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한류 콘텐츠 진출 막는 ‘반한류’

외환위기 여파로 제조업이 흔들리던 1997년, 소리 없이 ‘한류’ 바람이 불었다. 시작은 드라마였다. 중국 CCTV에 ‘사랑이 뭐길래’, ‘별은 내 가슴에’ 등이 방영되면서 한류 콘텐츠가 중국 지상파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당시 한국의 대표 아이돌이던 H.O.T의 음반이 중국에서 정식 발매되었고, 가수 클론은 대만과 중국을 오가며 성공적인 공연을 이어갔다. <북경청년보>에서 ‘한류’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었다. 영화에서는 ‘쉬리’가 1999년 홍콩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엽기적인 그녀’가 2002년 중국에 ‘엽기’ 열풍을 일으켰다.

▲ 2004년 일본 NHK에 방영되면서 한류 바람을 이끈 KBS 드라마 ‘겨울연가’. ⓒ KBS

관광객까지 끌어들인 ‘겨울연가’와 ‘대장금’

드라마 ‘겨울연가’는 일본에 ‘욘사마’ 열풍을 일으켰고, ‘대장금’은 동남아시아와 중동에서 한류 분위기를 이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인기가 올라가면서 관광객 수도 늘었다. 한국을 다녀온 관광객들은 한국 드라마나 가요에 심취하면서, 그 관심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자는 열풍으로 이어졌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이런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2001년 문화관광부에서는 ‘한류 산업 문화 육성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류 콘텐츠는 정부 차원에서 육성해야 할 중요한 산업분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5년 한류가 위기를 맞는다. 독도 영유권 분쟁과 역사 교과서 왜곡 논란으로 양국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한류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중국에서도 한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류 콘텐츠 수출시장이 동남아와 중동으로 다변화하면서 침체 분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한류’ 대신 K팝, K드라마, K뷰티 등 브랜드화

2000년대 들어 전세계에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인터넷망을 통해 한류는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2010년대에는 콘텐츠 기업이나 연예기획사가 현지에 진출하여 한류를 알리기 시작했다. 한류라는 용어 대신 K팝, K드라마, K뷰티 등 ‘K’를 브랜드화해 한국제품 수요로 연결하는 마케팅전략이 등장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2011년 파리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유럽에서 K팝이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K팝을 전세계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유튜브를 통해 ‘강남스타일’이 퍼지면서 제작 프로세스도 변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가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유통 플랫폼으로 활용되었다. 외국 팬들이 한국 스타의 팬덤을 형성하면서 한국문화가 그들에게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태양의 후예’는 ‘치맥’과 여배우들의 패션을 인기 품목으로 만들었다.

독도와 사드도 문화상품 진출 못 막아

그러나 이 시기에 한류는 다시 한번 위기를 맞는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2016년 사드 배치로 한류의 주요 시장이던 일본과 중국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특히 중국은 ‘한한령’(限韓令)을 내리며 한국 콘텐츠의 중국 지상파 진출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상파보다 모바일에 익숙한 1990년대, 2000년대생들의 트렌드, 드라마뿐 아니라 웹툰, e스포츠 등으로 한류가 확산하고 있어 상황이 악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낙관한다.

중국의 한한령은 오히려 한류 콘텐츠 수출시장을 재빨리 다변화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한류가 퍼지고 있다. 2013년 슈퍼주니어 남미 투어에 이어 샤이니, 빅뱅 등의 공연이 이어졌고, 현지 방송사는 이를 앞다퉈 방송했다.

▲ 지난 6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주최한 '2018 필코리아(FEEL KOREA)'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북미와 유럽에도 고정팬 두터워져야

한류 콘텐츠의 전세계 진출과 관련해 한 애널리스트는 ‘아시아와 중동, 남미에서는 고정층을 확보했으나 북미와 유럽에서는 아직 미미하다’면서 나라별 문화 특성에 맞춘 진출 전략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인구와 소득 면에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와 같은 한류 잠재력이 큰 나라에 대한 문화지원정책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북미 진출 사례를 봤을 때 더욱더 그러하다. 방탄소년단은 2017년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초청을 받았고, 올해는 음반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KBS 드라마 ‘굿닥터’도 미국 ABC방송에서 리메이크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애플TV, 넷플릭스 등과 같은 새로운 플랫폼은 한류가 북미로 확산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북미에서 소수 매니아층의 관심만 받다가 이제는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한류 수출시장은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시장에서 중동, 남미, 유럽과 북미로 다변화하고 있다. 그 반작용으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퍼지고 있는 것이 ‘반한류’ 움직임이다.

문화관광부 산하 국제교류문화진흥원이 발간한 2017년 ‘해외 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반한류의 공감도가 전년도보다 10% 증가한 31%로 나타났다. 앞선 2015년에는 16.2%, 2016년은 21.1%를 기록했다. 국가별로는 중국(49.4%), 인도(41.3%), 태국(40.3%) 순으로 평균 40%대를 보였다.

▲ 2017년 글로벌 한류 실태조사 ⓒ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남북 긴장은 한류에 부정적

한류에 부정적인 이유로는 '남북 분단 및 북한의 국제적인 위협 관련 보도'(17.4%), '지나치게 상업적인 콘텐츠 특성'(14.0%), '한국과의 정치 및 외교적 갈등'(11.3%), '자국 콘텐츠 산업의 보호'(11.3%) 등을 꼽았다. 북한 이슈에 따른 한국 콘텐츠의 부정적 인식 형성에 크게 공감하는 지역은 유럽(20.9%), 아프리카(20.5%), 미주(17.8%) 순이었다. ‘한국과의 정치 외교적 갈등’은 2016년과 마찬가지로 중국(17.8%)과 일본(20.3%)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부정적인 인식의 개선 가능성도 보였다. 한국 콘텐츠를 경험한 뒤 한국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60.4%였다. 인도, 브라질,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한류 콘텐츠를 접한 뒤 한국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응답률은 70% 이상이었던 데 반해, 일본에서는 26.8%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반한류’를 어떻게 건널까

2005년을 전후해 우리나라는 콘텐츠 수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문제는 동남아시아에만 집중된 수출이라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한때 한류 콘텐츠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이었다. 최근 이런 한계를 일정 정도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을 노크하면서 맞닥뜨린 장벽이 반한류 기류다. 반한류 장벽은 개별 연예기획사나 기업 차원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한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국가별 맞춤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편집 :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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