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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은 가고 없어도, 6411은 달린다

기사승인 2018.10.07  16: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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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비현장] 구로-개포 새벽 버스, ‘투명인간’ 출근길 동승기

그의 이름은 ‘윤정례’도 아닌 ‘승혜 엄마’도 아닌 ‘남구로 언니’다. 윤정례(74·여·가명)씨는 새벽 4시 15분 남구로역에서 6411번을 탄다. 기점에서 열두 번째 정류장. 그는 ‘운 좋게’ 뒤에서 세 번째 줄에 앉는다. 좌석 앞이 비어 있어 차가 급정거라도 하면 굴러 떨어지기 딱 좋은 자리다. 여기서 타면 버스는 거의 만원이 돼 창가 쪽 자리는 없고 안쪽 자리도 거의 만석이다. 오늘은 마침 한자리가 비어 있어 앉아 간다. 옆에는 버스 출발지인 ‘거리공원에서 탄 언니’가 앉는다.

“오늘따라 보따리가 많네.”

“으응. 이불보따리, (밑에) 까는 거.”

새벽 3시 일어나 출근준비, 버스 출발 15분만에 만원

이렇게 딱 한마디씩만 나눈다. 잠시라도 눈을 더 붙이기 위해서다. 자식 자랑을 늘어놓기에도 남편 흉을 보기에도 짧은 시간, 3분. 윤씨가 버스에 타고나서 곯아떨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오늘은 추석 연휴를 보내고 난 첫날이다. 9월 27일 새벽 4시 20분. 기점을 출발한 지 20분이 되자 버스 안은 쌕쌕하는 숨소리만 들릴 뿐 고요함 속으로 빠져든다.

“6411번 버스가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2단지까지 2시간 정도 걸리는 버스입니다.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 복도 길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바닥에 앉게 되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 아들딸 같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이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줌마들에 의해 청소되고 정비되는 걸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 분들이 그 어려움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쳤지만 이분들이 필요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강물은 아래로 흘러 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대중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이렇게 새벽 출근길에 나서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을 만들어 나가자고, 6년전 진보 정의당 대표를 맡아 수락연설을 하면서 6411번 버스 이야기를 한 노회찬의원. 그는 가고 없어도 6411번 만원 버스는 지금도 변함없이 새벽 출근길을 달린다.

   
▲ 9월 27일 새벽 3시45분. 6411번 버스 기점인 서울 구로구 구로동 가로수공원 정류장 근처. 6411번 버스가 어제 운행을 종료하고 곧 오늘 운행을 시작할 것이란 메시지라도 전하려는 듯 전광판이 밝게 빛나고 있다. ⓒ 반수현

이날 새벽에는 명절 다음 날이라 그런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이야기가 길어진다. 윤씨는 벌써 숨소리가 쌔근쌔근 하지만 근처 두세 사람은 이틀 전 이 버스를 촬영해 간 방송 이야기를 나눈다.

“추석에도 왔더만, JTBC에서.”

“그래야 뉴스거리가 되겄지.”

누군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튼다.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머리가 모이고 고개가 돌아간다. 윤씨는 한번 닫은 눈꺼풀을 열지 않는다. 가만히 듣기만 한다. 보이면 보고 들리면 듣는다. 복작대는 버스 안에서 발 밟힌 누군가가 앙칼지게 짜증을 내도 마찬가지다.

깨워야 일어나는 2, 3년차 ‘신참’들과 달리 윤씨는 내릴 때가 되면 몸이 안다. 버스 안 사람들이 빚어내는 모든 일이 그에게는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다 아는 일상이 돼 있다. 10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 출발 6411번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숏컷에 펌을 한 검은 머리숱, 흰색 바탕에 올망졸망한 꽃들이 그려진 스카프, 다홍색 바람막이에 자줏빛 안경테, 그리고 나이키 운동화.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무엇을 하러 이 새벽에 나가는지,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 발을 피해 물걸레질을 하고, 그들이 밟고 지나간 곳을 또 걸레질하는 사람인 줄 아는 사람은 없다.

“이 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은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닙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윤씨도 노회찬 의원이 6년전 연설에서 말한 ‘이분들’ 중 한 사람이다. ‘6411의 멋쟁이’ 윤정례씨는 남구로역부터 서른여섯 개 정류장을 지나 새벽 5시 7분 버스에서 내려 ㅂ빌딩으로 향한다. 그는 이곳에서 4년째 청소일을 한다. 빌딩 안으로 들어오면 ‘남구로 언니’는 그냥 ‘아주머니’가 된다.

10년간 달라진 게 없어…”새벽 첫차라도 늘렸으면”

청소는 20년 전부터 했다. 하던 장사가 잘 안돼 친구 따라 시작한 일이었다. 6411을 처음 탄 것은 10년 전쯤이다. 그때는 일주일에 닷새 일하고 월급으로 30만 원을 받았다. 조금씩 오른 월급은 3년 전쯤 90만 원이 됐다. 지금은 140만 원이다. 토요일에는 격주로 일하고, 새벽 5시 반에 출근해 오후 3시 반에 일을 마친다.

최저시급으로 계산한 월급이 10년 새 99% 상승할 때 윤씨 월급은 370% 뛰었다. 하지만 윤씨의 월급은 최저월급보다 언제나 적다. 청소일 시작할 때 처음 받기 시작한 월급이 얼마나 적었으면 월급이 네 배 가까이 올라도 아직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걸까? 10년전 2008년 월급 기준 최저임금은 79만원이었는데, 윤씨는 이 최저월급의 38%밖에 안되는 월급을 받았다. 올해 최저 월급은 157만원인데, 그는 이 최저임금의 89%밖에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있다.

윤씨가 새벽 청소를 하는 ㅂ빌딩에서 일하는 사무직 근로자 문시현씨(55··가명)와 비교하면 아예 입을 다물 수가 없다. 36년차 근속자인 문씨는 일주일에 5일, 하루 8시간을 일하고 월급 900만원을 받는다. 윤씨가 6411을 타기 시작한 10년 전에 문씨는 600만 원을 받았다. 10년 전에는 문씨 월급의 20분의 1을 받았지만 지금은 6분의 1은 되니 나아지고 좋아진 것일까?

얼핏 나아진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아진 게 없다. 10년전 월급이 워낙 말이 안 되게 적어 그 후 10년간 조금씩 올라 격차가 줄어든 것일 뿐, 애당초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육체노동의 가치, ‘노인’ 육체노동의 가치, ‘여성’ 노인 육체노동의 가치. 70대 여성 청소부 윤씨의 경우처럼 어떤 ‘수식어’는 붙을수록 노동의 가치를 점점 떨어뜨린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7년을 기준으로 50대 남성 사무직은 평균 한 달에 22일 일하고 547만 원을 받는다. 60세 이상 여성 단순노무직은 22일 일하지만 133만 원을 받는다.

   
▲ 출발한 지 한 시간. 6411이 신반포역에 닿을 때면 아우성은 절정이 된다. 두 손으로 붙잡고도 두 발로 서는 것이 힘겹다. ⓒ 반수현

1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6411 새벽 만원버스를 탔지만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10년 간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더니 윤씨는 단번에 “첫차를 타는 것”이라고 답했다. 몇 년 새 6411을 타는 사람들이 많이 바뀐 것도 ‘첫차 타는 일’이 고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버스 안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들은 앉아 갈 수 있는 전철을 타려고 직장을 옮긴 사람도 많다고 했다.

6411 새벽 승객들은 가냘픈 몸 하나가 유일한 자산이고,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해야 한다. 일터에 가는 시간만이라도 몸이 편해야 한다. 윤씨가 정치인에게 바라는 바도 역시 첫차에 관한 것이다. 그는 “새벽 첫차는 연달아서 세 대가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여간 투표는 열심히 혔어.” 윤씨는 6.13지방선거와 지난 대선, 그리고 지지난 대선 때 모두 투표했다. 그는 “다른 건 몰라도 투표에는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6년 전 노회찬 의원이 6411번 첫차에 탄 사실은 몰랐다고 했다. 이에 버스기사는 “노회찬이 버스를 타고 바뀐 것은 없다”며 “3분 간격 배차는 그전부터 해오던 것”이라고 했다.

   
 
   
▲  선릉을 넘어가면 자리싸움도 고비를 넘긴다. 6년 전쯤 노회찬 의원이 탔던 자리에는 그가 ‘투명인간’이라 부르는 사람이 앉아 있다. ⓒ (상단) '노회찬의 새벽 첫차', (하단) 반수현

6년 전 대선에서 윤씨가 뽑았던 후보 말고 다른 후보가 당선됐다면 사는 게 좀 나아 졌을까? 윤씨가 답했다. “나야 모르지, 정치는….” 남북정상회담으로 떠들썩한 지금 현 정권에는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물었다. “좋은 일 있기만 바라지.” 그 말에 실눈을 뜨고 듣던 옆 사람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노회찬이 더 이상 타볼 수 없는 버스에는 오늘도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 몰려든다. 노회찬이 앉았던 자리인 뒤에서 두 번째 줄에도 쉴 새 없이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강남의 고층 빌딩이 몰려 있는 선릉에 가까워질수록 버스는 사람들을 게워냈다. 반포역에서 10명, 논현동사거리에서 10명, 임피리얼팰리스호텔에서 7명이 내리며 수가 줄었다. 새벽녘부터 일하는 노동자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그보다 더 일찍 일을 시작하는 노동자, 6411번 버스기사는 종점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었다.

   
▲ 다섯 시 반. 종점에 도착한 첫차는 ‘곧 도착’할 다음 차를 기다린다. 잠이 귀한 투명인간들에게 몸이 편한 6411은 언제쯤이면 도착할까. ⓒ 반수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이름도 없이 새벽 4시 만원 버스를 타고 일터로 향하는 ‘투명인간’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정당, 진보정의당이 이들 투명인간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내려가자고 하던 노회찬은 갔다. 이들의 힘든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해보겠다던 그의 꿈도 함께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단한 몸과 마음들을 싣고 구로동 거리공원발 발 6411번은 오늘도 만원인 채 새벽길을 달린다.


편집 : 임지윤 기자

반수현 PD suhyunban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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