경전, 중국식 석경이다. 사연은 이렇다. BC 750년경 이집트 남부 오늘날 수단에 쿠시라는 흑인 왕조가 있었다. BC 747년 쿠시 왕조의 지방 호족 가운데 제벨 바르카에 거점을 두던 카흐타의 아들 피안키(피예, 재위 BC 747∼BC 716년)가 북으로 올라와 이집트를 정복하고 25왕조(BC 747∼BC 664년)를 연다.

피안키의 동생 샤바카(재위 BC 716∼BC 702년)는 이집트 문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특히 이집트 신앙에 깊이 빠진다. 중국 주변 민족들이 중국을 정복하고는 중국 학문과 문화에 동화되는 것과 같다. 흑인 파라오 샤바카는 이집트 신전에 남은 자료들을 샅샅이 조사하던 중 파피루스 경전이 벌레에 훼손되는 것을 보고 돌에 새기는 석경을 고안해 냈다. 대영박물관에 남은 1.37m 크기 샤바카 스톤은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멤피스의 주신 프타의 천지창조 과정을 다룬다. 중국에서 유학 경전을 비석에 새기던 풍습과 같다.

메소포타미아 BC18세기 점토판 사전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 이스탄불은 16∼17세기 유럽과 지중해, 서아시아를 호령하던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수도다. 제국의 심장부 토카프 궁전에 붙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각지에서 수집한 다양한 점토판을 전시 중이다. 그중 7각형 점토판은 3800년 전 직업의 종류와 이름을 정리한 사전 형태 학교 교재다. 함무라비왕으로 유명한 바빌로니아왕국 BC 18세기 점토판으로 교과서의 기원을 가늠해볼 수 있게 해준다. 이후 신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제국 시대에도 여러 종류의 점토판 사전과 책이 제작됐다. 파리 루브르에도 함무라비왕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삼수일루나왕 시기 쓰기교육용 문학교재와 사전들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비록 책의 소재는 점토판, 파피루스, 목(죽)간, 비석에서 종이를 거쳐 전자책(eBook)으로 진화하지만, 지식과 정보를 책에 담아 교육하는 문화는 동서고금에 변함이 없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

편집 : 임지윤 기자 

김문환 kimunan27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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