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정의를 부탁해] ① ‘괴물’ 낳는 한국의 명문대

입시 점수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한국 교육은 불의(不義)하다. 진리를 탐구하고 사회를 개선할 인재를 키워내는 본연의 역할 대신 자원 쟁탈을 위한 경쟁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 경쟁마저 공정하지 못해, 교육은 ‘이미 가진 자’의 것을 더 공고하게 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교육 정의(正義) 회복’이다. 배움의 기회와 과정, 결과를 공평히 해서 학생 개개인이 모두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것이 교육 정의다. 곽영신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이 ‘한국 교육에서 어떻게 정의를 살려낼 수 있을까’ 모색하는 칼럼을 연재한다. 곽 연구원은 <단비뉴스>의 ‘지방대 위기와 혁신’ 탐사보도를 이끌고 있다. 한국 교회의 부패상을 고발한 책 <거룩한 코미디>의 저자이기도 하다. (편집자)

제이티비씨(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며 아내가 말했다. “에휴, 서울대 의대가 뭐라고 저 난릴까. 아이 의대 보내려고 돈 수십억을 쓰고 엄마가 자살까지 하고... 정말 한심하다 한심해.” 그러던 아내가 5분 후 다시 말했다. “근데 스카이캐슬 저 집 진짜 좋다. 인테리어도 고급지고, 염정아  귀걸이도 너무 예쁘다. 나도 저런 데서 살고 싶다.” 그 장면에선 주인공 한서진(염정아 분) 집에 걸린 김종숙 작가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산수화’가 고급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경멸하면서도 동경하는 그들의 삶

▲ 딸을 서울 의대에 보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한서진(오른쪽, 염정아 분)과 가치관이 다른 이수임(이태란 분)이 대립하는 장면. 두 사람 사이로 고가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산수화'가 보인다. ⓒ JTBC

깜짝 놀랐다. 나 역시 아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욕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들처럼 살고픈 이중적인 마음. 대중의 이상과 욕망 사이에 자리한 이 틈을 교묘히 파고든 게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일지도 모른다. 학벌문제와 입시교육을 꼬집는 데 기획의도가 있었을 것이 분명한 이 드라마를 보고 오히려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향한 열망이 더 강렬해진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실제로 요즘 학원가에는 ‘스카이캐슬반’이 생기고 드라마처럼 입시 컨설팅을 해준다는 광고가 유행이라고 한다.

드라마는 고급 주택단지 스카이캐슬에 사는 0.1% 상류층 인사들이 자신의 부와 명예, 권력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일류대 입시에 모든 것을 바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곳은 명문 사립대 병원 의사와 로스쿨 교수만 입주할 수 있는 폐쇄적 주거지로, 주민들의 최대 목표는 자식이 ‘적어도 나만큼’ 살거나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 욕망 때문에 ‘사이코패스’ 입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하고, 복잡한 가정사를 수습하지 못해 파국 위기에 이르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드라마는 ‘저런 일이 진짜 있을까’하는 궁금증과 갑론을박에 힘입어 종편으로서는 드물게 시청률 20%를 가뿐히 넘겼다.

한국 사회에서 스카이는 우뚝 솟은 ‘성채(castle)’다. 스카이라는 최고의 학력·학벌 자원을 얻으면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누릴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저성장·고실업 시대를 맞아 명문대 출신의 생존경쟁도 녹록치 않은 게 현실이지만, 이들이 적어도 어디 가서 노골적 차별과 배제를 겪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견고하다. 바꿔 말하면 소수 명문대 출신을 제외한 사람들은 더 크게 벌어진 사회 격차 속에서 패배자·낙오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스카이는 여전히 최고의 ‘간판’이자 ‘보험‘이라 할 수 있다.

▲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학교마크. ⓒ 각 대학 홈페이지

양승태 등 엘리트들의 소름끼치는 ‘파파괴’

그런데 이렇게 선망 받는 스카이 출신 엘리트들은 개인의 욕망과 목표를 이루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의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는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스카이가 내세우는 교육이념은 ‘진리는 나의 빛(서울대)’ ‘진리와 자유(연세대)’ ‘자유, 정의, 진리(고려대)’ 인데 과연 이들은 진리를 추구하며 정의롭게 살고 있나?

서울대 법대를 나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이 보여주듯, 현실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법조계, 관계, 재계, 학계, 언론계 등 주요 분야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부패와 부조리 사건을 보면 우리나라 엘리트는 사회적 책임감과 윤리의식에서 ‘바닥’이 아니냐는 절망감마저 든다. ‘이명박근혜’ 시절의 실정과 국정농단은 말할 것도 없고 촛불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스카이출신 엘리트의 ‘파파괴(파도 파도 괴담)’는 끊이지 않는다.

▲ 부당한 재판개입과 판사 사찰 등 ‘사법농단’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 KBS 뉴스

한국은 스카이 출신 엘리트들이 각 분야의 주요 자리를 꿰차고 있는 ‘스카이 공화국’이지만, 그들의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낙제점이다. 법조에서 스카이 출신은 전체 판사의 80%(2015년 대법원 자료), 검사의 70%(2014년 법무부 자료)를 차지한다. 행정부에선 차관급 이상 고위공무원 중 스카이 출신이 67%(2017년), 입법부에서는 20대 국회의원 중 스카이 출신이 47%에 달한다. 재계에서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중 스카이 출신이 44.8%(2018년 CEO 스코어 조사), 언론계는 25개 언론사 주요간부 중 스카이 출신이 75%(2014년 <미디어오늘> 조사)에 이른다.

그런데 한국행정연구원의 2017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나타난 국민들의 기관별 신뢰도를 보면 국회가 15%로 조사 기관 중 꼴찌였고, 대기업 31%, 검찰 31%, 법원 34% 등 주요기관이 모두 바닥권이다. 중앙정부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41%로 상승했지만, 지난 2016년 조사에서는 25%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년 실시하는 사회신뢰도 조사에서 최상위권인 스위스, 덴마크 국민들의 정부, 사법부 등 공공기관 신뢰도가 70~80%인 것과 대조된다.

▲ 한국행정연구원의 2017년 기관별 신뢰도 조사 결과. ⓒ 한국행정연구원

‘신성가족’의 끼리끼리 부패 카르텔

언론 신뢰도 역시 참담한 수준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함께 발간한 ‘디지털뉴스 리포트 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 뉴스 신뢰도는 조사 대상 37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거의 항상 대부분의 뉴스를 신뢰한다”는 항목에 핀란드 국민은 62%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우리나라 국민은 25%에 그쳤다.

미국 콜게이트 대학 마이클 존스턴 교수는 한국을 ‘대표적인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 국가’라고 표현했다. 사회 엘리트층이 자기네끼리 특권의식을 가진 ‘신성가족’을 이루고 인맥과 연줄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는 것이다. 한국 제일의 엘리트 양성소인 스카이는 한국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한국 사회에는 스카이를 부러워하기보다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여기서 부끄러움이란 한국의 이기적 엘리트와 그런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 시스템, 그리고 입시경쟁을 부추기는 지배적 가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말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스카이가 정점이 되는 피라미드 구조를 비판하거나 거부하는 순간, ‘성공을 향한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이류•삼류 인생’이라거나 ‘열등감과 질투심에 사로잡힌 방해꾼’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대학사에는 이미 그런 용기를 보인 사람들이 있다. 멀게는 4.19 혁명 때 독재자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로 뛰쳐나온 엘리트 대학생들이 있다. 군부 독재 치하에서 졸개 노릇을 할 수 없다며 고시를 포기하고 ‘대학생 친구’가 필요한 공장과 농촌으로 달려갔던 인재들도 있다. 가까이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라는 명문을 남기고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이 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의 ‘부끄러움’ 릴레이도 기억할 만하다. 서울대 학생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부끄러운 동문상 설문조사’를 벌이고 ‘최악의 동문상’ 1위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꼽았다. 또 대한민국 헌정사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친 동문을 선정하는 ‘멍에의 전당’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올렸다. 연세대도 최악의 동문상으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대표 친박),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민중은 개돼지" 발언) 등 5명을 뽑았다. 고려대 학생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뇌물과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된 후 교내 ‘이명박 라운지’의 이름을 바꿔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했다.

▲ 서울대생이 뽑은 '최악의 동문' 뉴스보도. ⓒ MBN

지식공장이 된 대학과 입시 지옥의 좀비들

누구보다 공부도 잘하고 열심히 살았을 스카이 출신 엘리트들이 왜 ‘적폐’가 되고 부끄러움의 대상이 됐을까. 문제가 된 인물들은 원래 인성이 나쁘고 권력욕이 지나쳤을까? 그보다는 한국 사회가 엘리트를 교육하고 선별하고 양성하는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스카이를 향한 경쟁적 입시교육, ‘줄 세우기’를 통한 획일적 인재 선발, 교육을 통한 계급 대물림 등 왜곡된 교육 시스템에서는 개인이 각별히 정신을 차리고 저항하지 않는 한, 자기도 모르게 이기적 인간으로 길러질 가능성이 크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는 주변의 광기어린 ‘입시 부조리극’을 파헤치는 동화작가 이수임(이태란 분)이 벨기에 정신분석학자 파울 페르하에허의 책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를 탐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성과주의가 개인의 정체성을 완전히 뒤집어 놓아 극단적 이기주의자, 즉 괴물을 만든다고 분석한다. 페르하에허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윤리와 사회가 ‘시장’에 복종한다”며 공적 가치가 훼손된 대표 사례 중 하나로 ‘지식 공장이 된 대학’을 꼽았다.

▲ 신자유주의 체제의 지나친 경쟁과 과도한 성과주의가 문제라고 설파한 파울 페르하에허의 저서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 반비

페르하에허가 한국 교육을 들여다봤다면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여기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지옥 같은 입시전쟁, 점수 몇 점에 목숨을 걸게 만드는 교육제도는 아이들을 영락없는 괴물, 혹은 움직이는 시체 ‘좀비’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제대로 배운다면 투철한 공적 사명과 책임감을 지닌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인재들, 남다른 개성과 재능으로 성취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학생들이 한국 교육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생기를 잃고 만다. 부모의 욕망, 사회의 획일화한 주문에 복종하는 존재로 굴절되고 만다. 이런 교육은 불의하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스카이의 화려한 겉모습을 부러워하는 대신 그 속의 거대한 불의를 부끄러워하는 용기를 내겠다.


편집 :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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