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당신이 누군지 몰라도 되는 사회

기사승인 2018.11.22  13:14:07

공유
default_news_ad1

- [단비발언대]

   
▲ 박지영 기자

<조선일보> 사주의 열 살짜리 손녀가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운전기사에게 갑질을 해 분노가 일고 있다. 얼마 전에는 <뉴스타파>와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함께 보도한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주이자 한국미래기술 양진호 회장의 직원 폭행 영상이 인간성이 상실된 노동 현장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4년 전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대기업 오너의 갑질이 드러나긴 했지만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가진 자’들의 횡포는 끊이질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갑질 공화국’에 살고 있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어.” 6.25 전쟁 이후 생존 문제는 사람들의 지상과제였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분단의 아픔뿐 아니라 모든 것이 초토화한 삶의 터전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견뎌내야 하는 강인한 삶의 태도를 몸에 배게 했다. 생존이 최우선 가치로 설정되며 도덕적 가치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자는, ‘개천에서 용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은 사람들 의식 속에 깊이 내면화했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1등만이 살 길’이라는 굳은 신념으로 바뀌고, 그 신념을 쫓았던 사람들이 갑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이란 부와 명예, 권력의 획득을 의미했다.

   
▲ 웹하드 업계 1, 2위 업체 위디스크의 실소유주인 양진호 회장이 퇴사한 직원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양 회장은 음란물 유포와 방조, 저작권법 위반, 업무상 횡령, 강요, 폭행, 대마 수수 및 흡입, 동물학대 금지, 총포 도검 등 안전관리 법률에 따른 미허가 소지 등 총 10건의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 뉴스타파, 셜록

‘갑을 사회’의 원류는 개천에서 용이 된 갑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그들은 도덕과 윤리 의식이 배제된 행동들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당연한 선택으로 여기며 정당화한다. 자신의 능력과 지위를 갖게 해준 것이 바로 실력, 돈, 권력이기에 이들은 사회에서 수많은 ‘을’을 대할 때도 물질만능주의와 능력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설정한다.

최근 논란이 된 수많은 갑질 사건의 중심에 ‘너 내가 누군지 아냐’는 갑들의 인식이 깔려 있다. 그들이 을들에게 온갖 모욕과 행패를 부리는 이유도 윤리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존재감과 능력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너 내가 누군지 아냐’며 돈과 실력, 지위로 수많은 을들을 겁박한다.

‘갑을 사회’의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당신이 누군지 몰라도 되는 사회’, 곧 ‘을이어도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먹고 살 길을 틀어 쥔 갑 앞에 을들이 당당하기는 쉽지 않다. 을이 갑 앞에서 당당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참아왔던 갑질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사람이 기본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복지구조를 견고히 하는 것이다. 소득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회 취약 계층에게만 복지 혜택을 주는 선별적 복지가 아닌 조건 없이 모든 국민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로 빨리 변화해야 한다.

도덕과 윤리를 저버리지 않고도 인간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갑에 대한 을의 저항이 실효성을 확보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해야 갑질의 주체들이 물신주의와 능력주의가 만능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국가의 복지수준을 높여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갑을 사회’의 해법이지만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을’들의 연대다. 최근 논란이 된 갑질 사건들은 갑을 향한 비난과 을을 향한 응원이 있었기에 갑의 사과나 처벌로 귀결될 수 있었다. 결국 소수의 갑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연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노조와 시민단체 등의 연대를 통해 을은 갑의 횡포에 효과적을 대처할 수 있었다.

희망적인 것은 촛불혁명 이후 노조에 대한 시민의 긍정적 인식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는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보호 활동과 사회제도 개혁 활동에 관한 국민의 기대가 높아졌음을 말해준다. 연대를 통해 갑질에 저항하고 끝내 ‘당신이 누군지 몰라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갑질 공화국’을 청산하는 유일한 길이다.


편집 : 양영전 기자

박지영 기자 bing831@naver.com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