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영화 ‘나만 없는 집’ 제작 동행기

2년 전, 대구에 거주하며 대학 졸업을 앞둔 때였다. 영화제작에 관심이 많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때,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학교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독립영화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감독님이 이번에 대구에서 작품을 하신다네. 혹시 참여해볼래?” 그렇게 조연출로 참여한 작품이 김현정 감독의 <나만 없는 집>이었다. TV 뉴스는 이성적으로 정보를 전달하지만 영화는 메시지를 감성적이고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영화적 감성이 어떻게 만들어져 관객들에게 전달되는지 조연출로 참여했던 영화 ‘나만 없는 집’을 통해 들여다본다.

▲ 김현정 감독의 영화 ‘나만 없는 집’ 첫 장면이자 메인 포스터. ⓒ 김현정

‘미장센 단편 영화제’ 5년 만의 대상 ‘나만 없는 집’

이 영화는 김현정 감독의 독립영화이자 단편영화다. 33분 동안 영화는 사춘기 소녀의 섬세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필름어워드, 대구 단편영화제 애플 시네마 부문 대상 등을 수상했다. 특히 심사가 까다롭다고 소문난 ‘미장센 단편 영화제’에서 5년 만에 대상을 받았다. 미장센을 이용한 탁월한 메시지 전달이 인정받은 셈이다.

영상매체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각과 청각을 이용한 메시지 전달이다. 단순한 텍스트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소리를 최대한 활용해 메시지를 감성적으로 전달한다. 영화는 더욱더 그렇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메시지가 영화에 담겨 우리에게 다가온다. 배우의 연기, 빛과 조명의 조절, 배경음악 등 영화의 도구적 요소들이 메시지의 효과적 전달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필자는 조연출로 참여한 덕분에 좀 더 가까이서 영화가 가진 ‘감성적 전달’을 위한 감독의 섬세한 연출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시중에 나오는 많은 영화는 스타 배우, 화려한 CG가 중심이 돼 관객들의 욕구를 자극한다. 이 영화는 그런 요소들을 차용하지 않았다.

▲ 새벽 4시까지 촬영이 이어진 영화 ‘나만 없는 집’ 촬영 현장. ⓒ 임지윤

그땐 몰랐고 지금은 이해되는 미장센

감독은 영화의 많은 요소 중 특히 미술에 많은 신경을 썼다. 배경이 20년 전인 1998년인 데다가 그때의 사춘기 소녀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영화에 나오는 사물과 배경 하나하나에 세심한 배려를 다했다. 감독 자신이 여성이고, 어릴 적 경험을 영상 매체에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라 쉽게 제작할 수 있을 법한데, 절대 제작을 쉽게 하지 않았다. 카메라 앵글 안에 놓인 사물의 배치, 빛의 전달 등이 미흡하다고 생각되면 한 컷을 찍는데 몇 십 번을 재촬영했다.

예상 스케줄보다 훨씬 늦어지는 게 일상이었다.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촬영이 이어지는 날도 있었다.  2년이 지난 지금, 영화제 말고는 시중에서 영화를 볼 수 없는 터라 감독에게 연락해 영화 파일을 받아야 했다. 몇 번 연락을 한 끝에 어렵사리 파일을 받았다. 다시 본 영화는 조연출이던 그때 느낌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제작 당시 감독이 왜 그렇게 미술적인 부분을 중시했는지, 빛의 색조에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비로소 이해됐다. 영화의 아주 작고 디테일한 미술적 장치들이야말로 2018년 현재를 살아가며 성인이 된 내가 20년 전 과거를 살아간 한 사춘기 소녀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 요소였다.

감정을 전달하는 첫 번째 방법, ‘빛’

▲ 영화를 이루는 주된 감정선은 사춘기 소녀의 ‘외로움’이다. 푸른 색조는 외로움을 더 잘 드러낸다. 집에 혼자 있는 세영이 밤늦게 직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와 통화하는 장면이다. ⓒ 김현정

영화를 이루는 가장 무거운 감정선은 외로움이다. 예쁘고 애교도 많아 엄마에게 용돈도 잘 타고 걸스카우트 단원인 데다 남자친구까지 있는 언니 선영과 달리, 언니 옷을 물려받아 입고 다니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주인공 세영은 너무 걸스카우트 단원이 되고 싶지만 부모는 세영에게 관심도 없다. 그래서 늘 언니를 부러워하고 동시에 시샘하고 질투한다. 언니는 세영이 그럴수록 더 차갑게 대한다. 

사춘기 소녀가 가진 마음 한구석 외로움은 다양한 영화적 요소를 통해 드러난다. 먼저 조명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현장에서도 가장 바쁘게 움직인 스탭이 조명팀이었다. 촬영 장소에 따라 빛의 세기와 색조가 달라지니 그것을 일정하게 맞추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릴 때면 자연광이 부족해 실내조명공사로 직접 빛을 만들었고, 실내조명이 영화 분위기와 맞지 않으면 조명을 일일이 테이프로 감아서 일정 부분 가리기도 했다. 영화 제작 현장이 자주 공사현장으로 바뀌곤 했다.

▲ 실내조명이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땐 조명팀이 직접 실내조명 공사를 했다. ⓒ 임지윤

스토리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언니와 몸싸움하는 장면, 엄마가 일하는 공사장에 가서 엄마와 얘기하며 우는 장면은 푸른빛을 띤다. 이런 장면은 해가 뜨기 시작하는 이른 오전이나 새벽에 촬영했다. 세영이 혼자 집에 있는 장면도 어두우면서 푸른빛을 띠는데 이는 실내조명을 활용한 것이다. 푸른빛은 세영의 심리를 드러낸다. 집 자체가 공허하면서도 차가운 공간으로 느껴지게 하는데 이는 외로운 세영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나중에 세영이 언니의 걸스카우트 옷을 몰래 훔쳐 입고 나가서 친구들과 함께 걸스카우트 율동을 배우는 장면은 붉은 톤을 썼다. 꿈과 현실을 영상 톤으로 대비해 표현했다.

감정을 전달하는 두 번째 방법, ‘구도’

▲ 영화를 이루는 각각의‘컷’들은 다양한 구도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낸다. 세영이 언니와 남자친구의 통화내용을 몰래 듣다가 언니에게 구박받는 장면이다. ⓒ 김현정

구도도 마찬가지다. 세영과 언니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주로 세영의 위축된 모습이 나타난다. 언니는 서서 세영을 내려다보고 세영이 밑에서 언니를 쳐다보는 구도는 세영과 언니 사이에 놓인 권력관계를 드러낸다. 언니에게 걸스카우트 그만두지 않으면 엄마한테 남자친구 사귀는 사실을 이를 거라고 대드는 장면에서는 언니가 앉아있고 세영이 일어나 있지만, 옷장에 딱 붙어 있는 세영의 모습은 다른 장면들과 마찬가지로 세영의 위축된 심리를 보여준다. 학교에서도 세영은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외로워 보인다. 세영이 친구들을 바라볼 때는 앵글이 세영의 어깨만 걸고 여러 명의 친구를 비추지만, 반대로 세영이 비칠 때는 적어도 두 친구들 어깨를 걸고 혼자 있는 세영의 모습을 비추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적 구성은 관객들을 무의식적으로 세영의 외로움에 빠져들게 만든다.

감정을 전달하는 세 번째 방법, ‘미술’

▲ 인물을 둘러싼 배경과 사물은 영화 전체 분위기를 좌우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세영이 혼자 책상에 앉아 심심함을 달래줄 장난감을 찾는 장면이다. ⓒ 김현정

다음은 소품의 배치와 배경의 활용이다. 영화가 1998년 배경이라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물건들이 소품으로 등장한다. 신발주머니, HOT 포스터, 생활의 길잡이 교과서, 만화 ‘카드 캡터 체리’, 꾀돌이과자 등은 과거와 현재를 교묘히 오가는 사물들이다. 이런 소품들을 한 화면 안 곳곳에 배치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살린다. 영화의 주 공간인 집과 학교는 어린 세영의 자아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데, 집에서 학교 사이에 기찻길이 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꽤 멀다는 뜻이다. 그 길을 처음에는 언니와, 다음에는 혼자 다닌다. 이런 배경의 변화도 세영의 외로운 심리를 보여주려는 방법이다.

감정을 전달하는 네 번째 방법, ‘음악’

▲ 배경 음악과 현장 소리는 인물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다. 세영이 걸스카우트 입회를 끝내 신청하지 못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 김현정

이 영화에서 특이한 점은 배경음악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에서도, 혼자 생각에 빠진 장면에서도, 그 어디에도 음악이 없다. 보통 외로움을 표현하는 가장 흔한 기법의 하나가 슬픈 음악 또는 역설적으로 밝은 음악을 삽입하는 것인데,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없다. 왜 그럴까? 음악을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세영의 복잡한 심리를 더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외로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감독은 하지 않았을까? 영화에선 배경음악이 없는 대신 현장 소리를 더욱 살렸다. 문소리, 기차 소리, 동전 소리까지. 이러한 현장 소리가 사춘기 소녀의 섬세한 심리를 더 잘 드러낸다.

공감의 매체, ‘영화’

▲ 영화는 공감의 매체다. 다양한 기법을 통해 우리에게 감정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 Pixabay

영화 ‘나만 없는 집’은 감독 개인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이 느끼는 ‘군중 속의 외로움’에 관한 얘기다.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지만, 우리는 내 마음의 공간에 아늑한 집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무한 경쟁 사회에 접어들며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경계하게 되고 질투를 느끼는 우리의 모습은 영화 속 세영과 많이 닮아있다. 영화 속 세영의 심리에 우리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감독은 세영이 가진 ‘외로움’을 보여주기 위해 미장센을 중요하게 여겼다. 어떤 화려한 액션이나 CG, 나아가 배경음악조차 쓰지 않아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영화에 다양한 미장센을 활용해 시각적 풍부함을 주었다. 그러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요 메시지는 ‘감정’이고 그 표현 방법은 이미지다. 텍스트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화를 통해 훨씬 더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 그러한 감정을 바탕으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매체, 그것이 영화다. 아마추어 연기자들과 작업하며 독특한 영상의 순수성을 지켜나갔던 프랑스 영화감독 로버트 브레송은 “나는 사람들이 내 영화를 이해하기 전에 내 영화를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베니스영화제, 칸영화제 등 국제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감독이다.

브레송처럼 김현정 감독도 관객으로 하여금 이해하기보다 주인공의 심정을 느끼고 공감하게 만들었다. 공감력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준다. 감독은 빛, 구도, 미술, 음악 등 세부적 요소의 세심한 배치를 통해 이를 실현했다.


편집 : 반수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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