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박창식 <한겨레> 사업국장
주제 ② 말하기와 소통, 리더십

평기자 시절 청와대에 출입하고 이후 정치부장, 정치담당 논설위원을 거치며 정치부 기자의 길을 걸어온 박창식 한겨레신문사 사업국장은 ‘역대 대통령의 말하기와 소통, 리더십’을 주제로 2부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이번 강의 열쇠말로 ‘더불어 말하기’를 꼽았다. 기자 시절 생생하게 관찰하고 연구한 대통령들의 말하기와 소통 방식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의 말하기가 무엇인지 찾아보려 한다는 의미에서다.

▲ 정치부 기자 출신인 박창식 <한겨레> 사업국장이 역대 대통령들의 말하기와 소통방식을 소개했다. © 임지윤

사뭇 달랐던 그리스 도시국가의 말하기 문화

박 국장은 역대 대통령의 말하기 방식을 쉽게 비교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말하기 문화를 먼저 살폈다.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아테네의 말하기 문화는 ‘많이 말하기’가 특징이었다. 메시지의 양과 정보를 풍부하게 전달하며, 고대 그리스의 어떤 도시국가들보다도 말하기 문화가 융성했다. 또 아고라의 민회에 나가 연설을 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 곧 자기 행사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아테네의 시민들은 말하기 공부에 많은 노력과 투자를 했다.

아테네 귀족들은 자기 집에 석학을 초청해 먹고 마시며 나눈 대화로 말하기 능력을 향상시켰다. ‘지식의 향연’이라는 뜻을 가진 ‘심포지움(symposium)’의 기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반면 서민들은 비교적 저렴하게 말하기 능력을 배울 수 있는 ‘소피스트’들을 찾아갔다. 지금 시대로 따지면 학원 강사들에게 웅변을 배운 셈이다.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그림 속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 Wikipedia

반면 스파르타의 말하기 문화는 일명 ‘군대식 구령’이었다. 군사국가였던 스파르타는 말하기 역시 “모여!”, “앞으로 가!” 등 짧고 간명한 방식을 취했다. 이에 관해 박 국장은 “스파르타의 말하기 문화가 군대식이긴 했지만, 스파르타식의 민주주의가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권위주의 체제는 밀레투스라는 도시국가”라고 덧붙였다. 밀레투스는 ‘참주’라고 하는 독재자가 지배하는 도시국가였는데, 이곳에선 말이 아닌 힘과 폭력에 의해 통치됐다.

전직 대통령들의 각양각색 말하기 방식

박정희와 전두환, 두 대통령 시대의 말하기 방식은 스파르타와 밀레투스에 가까웠다. 역대 대통령의 연설문을 분석해 본 결과 ‘좌시하지 않겠다’, ‘엄단 하겠다’, ‘용납하지 않겠다’ 등 ‘권력 행사’를 시사하는 언어의 비율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49.6%, 전두환 전 대통령은 34.0%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3.9%, 노무현 전 대통령의 0.6%를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박 국장은 “쿠데타로 집권했던 군사정권으로 ‘언론 통폐합 조치’ 등 언론 통제를 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국민들을 상대로도 말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서야 설득, 설명, 제안의 언어가 늘어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은 ‘권력행사’를 시사하는 언어를 자주 사용하며 국가권력의 지엄함을 보이려 했다. © 국가기록원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말하기는 사과하기 시작한 첫 번째 대통령이라는 특징이 있다. 노 대통령이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직선제를 통해 당선됐고, 과거 정권보다 문민화, 탈권위주의로 접어든 과도기였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대통령은 국정에 중대한 문제가 생겨도 사과하지 않았고, 사과할 상황이 생겨도 참모들에게 대리 사과를 시켰다. 박 국장은 “사과하지 않는 대통령들은 모두 자신을 ‘무오류의 존재’로 가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군주제의 왕이나 교황이 사과하지 않는 것처럼, 대통령이 사과를 하게 되면 권위가 상실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는 천재적이었을지 모르나 말주변은 없었던 사람이다. 1987년 대선 당시, 김 전 대통령이 강원도를 방문해 ‘아름다운 자연과 풍부한 지하자원’을 ‘아름다운 지하자원과 풍부한 자연’이라고 말한 일화는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말실수다. 김 전 대통령의 계속되는 말실수에, 심지어 ‘YS는 못말려’란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박 국장은 “김영삼 대통령의 자질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당시 언론의 눈 감아주기”라고 지적했다. 권력과 시민 사이의 매개 역할을 하는 언론이 대통령의 어떤 말실수도 정정해서 보도해주는 ‘관료적 협력’을 했고, 이러한 행태가 결국 IMF 외환위기를 초래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말의 전성시대가 열리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는 ‘본격적인 말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국장은 “고대 아테네와 비교해도 될 정도로 풍부한 말하기와 소통의 시대였다”고 평가했다. 정치부 기자로 청와대와 국회, 정당을 오가며 취재를 하다 보니 두 대통령의 말하기 내공을 실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5시간 19분의 필리버스터 최장시간 연설 기록을 세울 정도로 말솜씨가 뛰어났다. 또 김 전 대통령 말 속에는 필요한 정보와 개념이 빠짐없이 들어있어, 기자들 사이에서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해도 바로 기사가 된다’란 말이 떠돌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김 전 대통령의 말하기는 곧 국민 소통으로 이어졌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란 이름으로 TV에 직접 출연해 국민과 소통하려 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창한 말솜씨로 많은 연설과 어록들을 남겼다. © 김대중 도서관

김대중 정부가 ‘말의 시대’를 열었다면, 노무현 정부는 ‘말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못 해먹겠다’, ‘이런 놈의 세상’ 등 속된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해 일부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그의 말 속에는 ‘민중의 언어를 사용하겠다’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박 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분’이었다”며 “그는 한국 사회가 가진 기득권 중심의 권위주의적 문화를 깨뜨리려면 ‘토론공화국’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은 언론 취재 환경도 변화시켰다. 각 언론사 1명만 가능했던 청와대 출입기자 수가 늘어났고, 하루 두 번이나 생중계한 적도 있을 정도로 기자회견이 빈번해졌다. 또 기자회견에서 미리 질문 순서는 물론이고 질문과 답변의 내용을 주고받는 관행도 없어졌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중의 언어’를 사용하며 대중과 많은 소통을 하려고 노력했다. © 노무현사료관

박 국장은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의 풍부한 말하기의 원천은 독서”라며 말과 소통, 리더십에 있어 독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전에 최소한 30분에서 1시간 독서를 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고, 노 전 대통령 역시 청와대에 대통령이 읽어야 될 책을 고르는 ‘리더십 비서관’ 자리를 새로 만들 정도로 독서의 끈을 놓지 않았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은 지독한 ‘말하기 사랑’으로 말의 전성시대를 열었지만, 한계도 존재했다. 너무나 말하는 것을 좋아한 나머지 말을 독점해버린 것이다. 박 국장은 “김 전 대통령은 본인 말에 굉장히 자신이 있어서 모든 사람을 상대로 가르치려는 경향이 있었고, 노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간담회 같은 행사는 여론을 듣기 위한 자리인데도 시간 대부분을 자기 말로 채웠고, 어떤 때는 예정된 시간을 연장하면서 말을 독점했다.

정권이 바뀌고 후퇴한 말의 시대

▲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말하기 문화는 과거로 회귀하며 다시 소통이 상실되었다. © 청와대 홈페이지

박 국장은 지난 보수정권 10년의 말하기 문화를 두고 ‘제왕적 말하기 문화의 부활’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 기자회견 숫자가 눈에띄게 줄었고, 노무현 정부 때 없어진 ‘짜고 치는 기자회견 관행’ 역시 되살아났다. 일례로 이 전 대통령과 각 언론사의 정치부장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기자들이 하나같이 대통령의 건강, 여가생활을 묻는 ‘MB어천가’ 같은 질문만 했고, 대통령 역시 불편한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으려 했다. 박 국장은 “언론이 자기 역할을 포기했다는 것과 권력자가 국민들의 궁금증에 응답할 책무를 어긴 점이 문제였다”며 “언론인이 국민의 알 권리를 생각하지 않으면 권력에 기대 ‘용비어천가’ 같은 질문만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의 말하기 문화는 더 후퇴했다. 박 국장은 “박근혜 정부 시기는 말하기에 있어서 가장 일방적이고 소통이 없었던 때였다”며 그 당시를 ‘적자생존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국무회의를 하면 발언하는 사람은 대통령 한 사람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수첩에 받아 적기만 할 뿐 질문이나 의견 제시가 일체 없었다. 그런 대통령 모습은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 더욱 심해져 집무실보다 관저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됐고, 결국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까지 이어졌다.

어떤 소통이 잘 된 소통일까

“어떤 기자가 되건, 어떤 위치에 있건 가장 중요한 게 동료 구성원들과의 소통입니다.”

박 국장은 동료 구성원과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으로 ‘N분의 1법칙’을 소개했다. 식사비용을 자리에 있었던 사람수로 나눠 각자 내듯 대화를 할 때도 모두가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박 국장은 “이런 ‘N분의 1법칙’은 리더에게 더 요구되는 자세”라며 “리더는 자기가 말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의제를 설정해 주고 회의를 이끌며 구성원 중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운현 이상수 한홍구 정희준 박창식 김필동 장승구 이주헌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장은미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