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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상회에 왜 발길이 끊이질 않지?

기사승인 2019.03.06  1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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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공간] 주천 ‘만물상회’ 김정안 씨

고개 위 나무 천로(天老)를 뵈었고 / 시냇물은 돌에 부딪혀 시끄럽구나
산이 깊어 범과 표범이 많으니 / 저물지 않아도 사립문 닫아야 하네

단종이 유배생활을 달래기 위해 노산대에 올라 지었다는 시다. 사방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섬과 다름없는 그곳에서 느꼈을 고립감은 창덕궁 돈화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됐으리라. 1주일을 걸려 도착했다던 영월. 행정구역으로는 영월군에 속하고 거리로는 제천에 가까운 영월군 주천면을 찾았다. 술이 샘솟는다 하여 붙여진 주천(酒泉)이라는 지명과 달리 이곳에서는 술 냄새 대신 고기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지금은 한우마을 ‘다하누촌’으로 알려진 주천의 한 모퉁이에 농산물 직판장 ‘만물상회’가 자리 잡고 있다.

   
▲ ‘만물상회’가 있는 영월군 주천면 소재지. 지금은 ‘다하누촌’으로 더 알려졌다. ⓒ 영월군청

지역에서 유일한 농산물 상시 직거래장

가게 내부에 들어서니 각종 잡곡류와 산나물, 홍삼원액 등이 즐비하다. 40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내부에는 상회 주인 김정안(65) 씨의 흔적도 여기저기 배어있다. 젊은 시절 남편을 따라 대구에서 영월로 온 김 씨는 남편과 함께 지역에 나는 온갖 농산물을 판매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먹고 살기 위해 시작했다”면서 “산에서 약초를 캐는 일부터 시작해 점차 잡곡류를 곁들어 판매했다”고 한다.

지금은 잡곡류를 주로 판매해 가게 내부에는 각종 곡류 냄새로 가득하다. 잡곡류(조, 수수, 메밀) 이외에도 미곡류(쌀, 찹쌀), 맥류(찰보리), 두류(콩, 서리태) 등 곡류란 곡류는 이곳에 다 모여있는 듯하다. 가게 한 켠에는 직접 농사지어 담근 인삼주, 홍삼원액 등이 진열돼 있다. 인삼주 색깔로 나타나는 40년의 세월은 김정안 씨 얼굴에도 묻어나는 듯하다. 작게 출발했지만, 이제는 주천 5일장이 열리지 않아도 각종 곡류나 산나물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되었다.

“여기 있는 농산물들은 지역 주민들이 생산한 것들입니다. 주민들이 생산한 것을 저희 상회에서 구입하고 주천 사람들을 비롯해 주변 지역 분들에게 판매합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구입할 때는 직접 가지러 가기도 합니다. 어떤 곳은 산중에 강을 건너가야 하는 곳도 있었는데 차가 다니지 않아 남편이 직접 지고 옮겨야 했습니다.”

   
▲ 없는 게 없다는 ‘만물상회’는 40년 세월이 묻어난다. 김정안 씨는 상회의 산증인이다. ⓒ 황진우

수입산 등쌀에도 국내산을 구해 판다

통계청 ‘2018 양곡 소비량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양곡 소비량은 해마다 감소해 61.0kg가 됐다. 전년보다 1.3% 줄어든 수치다. 그러나 즉석밥이나 누룽지 같은 가공식품의 소비는 증가하고 있다. 1인가구 증가로 식생활이 간편해지고 쌀 대신 빵이나 잡곡류를 활용한 식품 소비가 늘어난 결과다.

   
▲ ‘만물상회’ 내부. 다양한 종류의 곡물을 소량으로 판매한다. ⓒ 황진우

이러한 소비 형태의 변화는 주천이라고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간편하고 빠른 식품을 섭취할수록 건강식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영월군은 2018년 기준으로 65세 이상이 24.6%일 정도로 고령 인구의 비중이 높은 편에 속한다. 김 씨는 “아이들이 크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장사해온 것도 있고 남편이 고향에 남아 살길 원해서 남게 됐다”고 했다.

“우리 상회에 납품하는 분들이 대부분 노인들입니다. 여기 아니면 팔 데도 없다고 오래도록 가게를 하라고 하십니다. 주천에서 우리 상회의 역할이 있다 보니 떠나지 않고 계속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홈쇼핑 등으로 여러 변화가 있지만 가게 운영이 힘들지는 않아요. 하지만 같이 일하는 아들이 물려받을 때는 달라지겠죠. 그게 걱정입니다.”

김 씨는 국내산 농산물이 수입산에 견주어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고, 농민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요즘 젊은 주부들이 오면 수입산을 많이 찾는다”면서 “그러면 없다거나 다른 방앗간을 알아보라고 한다”고 말했다. 손님을 돌려보내는 것이 편치 않지만 장사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국내산 농산물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한 유통경로와 직거래로 입소문

   
▲ 주천면 소재지에 있는 ‘만물상회’의 외부. 지역민의 수요에 사료도 판매한다. ⓒ 황진우

‘만물상회’는 그 흔한 온라인 광고도 없다. 굳이 온라인에 광고하지 않아도 외부에서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주천면과 가까운 제천시만 해도 대형마트가 몇 군데나 있고, 홈쇼핑이 발달해 집에서 손쉽게 식자재를 구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주천면에 있는 ‘만물상회’에 외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마케팅으로 이름을 알린 스티브 잡스는 마케팅의 본질이 ‘가치’에 있다고 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나 방사능 수산물 등 유통 경로가 불확실하고 위험성이 있는 농수산물 대신 사람들은 식품의 ‘안전성’에 주목했다. 그런 면에서 ‘만물상회’는 경로가 단순한 상품을 직접 보고 거래하는 장점이 있다. 손님이 원하면 ‘원산지증명서’도 발급해준다.

“이 들깨는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2리에 사시는 ○○○씨가 생산한 국산 들깨임을 증명합니다.”

마케팅의 ‘형태’가 아니라 ‘가치’를 추구한 결과, 입소문만으로 광고가 된 것이다. 입소문만으로 운영이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를 김 씨는 일축했다.

“다른 지역 시내에서 팥죽집을 운영하는 분들이 팥을 사가거나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이 고추 등을 대량으로 사가기도 해요. 그런 분들을 위해 고르고 골라 깨끗이 씻어 따로 보관해 두거든요.”

꿀이 많은 꽃에 벌들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온라인을 통한 직거래가 늘어나는 추세에도 운영이 힘들지 않은 이유다. 주천면은 한우마을 ‘다하누촌’으로 알려졌다. 면소재지를 둘러보면 정육점과 식당들로 가득하다. 지역특산물 매장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잡곡, 산나물, 약초 등 상당 부분이 ‘만물상회’에서 판매하는 것과 겹친다. 김 씨는 “그런 데 신경 쓰지 않고 우리 가게에 오는 분에게 좋은 농산물을 공급한다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 한결같은 모습으로 40년을 보낸 김정안 씨. 오늘도 손님에게 ‘초심’을 담는다. ⓒ 황진우

40년의 초심을 아들에게 물려줄 때까지

김 씨에게는 목표가 하나 있다. 10년 전부터 같이 일하는 아들이 잘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결같은 김정안 씨의 모습은 아들 한상리(38) 씨에게도 찾아볼 수 있다. 김 씨는 “운영하는 데 말로 하기 힘든 부분도 많지만 욕심내지 않고 힘닿는 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일한다”면서 “이 상태로 아들에게 넘겨주고 싶다”고 말했다.


편집 : 윤종훈 기자

황진우 최준혁 기자 gugu9213@naver.com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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