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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황폐해져도 오아시스는 남았네”

기사승인 2019.03.08  21: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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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오너라 벗고놀자] 우세린 부부 여행기 ③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는 활성화한 마그마의 작용으로 온천이 발달해 있다. 온천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신성시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온천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인 정착민이 원주민의 온천을 강제로 빼앗다시피 해 주변에 온천 리조트를 지었다. 전현직 기자 부부가 이 지역 무료 자연 온천을 다니며 썼다.

   
▲ 유순상 작가가 그린 솔턴호. 폐사한 따개비가 사구처럼 물결을 이루고 있다. © 유순상

냄새가 장면을 압도한다. 차창을 내리자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이 뭐꼬? 항구 갯내음도 아닌 것이 어물전 좌판 냄새 같기도 하고. 차에서 내려 물가로 걸었다. 멀리 실 물결 치는 호수 앞으로 표백된 따개비가 바닥 그득하다. 운동화 푹푹 잠기며 몇 걸음 떼자 생선 뼈 무덤이다. 진짜 이 뭔데? 물가에는 배를 묶어 두던 계선주만 휑뎅그렁하다. 콘크리트 구조물은 다 빠개졌다. 스릴러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은 시키지 않는데도 위험한 곳으로 가더라니. 내가 딱 그 짝이다. 더 걸어 물가. 등 뒤로 크르렁거리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가슴을 조여온다. 물 속이 보인다. 싱크대 배수구에 달라붙은 찌꺼기 같은 검고 물컹한 것들이 출렁인다. 장마가 끝난 뒤 고향집 옥상 구석에 방치돼 있던 ‘빨간 다라이’ 속 같다.

아이젠하워도 즐겨 찾던 솔턴호의 비극

세로 56km, 깊이 13m, 면적 910km².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호수인 솔턴호(Salton Sea)다. 세로로 길게 뻗어 있는데 면적만 서울 석촌호수 3만배, 제주도 절반 크기다. 우리 부부는 캘리포니아 남부 임페리얼 카운티 솔턴호 가운데 서쪽 마을인 솔턴 시티 비치에 서 있다.

원래 이곳은 작은 오아시스로 소금기가 있어 아메리카 원주민이 염전을 하던 곳이었다. 그러다 1905년 와이오밍 주에서 내려오는 콜로라도 강에 폭우가 내리면서 멕시코로 남하하던 물줄기가 퇴적물로 막혀 솔턴호로 거꾸로 북상했다. 비는 2년 동안 퍼부어 내륙 바다를 만들었다.

기적이 내리사, 서부 골드러시 행렬이 길을 잃고 굶어 죽은 지옥 같던 사막이 풍요의 땅 샹그릴라로 변신했다. 수량이 풍부해지자 나무 수십 종이 자라고 틸라피아(역돔류)와 코르비아(민어류) 등 민물고기가 넘쳐났다. 포식자인 오리와 물병아리, 대머리 독수리 등 새들도 찾아왔다. 종류만 450종이 넘었다. 미 전역에 살던 백색 펠리컨 80%가 솔턴호로 겨울을 나러 왔다.

생태계 ‘끝판대장’인 인간이 숟가락을 얹었다. 개발업자들은 호수에 야자수를 심고 선착장을 건설해 호화 요트를 띄웠다. 각종 음식점과 호텔, 골프장과 나이트클럽이 1950년대까지 잇따라 들어섰다. 남성들은 낚시를 하고 요트에서 술을 마시고 여성들은 비키니를 입고 활보했다. 아이젠하우어 전 대통령도 골프장에 찾아왔고 인기가수 비치 보이즈는 요트를 타러 왔다. 캘리포니아 최대 관광지인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 미국 캘리포니아 임페리얼 카운티 솔턴호. 미 서부 최악의 환경 오염으로 따개비가 모두 폐사해 수변을 뒤덮고 있다. 왼쪽 아래는 물고기 사체다. © 우세린

‘인간의 삽질’로 사막-호수 생태계 붕괴

70년대말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물고기 떼죽음 현상이 자주 목격된 것이다. 하지만 생각마저 썩어버린 지방정부는 모르는 척 덮고 지나갔다. 80년대 들어 생태계 붕괴가 가속화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물고기가 집단폐사하고, 그것을 먹은 새들도 식중독 등 세균 감염으로 죽어 나갔다. 한 지역 신문은 1999년 여름 하루 만에 800만 마리 물고기가 죽었다고 보도했다.

솔턴호는 가스 불에 올려놓은 냄비 꼴이었다. 호수에 3곳으로 물이 들어왔지만 배출구가 없어 염도가 계속 높아졌다. 비마저 많이 내리지 않고 태양만 작열했다. 멕시코 외국인 투자지역에서 날아온 먼지와 인근 농장에서 배출한 농약, 상가 폐수까지 겹치면서 악화 일로를 걸었다. 현재 솔턴호 염도는 태평양 5배다. 주변 농장에서 태운 농작물 분진마저 이 일대를 덮어 아이 5명 중 1명이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 2012년에는 시속 60여km 강풍이 불어 악취가 LA까지 퍼지기도 했다.

   
▲ 1900년대 초 미 서부 최대 관광지였던 솔턴호는 1980년대 들어 죽음의 호수로 전락했다. 폐사한 물고기를 먹은 새들도 각종 세균에 감염돼 죽었다. © 우세린

하지만 여전히 호수 주변 마을에는 주민 수천 명이 흩어져 살고 있다. 대부분 은퇴한 노인이나 가난한 이민자로 솔턴호 성수기 때 집을 샀거나 이미 환경 파괴로 헐값에 나온 집을 구매해 온 사람들이다. 주민보다 빈집이 더 많아 을씨년스럽다. 노후한 레저차량도 숱하다.

호수 동쪽 봄베이 비치에서 20대 청년 말레이를 만났다. 집집마다 철조망이 쳐져 있고 사나운 개가 짖어대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안도가 됐다. 그는 2시간 거리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잠시 부모 일을 돕기 위해 왔다고 한다. 마른 몸에 얼굴이 붉었고 오른쪽 눈이 없었다. 차마 나는 “이런 악취에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냐”고 묻지 못했다.

“나는 차로 한 시간 떨어진 식당이나 바에서 일하면서 학비를 벌고 있어. 부모님이 수십 년 전에 은퇴하고 이곳에 왔는데 집값이 너무 떨어져 다른 곳으로 이사도 못 가. 여기 있는 사람들도 우리처럼 다 가난해 이사를 못 하고 있지.”

야자수 아래 숨겨진 오아시스 온천

   
▲ 관광지 일대 각종 음식점과 레저 시설물 등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어수선한 낙서는 방문객들을 더욱 겁나게 만든다. © 우세린

버려진 호텔에 부서진 주유소, 텅 빈 요트 대여소에서 동네 불량배가 나타나 해코지를 할 것만 같다.  작은 소음에도 몸에 털이 곤두섰다. 빨리 솔턴호를 벗어나자. 차에 타자마자 오디오 볼륨을 높였다. 이번 목적지는 남쪽으로 96km 떨어진 브롤리(Brawly)의 ‘파이브 팜스 온천(5 Palms Hot Springs)’이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78번 벤헐스 하이웨이(Ben Hulse)를 달리다 순간 우회전 길을 놓쳤다. 유턴을 해 찾아간 길은 사막 위 모랫길. 척박한 땅에 키 작은 덤불만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길을 달리다 차량 하부가 긁히는 소리가 나 차를 세워 확인했다. 별일 없지 싶어 다시 차에 타 가속 페달을 밟으니 바퀴가 헛돈다. 우우윙. 식은 땀이 등짝에서 쭉 올라온다. 지난 여름 한 연인이 사막 도보여행을 하다 조난당해 총으로 동반자살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이제 멈추면 사요나라, 짜이찌엔이다. 운전대를 왼쪽 오른쪽 돌리며 페달을 ‘조심히 마구’ 밟았다. 차량이 힘을 받는 것 같더니 ‘으랏차’ 모래 구덩이를 간신히 넘었다. 그때부터는 논스톱 주행. 차가 황소처럼 덜커덩거려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2.5km를 달리자 내비게이션이 목적지 도착을 알렸다.

사막 한복판. 아파트 4층 높이 야자수 십여 그루가 둥그렇게 모여 있다. 온천은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걸어가자 나무 둥치 사이로 물이 슬쩍 보인다. 더 가까이 가자 야자수가 품고 있는 오아시스가 보이고 그 아래로 물이 분수대처럼 뿜어져 나온다. 파이브 팜스 온천이다. 다른 이름은 ‘팜스 오아시스(Palms Oasis)’다.

   
▲ 임페리얼 카운티 브롤리에 있는 파이브 팜스 온천. 사막 한 가운데 야자수로 뒤덮여 있다. © 우세린
   
▲ 미국 캘리포니아 임페리얼카운티 브롤리에 있는 파이브 팜스 온천이다. 야자수 나무 아래 온천이 숨어있다. © 유순상

솔턴호가 생기던 110여년 전 이곳도 콜로라도 강이 홍수로 범람하면서 주변에 거대한 농장이 들어섰다. 채소와 과일 농장이 생기고 새와 들짐승도 찾아왔다. 하지만 콜로라도 강 상류에 댐이 건설되고 주변 농장으로 인공수로가 만들어지면서 수량이 줄어 다시 사막이 됐다. 몇 년 전에는 불까지 나 야자수가 많이 죽었다. 살아 남는 야자수 둘레에는 그을음이 남아있다.

온천탕은 한 개다. 크기는 테니스 코트 3분의 2로 주변에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다. 야자수가 그늘을 만들어 여름 한낮에도 목욕을 즐기기 좋다. 온도는 목욕탕 온탕 정도다. 물속에서 지치지 않고 오래 놀기 제격이다. 수위도 최대 1m로 아이들도 걱정 없이 놀 수 있다. 손톱만한 사막 개구리가 자주 찾아온다.

열매 던져 야자수 번식시키는 ‘온천 지킴이’

   
▲ 파이브 팜스 온천 지킴이 엘런이다. 이곳 토박이로 온천을 병원 삼아 다닌다. © 우세린

온천에는 대머리에 배가 불룩한 히스패닉계 할아버지 엘런(76)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국경지대 히스패닉계 이민자 출신으로 솔턴호의 명운과 함께했다. 청년 시절 솔턴호 주변 관광산업이 급성장하자 그는 트럭을 몰고 유통업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이제는 부인과 사별하고 인근 마을에 산다.

“나는 여기 어렸을 때부터 자주 왔어. 하지만 이곳은 이 지역 사람들보다 북부 오리건 주나 캐나다 사람들에게 더 유명해. 겨울을 나러 많이 오지. 주말이 되면 맥주 판이 벌어지고 빈 위스키 병이 굴러다녀. 시끄럽기는 한데 재밌지 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엘런은 “나 옷 벗어도 되지”라고 묻더니 헐렁한 반바지를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목욕을 했다. 그러고는 온천 중앙에 있는 온천수 유입관으로 우리 부부를 불렀다. 엘런은 손바닥으로 관 입구를 막았다. 그런데 갑자기 온천 바닥이 모래수렁 사니(沙泥)처럼 빨려 들어갔다. 압력 차 때문에 바닥이 꺼지는 거였다.

   
▲ 온천 중앙에 연결된 호수로 온천수가 솟아 오른다. 캠핑용 의자는 온천 지킴이 엘런 거다. © 우세린

온몸이 모래 속에 빠지나 아찔하다가도 물보다 더 뜨거운 모래가 온몸을 강하게 붙잡으니 아늑하면서 편안하다. 우리는 서로 신기하다며 꺅꺅거리고 몸을 틀며 오도방정을 떨었다. 순식간에 허벅지가 모래 속으로 잠겼다. 엘런은 “나는 양다리를 이렇게 모래에 꽂아두고 윗몸 일으키기 하지”라며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윗몸 일으키기 시범을 보였다. 나도 모래에 다리를 꽂아두고 물에 누웠다. 어깨를 겯고 있는 야자수 이파리 사이로 푸른 하늘이 선명하다.

엘런은 아들이 사는 다른 도시는 집값이 비싸 이사를 할 수도 없어 혼자 산다고 했다. 의료비 부담도 만만치 않아 온천을 병원 삼아 다닌다. 그는 매일 이곳에 와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치우고 누군가 인근 농장으로 온천수 유입관을 훔쳐가면 다시 끌고 와 설치한다. 그러고는 온천수에 한가롭게 누워 물에 떨어진 야자수 씨앗을 흙에다 던져 심는다. 그가 뿌린 씨앗은 어느새 손바닥 만한 야자수로 자라 있다.

   
▲ 캐나다에서 온 4인 가족이다. 여자 아이들이 물에 들어오는 것을 겁내다가 호수 바닥으로 잠기는 모래 수렁을 보고 신기해하며 들어왔다. © 우세린

** 전 <경기방송> 기자이자 LA 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폭력 생존자를 돕고 있는 우세린 씨 부부가 캘리포니아 중남부 자연 노천 온천을 돌아다니며 글을 썼다. 충주에 화실을 운영하고 있는 유순상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편집 : 장은미 기자

우세린 부부 homerunsery@gmail.com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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