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의 통계이야기] ③

▲ 이재형 박사

요즘 젊은이들은 아마 ‘평화선’(平和線)이나 ‘리버티 뉴스’(liberty news)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을 거다. 60대 중반은 넘어야 ‘맞아, 어릴 때 그런 게 있었지’ 하고 옛 기억을 되살릴 것이다. 평화선은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일종의 영해 경계선이라 할 수 있는 해역선(海域線)으로 선포해 ‘이승만 라인’이라고도 불렸다. 사실상 영해경계선을 국토에서 60해리로 거의 30배나 확장한 것이다.

명분은 한국 해양자원을 보호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어로 장비와 기술에 현격한 차이가 있어 일본 어선들이 우리 영해 근처 공해까지 와서 고기를 잡았는데 이를 막기 위한 거였다. 냉정하게 보면 평화선은 국제법을 무시한 초법적 조처였다.

평화 못 지킨 평화선, 일본 어선 나포하며 어민 40명 죽었지만…

일본이 평화선을 순순히 인정할 리가 없었다. 일본 어선들은 수시로 평화선을 침범해 고기를 잡았고, 우리나라는 이들 일본어선을 나포했다. 이 과정에서 사망한 일본 어민도 40명에 이르렀다. 나포된 배들은 압수하여 돌려주지 않았고 체포된 일본 어민들은 모두 투옥했다. 일본 쪽에서 봤을 때는 우리 처사가 마치 해적처럼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196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뉴스 매체라고는 신문과 라디오가 고작이었는데, 평화선을 침범한 일본 어선 나포 소식은 요즘 서해를 침범한 중국어선 나포 소식보다 더욱 자주 보도됐다. TV도 없던 시절이라 국민이 접할 수 있는 영상 뉴스매체가 바로 <리버티 뉴스>와 <대한뉴스>였다. <리버티 뉴스>는 미군 공보관에서 만들었고, <대한뉴스>는 우리 정부에서 제작했다. 두 뉴스 모두 극장에서 본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상영됐다. 내용은 대체로 비슷해 국정홍보나 반공과 관련한 게 많았다. 당시는 미군 장비가 우수해 <리버티 뉴스>가 <대한뉴스>를 압도했다. 보신각 종을 타종하는 장면부터 시작되는 <리버티 뉴스>의 단골 메뉴가 평화선을 침범한 일본 어선 나포 소식이었다.

대구가 고향인 필자는 당시 변두리 재재개봉관에 가끔 영화를 보러 갔는데, 개봉관을 일류극장, 재개봉관을 이류극장, 재재개봉관을 삼류극장이라 불렀다. 삼류극장에 가면 영화 상영이 한 회 끝나고 30분 정도 빈 화면을 보면서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다. 그때 동네 금은방, 시계점, 양장점, 양복점 등의 광고가 한참 나오고, 소주, 부채표 활명수, 영진구론산 등 전국 광고가 이어진 뒤 마지막으로 <리버티 뉴스>가 상영됐다. <리버티 뉴스>가 나오는 것은 곧 본영화가 상영된다는 의미여서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한국 어민 기존어장도 내준 신한일어업협정

우리는 평화선이 뭔지 잘 몰랐지만 이를 침범한 일본 어선을 ‘나쁜 놈들’로 교육받았기에 어쩌다 <리버티 뉴스>에서 일본어선을 나포하는 영상이 상영되면, 모두 박수를 치고 좋아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인접국이다 보니 해양 분쟁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국제법과 충돌하는 평화선은 국제적으로도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면서 1965년 6월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하고, 우리나라는 평화선을 폐기했다. 이후 두 나라 어민들은 한일어업협정에 따라 정해진 구역에서 어로활동을 해왔다. 그러다가 1996년 일본이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선포하고, 기존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종료하면서 새로운 어업협정의 체결이 필요해졌다. 이른바 신한일어업협정이다.

▲ 1998년 9월 한국은 일본과 수차례 회담을 거쳐 신한일어업협정을 타결했지만, 쌍끌이 어업에 관한 잘못된 통계자료를 갖고 협상을 하면서 쌍끌이 조업권을 많이 내주게 됐다. ⓒ pixabay

국가간 협상에서 협상대표들은 자기 나라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두 국가간 쌍무협상은 제로섬 게임과 같아서 한 쪽이 더 많은 이익을 챙기면 다른 쪽은 그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자료를 철저히 챙겨야 하고, 객관적 자료를 통해 자기 나라 이익을 관철시켜야 한다. 국가간 협상은 ‘힘의 전쟁’일 수도 있지만, ‘논리의 전쟁’일 수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객관적 자료의 전쟁’이다. 협정은 대체로 현재 상태가 중요 기준점이 된다. 현재 상태를 기준으로 조금씩 이해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협상이 진행되는 것이다. 현재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협상단에게는 협상의 출발점이나 다름없다. 1998년 9월 한국은 일본과 수차례 회담을 거쳐 신한일어업협정을 타결했다.

터무니없이 적게 조사된 기존 어업통계가 화근

신한일어업협정의 내용이 알려지자 우리 어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쌍끌이 어업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쌍끌이 어업이란 배 두 척이 그물 양쪽을 끌고 가면서 고기를 잡는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어선들이 일본 어로지역에서 합법적인 쌍끌이 어업을 해왔는데 이것이 졸지에 불가능해진 것이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했을까? 신한일어업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서는 한일 양국의 기존 어획량 등을 토대로 협의를 진행했다. 서로 기득권을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 부분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우리 협상단이 쌍끌이 어업에 관한 잘못된 통계자료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 통계로 쌍끌이 조업은 현실보다 매우 적게 조사돼 있었고, 이런 통계자료를 토대로 협상을 했기에 쌍끌이 조업권을 많이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확인된 건 아니지만 일본 쪽은 별도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쌍끌이 조업 관련 자료를 우리 대표단보다 훨씬 정확하게 파악하고 협상에 임했다고 한다.

우리 대표단이 내미는 자료를 보고 일본 대표단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100을 주려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죽어도 10은 받아야겠다”고 나오니 얼마나 좋았을까? 졸지에 생활 터전을 잃게 된 쌍끌이 어민들은 신한일어업협정에 격렬히 반대했고,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일본에 재협상을 요청했다. 일본에서 순순히 재협상을 받아줄 리는 없었고, 사정사정한 끝에 일본이 선심 쓰듯 재협상에 응했으니 결과는 뻔했다.

어리석은 협상전략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

모든 거래나 협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전략은 ‘이것만은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는 전략이다. 협상력은 협상단의 운신 폭이 넓을 때 가장 강력해지고 좁을수록 작아질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라도 포기할 수 있는 협상단이 오히려 가장 강력한 협상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대외 통상교섭에서 ‘농산물만은 꼭 지켜야 한다’, ‘쌀만은 꼭 지켜야 한다’는 등의 강력한 국내 여론을 업고 협상에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우리 교섭단의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될 수 있었다. 상대방은 한국의 농산물 방어 요청을 들어주는 대신 그 몇 배 되는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여론이 통상교섭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이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한번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민들 반대에 떠밀려 재협상을 한 결과 우리는 80척의 쌍끌이 어업권을 추가로 확보하는 데 그쳤다. 재협상은 시작부터 우리가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었다. 우리나라는 쌍끌이 어업을 추가로 확보하는 대신 일본에 더 큰 것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쌍끌이 어업 협상은 이후 두고두고 국가 망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가 망신의 뒷면에는 바로 쌍끌이 어업 실태를 파악하지 못한 통계부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획량 작게 응답한 어민들도 ‘자업자득’

어업통계의 부실은 누구의 잘못인가? 우선 어업통계를 작성하는 정부의 잘못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어업통계 작성기관의 허술한 통계작성 방식에 문제가 있었지만, 조사대상자인 어민의 잘못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업통계 조사에서 응답자인 어민들이 통계조사에 정확히 응답하면 혹시 소득이 노출되어 세금 등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해 실제 어획량보다 훨씬 작게 응답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수산행정 일선 공무원들은 쌍끌이 어업 실태를 파악하고 있었을 터이고, 협상단이 일선 수산행정 공무원들 의견만이라도 제대로 수렴했더라면 이러한 참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2007년에 삼성의 태안 원유 유출 사고가 일어났다. 유조선과 해상크레인이 충돌해 원유가 유출돼 국내에서는 가장 심각한 해양오염 사고였다. 이에 따라 이 지역 어민들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어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문제는 피해액 산정이었다.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가구마다 입은 피해액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런데 피해가구 중에 어업통계 조사대상 가구가 있었는데, 이들은 어업통계 조사 때 응답한 내용을 피해액 입증 증거로 내놓았다. 통계조사에 성실히 응답하면 이런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공론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론장이 건전해지려면 객관적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게 통계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도 여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도 통계 왜곡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은 통계 해석을 잘못하면 ‘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지만 잘하면 ‘해석특종’을 할 수 있다. 통계전문가인 이재형 박사가 통계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는 그는 <국가통계시스템발전방안>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등 많은 연구와 저술을 해왔고 통계청 통계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편집 :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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