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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극 아니면 상생의 버팀목

기사승인 2018.10.11  1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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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사전] ‘갈등’

   
▲ 최준석

“당신이 생각 없이 남긴 ‘고객의 소리’(VOC)에 몇 명의 인생이 망가졌는지 꼭 기억하길 바라.” 대한항공 회장 일가의 갑질 논란이 세간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4월 즈음 남겨진 댓글이다. 댓글은 땅콩회항 사건이 최초로 공개된 익명 SNS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에 대한 반응이었다.

글 내용은 이렇다. 대한항공 직원 ㄱ씨는 기내식으로 치킨커리를 선택했지만 승무원의 실수로 치킨커리에서 커리가 빠졌다. 식사시간이 끝나고 식판을 수거할 때도 ㄱ씨는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를 발견한 승무원이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봤다. ㄱ씨는 “이걸 보고도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겠느냐”고 답했다. 승무원팀장이 와서 사과를 했으나 ㄱ씨에 따르면 사과의 핵심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럴 수 있다, 이해해라”는 변명이었다. 불쾌함을 느낀 ㄱ씨는 ‘고객의 소리’에 글을 남겼다.

문제는 ㄱ씨가 남긴 ‘고객의 소리’를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이 읽고 해당 직원의 징계를 지시하는 댓글을 달면서 시작됐다.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당시 팀장은 평 승무원으로 강등됐다. ㄱ씨를 담당한 승무원은 진급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이 사건을 접한 네티즌들은 ㄱ씨가 갑질을 한 것이라는 의견, 그리고 승무원과 팀장의 대처가 잘못되었고 ㄱ씨의 불만은 정당한 것이라는 의견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펼쳤다.

진짜 문제는 승무원들에게 내려진 징계가 잘못에 견주어 너무 가혹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고객이 갑질을 한 건지, 승무원들의 대처가 잘못되었는지를 논하기 전에 대기업의 회장이 기분에 따라 징계를 지시하는 게 온당하냐는 논의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간과했다. 그랬다면 ㄱ씨가 갑질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일 필요도, “몇 명의 인생이 망가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치킨커리 사건은 우리 사회가 갑질에 관한 논쟁을 해야 하지만 논의의 틀과 대상이 잘못 선정되면 공허한 논쟁이 되고 만다는 교훈을 남겼다.

   
▲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실수한 승무원에게 '과한' 징계를 함으로써 갈등이 빚어졌다. 대상을 잘못 선택한 싸움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다. ⓒ KBS

대상을 착각한 싸움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층간 소음 문제도 그 중 하나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방음이 안 되는 집이라면 하자 있는 집을 수 억씩 받고 팔아 넘긴 시공사와 싸워야 한다. 층간 소음 분쟁이 살인이 일어날 정도로 심각한데도 이를 제대로 개선하지 않은 정부와 싸우는 길도 있다. 같은 피해자끼리 드잡이할 일이 아니다. 싸울 대상을 명확히 알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갈등은 칡과 등나무의 습성에서 따온 말이다. 큰 나무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이 두 덩굴 식물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무를 감아 오른다. 칡과 등나무가 한 나무에서 만나게 되면 서로 풀 수 없을 정도로 얽히고설킨다고 한다. 두 식물이 꼬일 대로 꼬이면 한쪽 또는 둘 다 고사한다. 갈등 자체를 금기시하던 과거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고사다.

현대에 들어 갈등에 관한 인식이 바뀌었다. 갈등은 집단을 분열시키는 죄악에서 혁신의 필요조건으로 대접받는다. 많은 연구에서 갈등이 없는 정적인 집단은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반면 갈등이 적절히 일어나는 집단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갈등은 한 집단이 역동적으로 살아 숨쉰다는 증거다.

그러나 갈등은 적절한 때와 정확한 대상을 가려 일어나야 한다. 작은 파이를 두고 네 것이 크니, 내 것이 작으니 하며 싸워서는 안 된다. 먹을 입의 수에 견주어 턱없이 적은 파이를 준 이에게 따져야지 같은 ‘을’끼리 다퉈봐야 소득이 없다. 칡과 등나무가 서로 싸우면 둘 다 고사할 수 있지만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면 상생이 가능해진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12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졸업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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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장은미 기자

최준석 danbi@danb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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