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초코빵 케이크

"프랑스 케이크 만원 세일합니다. 50개 한정이에요!"

마트 한 가운데 펼쳐진 매대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케이크 상자가 진열되어있다. 매대 옆에는 유리상자 안에 견본 케이크가 들어있다. 매대 위 현수막에는 'A기업 세일! 프랑스 파티쉐의 레시피로 만든 케이크 단돈 만원, 한정수량 50개’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낭랑한 마트 직원의 목소리에 몰려드는 사람들.

그때 숨을 헉헉대면서 수미가 마트 안으로 들어온다. 머리는 대충 묶어 풀리기 직전이고 아래는 냉장고 바지에 위에는 어울리지 않는 티셔츠를 입어 이상한 꼴이다. 수미는 길을 헤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 사이 사람들은 매대에 있는 상자를 몇 개씩 집어간다. 천장에 달린 현수막을 발견하고 다급하게 매대로 달려가 보지만, 이미 텅 비어있다.

"아이고, 조금만 일찍 오시지...... 오늘이 세일 마지막 날이에요." 직원은 수미를 위아래로 훑더니 안타깝다는 듯 흘려 말한다. "이거는 살 수 없나요? 제가 꼭 케이크를 사야 되는데." 수미는 유리상자 안의 케이크를 가리키며 애원하듯 말한다. "아유, 안돼요. 이거 3일도 더 지난 거라 먹으면 탈날지도 몰라요. 이건 폐기해야 돼. 저기 코너에 베이커리 꺼, 그거 사가요. 그거랑 이거랑 비슷해." 직원은 수미에게 조심스레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말하고 매대를 정리한다. 수미는 망연자실한 듯 자리를 떠난다.

▲ 생일에 흔히 먹는 케이크가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 pxhere

힘없이 걸어가는 수미 옆으로 세련되게 옷을 입은 여성이 카트를 밀고 지나간다. 카트에는 물건들이 가득 담겨 있고, 케이크 상자 4개가 들어있다. 수미는 그 여성의 옷자락을 붙잡고 사정한다. "저기...... 제가 일을 하다 늦었는데, 혹시 하나만 양보해주실 수 없으신가요? 아들이 꼭 먹고 싶어 해서요." "일찍 오셨어야죠. 저도 이거 사려고 계속 기다렸어요." 여성은 수미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지나친다.

형형색색의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진열장 사이에 수미는 초라하게 서 있다. 수미는 실망할 아들 준호를 떠올린다. 7살이 될 때까지 한번도 빵집에서 번듯한 케이크를 사다 주지 못했다. 혼자 준호를 돌보다 보니 아들 생일에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미 형편에 고급 빵집 케이크는 사치였다. 지금까지 5~6천원짜리 조각케이크나 초코빵을 사다줬다. 어린이집 친구들처럼 커다란 케이크를 먹고 싶다는 준호 말에 수미는 가슴이 미어졌다. '프랑스 레시피 케이크 1만원'이라고 적힌 전단지를 보고 식당 일이 끝나자마자 달려왔지만 늦어버렸다.

수미는 베이커리 코너에 있는 케이크를 바라본다. ‘17,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주머니에 있는 현금을 꺼내 본다.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한 장, 오천원짜리 한 장, 백원짜리 동전 세 개가 나온다. 수미는 돈을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는다. 수미 눈에 '초코빵 1+1세일'이 보인다. 수미는 5,000원짜리 초코빵 박스 두 개를 집어 들었다. 박스를 품 안 가득 안고 가는 수미의 발걸음이 무겁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준호의 생일 축하합니다."

준호가 여러 개 초코빵으로 만든 커다란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불어 끈다. 박수를 치면서도 수미는 미안하다. "엄마가 다음에는 꼭 맛있는 케이크 사다 줄게. 어린이집에선 재미있었어?" 준호가 초코빵을 냠냠 씹으며 대답한다. "오늘 친구들이 어린이집에 많이 안 왔어. 아프대. 생일잔치 못 했어." “그래? 아쉬웠겠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수미에게 TV 뉴스 소리가 들린다. "A기업 유제품에서 균이 검출되었습니다. 식약처는 A기업의 유제품으로 만든 케이크, 요거트 등 전 제품을 수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편집 : 반수현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