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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민족주의 ‘온상’이 된 스포츠

기사승인 2018.12.17  16: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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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교양특강] 정희준 부산관광공사 사장
주제 ① 민족주의와 스포츠 저널리즘

“어떤 사람들은 국가가 더 이상 세계 질서가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민족간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죠. 배타성은 줄어들 것 같은데 줄어들지 않아요. 특히 우리나라는 스포츠에 민족이 올라타 있죠. 이런 걸 스포츠 민족주의라고 합니다.”

동아대 생활체육학과에 재직했고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던 정희준 부산관광공사 사장은 지난 10월 19일 세명대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스포츠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역할을 했다”며 우리나라의 지나친 ‘스포츠 민족주의’를 비판했다. 자랑스러워 할 게 없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민족 자부심을 불어넣으려고 스포츠를 이용해 민족주의를 고취했는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 정희준 부산관광공사 사장이 지난 10월 19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민족주의와 스포츠 저널리즘’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황진우

우리나라 현대판 영웅은 전부 스포츠 스타인가?

“우리나라에서 영웅 반열에 올랐던 인물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차범근, 이봉주,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김연아... 다 스포츠 스타 아닌가요?”

정 사장은 우리 국민이 스포츠 영웅들을 통해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계속 되새김질 당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데 언론이 일조했다며 정신이 혼미스러울 정도로 스포츠 스타를 띄워줬던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

“차범근은 아시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축구선수로 기록됐죠, 박찬호, 박세리도 마찬가지로 별별 기사들이 다 나왔어요.”

그는 “2002년 월드컵에는 애국가 4절까지 외우는 젊은이들을 보며 기성세대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칼럼까지 등장했다”며 민족주의를 강요한 언론 보도를 꼬집었다. 그는 민족이 만들어진 개념일 뿐이라며 18세기까지는 민족이라는 개념은 아예 없었다고 설명했다.

민족주의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전통 왕조 몰락으로 통치방식이 바뀌면서 등장한 개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민족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로 계급이 없어진 것이 한 몫 했다고도 덧붙였다.

“우리가 축구를 응원할 때 계급이 없죠. 이런 계급 없는 민족주의가 과거 지배집단의 통치 도구로 활용된 겁니다.”

그는 이런 민족주의가 왜곡돼 나온 것이 나치즘, 파시즘을 대변하는 전체주의라고 설명했다. 전쟁 도구로 민족주의가 이용되기도 했는데 전쟁이라는 집단적 고통은 환희 이상으로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민족주의를 이용해 젊은이들을 전쟁에 참여시킨 것이다. 정 교수는 “청년들이 국가와 자기를 동일시하게 만들어 그들에게 조건 없는 희생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 나치의 뉘른베르크 집회 장면. 나치즘은 왜곡된 민족주의의 대표적 사례다. © 정희준

원숭이 흉내 내는 등 ‘국수주의 세리머니’도

정희준 사장은 왜곡된 민족주의가 국수주의로 변질됐다며 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등 다른 민족을 무차별로 죽이며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한 독일 상황을 예로 들었다. 그는 현재도 미디어에 의해 잘못된 국수주의가 퍼져나가고 있다며 스포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2011년 AFC 아시안컵 4강 전 당시 기성용 선수가 원숭이 흉내를 내는 골 세레머니를 했는데 스포츠맨십에 어긋난 대표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당시 기성용 선수는 관중석에 있는 욱일승천기를 보고 눈물이 났다는 인터뷰를 했다.

   
▲ 2011년 AFC 아시안컵 4강전인 한일전에서 기성용 선수가 원숭이 흉내를 내며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네이버 스포츠

정 사장은 올림픽을 비롯한 스포츠는 평화를 기본으로 하는 대회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스포츠가 미디어를 타고 수많은 팬덤을 업으면 바람직하지 못한 길로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예요. 스포츠, 민족주의, 미디어 상업주의가 버무려지면 과거 우리가 흔히 얘기하던 교과서적인 얘기에서 벗어난 경우를 보게 될 거예요.”

정 사장은 21세기는 신자유주의 민족주의로 변했다고 덧붙였다. 민족주의가 자본주의 부산물이자 이윤 중시의 경제적 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민족주의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월드컵 기간 광고 행태를 예로 들었다. 이 시기에 축구광고나 빨간색 바탕 광고가 많이 나왔는데 민족 중시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소비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응원전 역시 상업적으로 이용됐다.

“월드컵 기간에 현대자동차는 코엑스 앞에서 응원하게 만들고, SK는 반포와 서울시청 앞에서 응원할 수 있었죠? 그게 고객을 유치하려는 전략이에요.”

‘경제효과’ 망상에 빠져 국제대회 계속 유치

정 사장은 스포츠 메가이벤트 개최도 비판했다. 스포츠 이벤트가 크면 클수록 경제성장에 도움된다는 생각은 망상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스포츠에 민족주의와 개발주의가 결합되니까 아무도 못 말리게 된 것”이라며 대표 사례로 ‘평창동계올림픽’을 들었다. 당시 그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에서 경제효과보다 실이 많다고 주장했다. 과도한 재정을 부담해 시설을 만들어도 나중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사후활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충주 세계조정선수권대회, 여수 엑스포 F1대회, 부산 2002아시안게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후활용방안이 안 나오는 이유는 방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 사장은 스포츠 메가이벤트로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망상을 언론이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언론이 스포츠 메가이벤트 개최시 관광대국과 부자가 되고 투자가 일어난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고 했다. 그는 “어떤 언론은 40조, 또 다른 언론은 200조 효과가 난다고 널뛰기 보도를 했다”며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황진우

K리그 도박 사건 때도 축구기자는 ‘침묵의 카르텔’

정 사장은 스포츠가 상업적으로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현상에 대해서도 일침을 날렸다. 그는 “외국에서는 좋은 사례, 나쁜 사례 다 보도하지만 한국 언론은 그렇지 못하다”며 “한국에서 스포츠 관련 기사는 저널리즘 정신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의리를 중시하는 스포츠업계 특성상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 예로 7년 전 k리그 도박 사건 때 축구담당기자가 단 한 명도 전화하지 않은 일화를 설명했다..

“당시 자살한 축구 선수만 셋이고 52명이 영구제명당할 정도로 축구계가 초토화한 상황에서도 담당기자들이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어요”

그는 “당시 기자들 분위기가 축구업계와 한 통속이 돼서 야구한테 인기 빼앗길 것만 걱정했다”며 “정말 황당한 기자정신을 봤다”고 털어놨다. 그는 “선수 인터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구단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야 취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선수는 허락 받은 경우에만 특별히 인터뷰할 수 있는데 이때도 주로 주장과 고참이 나서서 정해진 답만 얘기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프런트 감독 얘기만 듣는 경우가 많아 그쪽 중심 기사만 나가게 된다”며 선수 상황이 반영되지 않는 구조를 안타까워했다.

   
▲ 정희준 사장은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를 통해 스포츠에 지나치게 열광하는 우리 민족을 비판했다. ⓒ 네이버

정 사장은 대중문화 연구 분야에서 스포츠가 소외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사용한 80년대 기억 때문인지 대중문화 연구자들도 스포츠를 다루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포츠를 즐기고 마는 것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비판과 연구 대상으로 봐야 합니다. 스포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장점도, 단점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운현 이상수 한홍구 정희준 박창식 김필동 장승구 이주헌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박선영 기자

조승진 황진우 기자 gugu9213@naver.com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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