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㊸ 재활용 현황과 과제 (하)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를 낀 채 피 흘리는 코스타리카의 바다거북. 태국과 말레이시아 접경 바다에서 구조된 둥근 머리 돌고래 뱃속의 80여개 비닐봉지.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21개국 39개 브랜드 천일염 중 36개 제품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 인간이 함부로 버린 쓰레기가 바다를 오염시키고 해양생물을 해치고, 마침내 식탁에 올라 건강을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뉴스의 장면들이다. ‘플라스틱의 역습’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마구 버린 1회용품, 밥상 위 소금까지 오염

▲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인천대 해양학과 김승규 교수팀이 지난 10월 발표한 21개국 39개 브랜드 천일염의 미세 플라스틱 함유량 분석결과. 인도네시아 소금의 미세 플라스틱 함유량이 가장 많았고 우리나라 소금도 8위의 오염도를 기록했다. ⓒ 그린피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와 조지아주립대 공동연구팀이 지난 2017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950~2015년 66년 동안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 83억톤(t) 가운데 63억t이 쓰레기로 버려졌다. 폐기된 63억t 중 재활용된 것은 9%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중국, 필리핀 등 저개발지역으로 실려가 산과 강, 바다 등에 버려졌다.

중국은 2016년 기준 전 세계 재활용 쓰레기의 절반에 해당하는 730만t을 수입해 가공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쓰레기 처리지역의 환경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자 중국 환경보호부는 지난해 7월 폐플라스틱, 폐금속 등 고체폐기물 24종의 수입을 금지했다. 지난 4월 우리나라에 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던 것도 이 정책의 여파다.

유럽연합(EU)은 중국의 폐기물 수입금지 이전부터 꾸준히 자원순환 정책을 추진했다. 지난 2015년 ‘EU 순환경제 패키지’를 통해 2030년까지 폐기물의 생산·소비·관리 방식을 전면 개혁하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오는 2025년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과 플라스틱의 매립을 전면 금지하고, 2030년까지 포장재 폐기물을 80% 감축하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영국 소매점 ‘공짜 비닐봉투’ 전면금지

특히 영국은 지난 2015년부터 250명 이상을 고용한 대형유통업체들이 1회용 비닐봉지를 고객에게 무상제공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비닐봉지가 필요한 고객은 5페니(약 70원)에 사도록 했다. 영국 환경부에 따르면 이 조치 전인 2014년에 1회용 비닐봉지가 76억개 생산·소비된 데 비해, 2017년 4월부터 1년 동안은 10억 개로 86%나 줄었다. 영국 정부는 이런 성과에 힘입어 지난 8월 1회용 비닐봉지 유상판매를 전체 소매점으로 확대하고 가격도 10페니로 인상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 영국의 대형유통업체들이 2015년 10월 5일부터 1회용 비닐봉지를 무상제공하지 않고 5페니(약 70원)에 판매한다는 것을 안내한 공고문. 영국은 올해 이 조치를 전체 소매점으로 확대하고 비닐봉투 가격도 10페니로 올렸다. Ⓒ 영국 환경부

1인당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2016년 기준 한국(98.2㎏)에 이어 2위(97.7㎏)인 미국은 지방정부와 기업들이 자원순환 대책에 앞장서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지난 8월 미국 주 가운데 처음으로 2019년부터 식당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특히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카운티의 말리부시는 지난 6월부터 플라스틱으로 만든 빨대와 포크, 칼, 숟가락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커피체인점 스타벅스는 오는 2020년까지 전 세계 모든 점포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제거하겠다고 지난 7월 발표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월트디즈니 또한 2019년 중반까지 디즈니랜드 등 회사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모든 장소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적 금융회사인 골드만삭스도 사내에서 플라스틱 빨대 및 뚜껑, 종이컵을 전부 제거할 것이라고 지난 10월 공표했다. 선진국 뿐 아니라 인도, 케냐 등 제3세계 국가들도 1회용품 규제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장바구니 사용 등 생활 속 실천 필요 

우리나라도 일회용 컵 규제 등 일부 영역에서는 모범 사례에 들어간다.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43) 소장은 “과대포장 기준이나 1회용품에 대한 사용규제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규제강도가 오히려 센 편이지만 1회용품 제조업체 숫자가 많고 대부분 영세업체라 규제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단계에서는 1회용품 사용에 대한 대안모델과 문화가 풀뿌리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태희(46) 정책국장은 지난 10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커피전문점 1회용품 퇴출 자율협약으로 테이크아웃잔이 몇 개월 만에 크게 줄어든 것을 들어 “소비자와 업계가 정부 정책에 적극 동참하면 1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소비자들이) 편리함을 추구하기 때문인데,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기 컵과 장바구니 등을 써서 쓰레기를 안 만드는 게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 김태희 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국장.

자원순환사회연대는 ‘생활 속 실천’으로 1회용 나무젓가락 쓰지 않기, 커피전문점에서 1회용컵 대신 머그컵에 주문하기, 일회용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 쓰기, 포장이 간소한 제품 사기 등을 제안했다. 또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것도 좋은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1회용품 제로 가게’도 속속 등장

이런 취지에서 1회용품을 쓰지 않는 가게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울 성수동 한적한 골목길에 있는 카페 겸 식품점 ‘더 피커’에는 비닐봉지 등 1회용품이 없다. 콩, 현미 등 곡물과 견과류, 과일 등 20여 가지 식재료 판매품을 손님들이 가져 온 통에 담아준다. 통을 준비하지 못한 고객은 매장에서 생분해성분인 피엘에이(PLA) 용기를 구입할 수 있다.

박상근(38·서울 성수동)씨는 “이 가게에 7~8번 정도 왔는데 오트 바나나와 블랙 오트밀을 자주 먹는다”며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일이 귀찮기는 하지만 미세 플라스틱 뉴스 등을 접한 터라 가능한 한 갖고 다니려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성수동의 ‘더 피커’는 일회용 포장용기를 사용하지 않는 식료품점이다. 곡물과 음료, 채식 샌드위치 등을 고객이 가져 온 용기에 담아준다. ⓒ 장은미

서울 연희동의 한 아파트 단지 맞은편에 있는 카페 ‘보틀 팩토리’도  남다른 곳이다. 포장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다 카페를 차렸다는 정다운(38)씨는 플라스틱, 종이컵, 빨대 등 1회용품을 전혀 쓰지 않는다. 개인용기를 준비하지 못한 테이크아웃 고객에게는 가게 텀블러를 무료로 빌려준다. 향후엔 보증금 도입도 고려 중이다. 카페에 온 손님들이 개인 용기를 씻을 수 있도록 개수대도 마련해 두었다.

정씨는 “작년에 쓰레기수거 차량을 따라 쓰레기장에 가본 적이 있는데, 넘쳐나는 쓰레기를 보고 많이 놀랐다”며 “우리는 너무 쉽게 쓰레기를 만드는 문화 속에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페트병 덜 쓰기부터 배달이나 배송 등 넘쳐나는 포장재에 대해 좀 더 심각성을 인식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일회용품 없는 카페’를 선언한 보틀팩토리는 손님들이 자신의 개인 텀블러를 씻을 수 있게 가게 한쪽에 개수대를 설치했다. 개인 텀블러가 없는 고객에게는 무료로 텀블러를 빌려주고, 스텐레스 빨대 등 1회용품을 대체할 수 있는 상품들도 판매한다. ⓒ 장은미

개인적 실천과 공동체 소비문화 개선 병행해야 

그린피스 유지연 시민참여 캠페이너는 지난 12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카페에서 플라스틱컵 대신 머그컵을 쓰겠다는 분명한 의사를 보여주는 것 등 개인적 실천도 중요하고 사회적으로는 일회용품 쓰레기를 만드는 소비문화를 지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린피스는 이런 취지에서 미국의 대규모 할인판매기간인 ‘블랙 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 기간의 과도한 소비에 대응하는 ‘메이크 썸씽 위크(Make Something Week)’ 행사를 지난 2일부터 10일까지 홍콩, 런던, 마드리드 등 여러 도시에서 벌였다. 각국 그린피스가 주관한 이 행사에서는 고장 난 제품 수리나 업사이클링(다른 용도로 재활용), 공유, DIY(직접 만들기), 재사용 등의 교육이 진행됐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도 지난 8일 ‘불(不)편의점’이란 이름의 행사를 서울 양평동 제이빌딩에서 열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미국 유통업체들의 대규모 할인기간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맞서 지난 2일부터 10일까지 세계 각지에서 벌인 ‘메이크 썸씽 위크(Make Something Week)’ 행사 이모저모. 각국의 그린피스 사무소를 중심으로 업사이클링, 공유, DIY 교육 등이 진행됐다. ⓒ 그린피스
▲ 유지연 그린피스 시민참여 캠페이너.

유지연 캠페이너는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소비를 하게 만들고, 그 낭비가 결국 쓰레기 생산으로 이어진다”며 “기업의 마케팅에 의해 불필요한 소비를 하는 대신 지속가능한 소비를 하자는 취지에서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물건을 살 때는 꼭 필요한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선택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 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편집자)

① “아이들 미래 위해 원전 말고 안전!”

② '블랙스완' 부인하다 일본도 당했다

③ 생존배낭 챙겨 두고 ‘쿵’ 소리에도 깜짝

④ 동해안 원전에 쓰나미 덮칠 수도

⑤ 100만 명 ‘7시간 내 대피’ 가능할까

⑥ 사고 은폐, 불량부품에 근무 중 마약도

 사용후핵연료 저장건물 테러 무방비

⑧ ‘핵쓰레기통’ 10만년 묻을 땅 찾아야

⑨ “핵재처리는 원전 수백년 더 짓자는 것”

⑩ “내 손으로 원전 짓고 암 환자 됐소”

⑪ 아이 몸에도 삼중수소, 어른은 암 속출

⑫ ‘173등짜리 공기’에 병드는 한국

⑬ 발암 먼지에 사람도 게도 까맣게 '속병'

⑭ 석탄 함정에 빠진 '세계 4대 기후악당' 

⑮ "일본이 당한 재난, 한국에 닥칠 수도"  

⑯ 끔찍한 재앙 후에도 여전한 ‘거짓말’

 '싼 전기 공급' 매달리다 원전·석탄 중독

⑱ "후쿠시마 7년, 일부 마을 오염 더 증가"

⑲ 잇단 참사에도 원전을 더 짓자는 세력

⑳ 그 기사는 돈 받고 쓴 것이었다

㉑ 돈 풀어 '친원전 이데올로기' 주입

㉒ 폭염·혹한···지금은 '기후붕괴 시대'

㉓ '기후 악당' 한국에 '온난화 징벌' 본격화

㉔ '트럼프 암초'에서 파리협정을 구하라

㉕ EU 탄소 40% 줄일 때 한국 83% 증가

㉖ '화석연료 제로' 밀어붙이는 '주민의 힘'

㉗ ‘말뫼의 눈물’ 딛고 첨단 친환경 도시로

㉘ 100% 에너지자립 마을, 실업률은 0%

㉙ 태양광·풍력으로 가는 유럽 최강 경제

㉚ 원전대국 프랑스에 태양광전기 수출

㉛ 바닷바람 타고 세계 1등 기업 배출

㉜ 자전거 타는 '날씬이'와 '튼튼이'의 나라

㉝ 태양과 바람의 나라, 어제의 영광이여

㉞ 경제위기, 태양세... 긴 터널 지나 새 출발

㉟ ‘바람은 모두의 것’ 제주 이익공유 첫발

㊱ 무시당한 주민의 분노가 ‘결사반대’로

㊲ 해상풍력, ‘제2 조선업’ 도약 가능할까

㊳ 시민 주도 햇빛발전소, ‘원전 대체’ 시동

㊴ 환경 논란에 중금속 ‘가짜뉴스’도 기승

㊵ “국내 옥상에 원전 44기분 태양광 가능”

㊶ 플라스틱 대신 종이·쌀 빨대 각광

㊷ 인공지능 로봇이 ‘분리수거·계산’ 척척

편집 :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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