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의 통계 이야기] ②

▲ 이재형 박사

예수 그리스도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갈릴리에서 살았는데,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도중에 예수를 낳았다.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임산부가 장기간 여행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임산부 우대석도 없던 시대에 왜 마리아는 만삭의 몸으로 예루살렘까지 긴 여행을 했을까?

로마의 인구조사 법령, 만삭의 마리아를 길 떠나게 하다

바로 인구센서스에 응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로마는 국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인구를 비롯한 여러 조사를 했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 인구통계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이기에 현대에 와서는 거의 모든 국가가 인구센서스를 시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구·주택총조사’란 이름으로 5년마다, 연도 끝자리가 0, 5인 해에 인구센서스를 실시한다.

지금은 대부분 나라에서 인구센서스를 할 때 조사원이 직접 집집마다 방문하여 조사하거나 조사대상자가 우편물이나 인터넷 등으로 응답할 수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당시 로마에서 인구조사는 모두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서 받도록 강제하였다. 조사대상자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극히 조사자, 곧 국가의 편의대로 조사했다. 요즘 이랬다간 난리가 날 거고, 조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주였으며, 속주 주민들도 모두 센서스의 대상이었다. 그 때문에 마리아는 만삭의 몸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고, 도중에 예수를 낳은 것이다. 만약 로마가 인구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마리아는 예루살렘으로 갈 이유가 없었을 테니 갈릴리의 집에서 편하게 예수를 낳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기독교는 지금과 좀 다른 종교가 됐을지도 모른다. 동방박사 이야기도 없을 테고, 편안한 집에서 태어난 예수라면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주는 감동이 덜하지 않았을까? 지난번 ‘다윗의 일화’에서 보았듯이 기독교 문화에서는 인구조사를 아주 금기시했는데, 이때는 아직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아니었기에 이런 통계조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바뀌고 나서는 인구조사가 사라졌다.

▲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이 그린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아래쪽 가운데 푸른 망토를 걸치고 당나귀를 탄 여성이 인구조사를 받으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도중 베들레헴에 도착한 마리아. ⓒ 왕립미술관, 안트웨르펜

센서스는 ‘주민등록담당관’ 센서(Censor)에서 유래

로마에는 요즘 우리나라로 치면 주민등록 담당 공무원이 있었는데, 이들을 ‘센서’(censor)라 불렀다. 이들은 시민의 등록뿐 아니라 재산과 소득의 평가, 세금 사정 같은 업무를 수행했다. 나중에는 주로 검열관의 의미가 두드러지게 된다. ‘센서스’(census)는 ‘센서’란 말에서 유래했는데, 오늘날에는 조사대상 전수에 대한 통계조사를 의미하게 됐다. 센서스의 역사는 매우 길어, 바빌로니아에서는 5천년 전에 재정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했고, 같은 무렵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 건설을 위해 인구조사를 했다. 우리나라도 2천년 전인 삼한시대에 인구조사를 했다고 한다.

센서스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구센서스이고, 우리나라에는 경제센서스, 농업센서스 등이 있다. 센서스는 그 나라에 있는 모든 사람이나 모든 기업을 조사해야 하기에 조사가 보통 일이 아니다. 남한 인구가 5천만을 넘었는데 이들을 다 조사하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할까? 한 조사원이 50명을 조사한다면 100만, 500명을 조사한다면 10만의 조사인력이 필요하다(실제로는 가구단위로 조사가 이루어진다). 미국에서는 인구센서스가 있는 해에 실업률이 확 내려간다고 한다. 조사원 취업자가 워낙 많아서다.

이러니 인구센서스를 하는 데는 보통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인구센서스를 실시한다면 2,500억원 정도 돈이 들 것이라 한다. 인구센서스에 이렇게 많은 돈과 인력이 투자되므로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등록센서스로 변경했다. 등록센서스란 국민 개개인을 직접 조사하지 않고, 주민등록자료, 주택대장 등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수십 종 행정자료로 국민 개인과 주택에 관한 정보를 파악해 인구센서스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 조사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정보도 많아 전체 국민의 20%는 표본조사를 한다. 20%라고 해도 1,000만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센서스 조사원 대부분이 여성인 이유

통계조사는 말이 쉽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조사대상자를 만나는 것부터 힘이 든다. 요즘은 맞벌이 가구, 1인 가구 등이 많아 조사대상자를 만나기가 무척 어렵다. 조사대상자를 만나더라도 응답을 기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조사에 응하면 혹시 무슨 불이익이 생기지나 않을지 걱정하는 이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집안 사정을 알리고 싶지 않은 이도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하나하나 설득해 조사를 하자니 조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인터넷으로 조사하면 간단히 해결되는데 왜 꼭 만나서 조사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지금도 인터넷 조사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터넷에서 소외된 사람도 많고 인터넷을 하더라도 귀찮다고 응답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 인터넷 조사는 아무래도 직접 조사보다 응답의 정확성이 떨어진다.

인구센서스는 보통 가구를 방문하여 조사하기 때문에 조사대상자의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주로 여성이 조사원으로 나선다. 그러면 왜 남의 일을 조사하려고 하느냐고 화내는 사람, 조사원에게 ‘연애하자’고 성희롱하는 사람, 공짜로는 응답 안 해준다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다 있다. 그 중에는 통계조사에 응답했다가 나중에 불이익이 생길까봐 거짓으로 답변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통계응답에 따른 불이익은 단연코 없다. 정부가 가진 많은 자료가 통계청으로 넘어오지만, 통계청의 자료가 다른 기관으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조사대상자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이 원칙이 깨진다면 통계기관은 그날로 끝이다.

독자들도 통계조사가 나오면 성실하게 응답해줬으면 좋겠다. 이것이 다 국가재산이 되고 좋은 정책의 밑거름이 되어 자신에게 혜택이 돌아온다. 특히 사업하는 이들은 통계조사 대상이 되기 쉬운데, 그것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단연코 없다. 설사 통계조사 과정에서 탈세 등 법 위반 사실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그 비밀은 반드시 보호된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공론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론장이 건전해지려면 객관적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게 통계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도 여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도 통계 왜곡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은 통계 해석을 잘못하면 ‘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지만 잘하면 ‘해석특종’을 할 수 있다. 통계전문가인 이재형 박사가 통계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는 그는 <국가통계시스템발전방안>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등 많은 연구와 저술을 해왔고 통계청 통계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편집 :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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