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스포츠] 피구·격투기·술래잡기 결합한 ‘흥미 만점’ 종목

▲ 지난 8월 24일 자카르타-팔레방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낸 남자 카바디 국가대표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한카바디협회

“영미 워”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때 우리는 ‘영미’라는 이름 하나에 울고 웃었다. 쇼트트랙이나 스피드스케이팅 같은 인기 종목이 아닌 낯선 종목 ‘컬링’에서 은메달을 땄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끝난 자카르타-팔레방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는 손흥민이 출전한 축구 국가대표팀과 병역특혜 논란을 일으킨 야구 대표팀에 온통 시선이 쏠렸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49개 등 모두 177개 메달을 따 종합 3위를 했다. 모두 금메달과 인기종목에 관심을 보일 때 잘 알려지지 않은 종목에서 은메달을 땄다. 종목 이름도 낯선 카바디.

무관심 속에서 아시안게임 은메달 쾌거

카바디는 ‘숨을 참는다’란 뜻의 힌디어다. 수 세기 전부터 인도에서 해왔던 변형 투기 종목으로, 술래잡기와 피구, 격투기가 혼합된 경기다. 옥외에서 하는 경기로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생겨나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지로 퍼졌다. 개인이나 집단이 공격하거나 수비할 때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고안된 경기다. 현재 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중동, 동남아시아, 동아시아에서 활발하게 치러지고 있다.

▲ 7인제 카바디 경기장 규격. ⓒ 황진우

카바디는 두 팀이 공격과 수비로 나뉘어 가로 13m(여자 12m) 세로 10m(여자 8m) 경기장 안에서 경기를 벌인다. 한 팀은 12명으로 구성되고 경기에는 7명이 출전해 전·후반 20분씩 모두 40분 동안 시합을 벌인다.

‘카바디’는 ‘숨 참는다’는 뜻, 숨쉬지 않고 공격

경기는 공격수가 상대진영으로 넘어가 숨을 참은 상태로 상대 팀 선수를 터치하고 자기진영으로 돌아오면 득점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숨을 쉬지 않고’ 터치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 (왼쪽) 레이더는 계속 ‘카바디’를 외쳐야 한다. (오른쪽) 카바디는 신체의 손이나 발을 이용해 안티를 터치할 수 있다. ⓒ 다음 블로그 ‘인천 이야기’

카바디는 먼저 동전을 던져 공수를 정한다. 공격하는 팀은 공격수인 레이더(raider=침입자) 1명을 수비진영으로 보낸다. 레이더는 숨을 멈춘 상태에서 상대 팀 선수들을 터치한 뒤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때 터치당한 수비팀 선수는 경기장 밖으로 나가야 하며, 공격팀은 1점을 얻는다. 레이더는 공격하고 돌아오는 동안 숨을 멈추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카바디’라는 말을 반복해서 빠르게 외쳐야 한다. 공격수가 의도적으로 ‘카바디’를 느리게 외치면 파울이 선언되고 상대 팀에게 1점이 주어진다.

▲ (왼쪽) 안티는 레이더를 제압할 수 있다. (오른쪽) 레이더가 터치 후 중앙선을 넘으면 몸에 닿은 안티 수만큼 득점이 인정된다. ⓒ 다음 블로그 ‘인천 이야기’

반면 수비팀은 침입한 공격자가 터치 뒤 자기 팀으로 무사히 돌아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수비팀은 공격수가 수비수(안티)를 터치하기 전까지는 공격수를 피해 다니고, 터치한 뒤 돌아갈 때는 공격수를 붙잡는 등 적극적으로 저지한다. 수비팀의 봉쇄로 공격자가 숨을 멈춘 상태에서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공격자는 퇴장당하고 수비팀은 1점을 득점한다. 이때 공격자는 숨을 멈추고 있는 동안 터치가 여의치 않을 때는 수비진영의 보크 라인이란 선을 넘었다가 돌아가면 득점 없이 복귀되고 공격권은 상대진영으로 넘어간다.

경기 진행양상을 보면 레이더는 득점을 위해 손이나 발을 이용해 수비팀 안티를 터치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다. 안티는 터치를 피하려고 레이더를 계속 피해 다닌다. 이런 모습이 공 없이 하는 피구와 많이 닮았다.

▲ 2016년 카바디 월드컵에 참가한 남자 국가대표 선수들이 상대팀 레이더를 제압하고 있다. ⓒ 대한카바디협회

경기는 공격수가 수비수인 안티를 터치한 뒤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는 장면부터 격해진다. 수비팀이 공격수의 귀환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도망가는 공격수를 붙잡고 몸싸움이 벌어진다. 몸싸움 끝에 레이더가 잡히면 수비팀이 1점을 얻지만, 반대로 공격수가 자기 진영으로 무사히 복귀하거나 레이더의 신체 일부라도 중앙선을 넘어 자기 진영에 있게 되면 레이더의 몸에 닿았던 수비수는 모두 아웃되고 그 수만큼 공격팀의 득점이 인정된다. 수비수인 안티가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레이더를 잡는 모습이 마치 술래잡기 같고 선수 간에 격한 몸싸움도 벌어져 관중들에게는 격투기로 보일 수 있다.

▲ (왼쪽) 안티가 6명 이상일 때 레이더가 보크 라인 뒤에 보너스 라인을 터치하면 1점이 가산된다. (오른쪽) 레이더에 의해 안티가 모두 아웃되면 ‘로나’라 하고 2점이 가산된다. ⓒ 다음 블로그 ‘인천 이야기’

안티가 6명 이상 남은 팀이 너무 수비적으로 경기를 하면 레이더는 보너스 라인 안쪽을 밟아 1점을 획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레이더가 아웃이 되더라도 득점이 인정된다. 경기중 한 팀 선수 7명이 모두 아웃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로나’라고 한다. 이때는 상대 팀에 로나점수 2점이 가산되며 아웃된 팀의 선수 모두가 코트로 복귀해 경기가 재개된다. 마지막까지 득점을 계산해 더 높은 득점을 한 팀이 이기게 된다.

카바디도 단순히 터치하고 공격수를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전략·전술을 구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계올림픽 인기종목으로 떠오른 컬링 못지않게 보는 맛이 쏠쏠하다.

아마추어 주축의 ‘무명’ 대표팀

낯설지만 재미있는 경기에 출전해 은메달을 따낸 우리 대표팀 선수들은 은메달 따기 전의 평창올림픽 컬링 선수들보다도 덜 알려진 ‘무명’ 선수들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카바디 남자 국가대표팀은 일부 선수만 외국에서 프로리그를 경험했을 뿐 대부분 아마추어 선수들이다. 이장군(27·벵갈 워리어스) 선수와 고영창(26·동의대) 선수, 이동건(23·동의대) 선수만 인도의 프로리그를 경험했다.

▲ 남자 카바디 국가대표팀 주장 이장군 선수. ⓒ SBS ‘뉴스토리’

한국에는 프로리그나 실업팀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발 과정도 다른 종목과는 달랐다. 다른 종목은 실업팀이나 프로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중에서 대표팀을 선발한다. 하지만 카바디 대표팀은 국내에 프로리그나 실업팀이 없어 별도로 협회에서 ‘한국선수권대회’ 등을 개최해 현재 국가대표팀과 상비군, 대학팀을 참가시켜 입상한 팀에서 선수를 차출했다. 대학팀은 동아리 수준 팀이고 카바디 프로팀이나 선수는 국내에는 없다.

국내에 프로팀은 물론 실업팀조차 없다 보니 선수들은 각자 생업이 따로 있고 저녁이나 주말에 부산에서 모여 훈련을 한다. 부산에서 훈련하는 이유도 부산에만 훈련할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카바디협회 관계자는 지난 19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 국내에는 남·여 대표팀이 있는데 소규모 반코트 정도의 훈련시설만 있다”며 “훈련 때는 동아대와 협약을 맺어 수업이 없는 날 유도장을 훈련장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의 진천선수촌에는 카바디 훈련장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입촌 훈련을 할 수 없다. 카바디 협회 재정으로는 자체 훈련장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선수들이 스스로 훈련하고 노력해서 카바디라는 생소한 종목에 도전해 은메달에 빛나는 결실을 이뤄낸 것이다.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채택

카바디 종목과 관련된 국제경기연맹으로는 1978년 아시아 아마추어 카바디 연맹(Asian Amatuer Kabaddi Fedeation: AAKF)이 설립됐다. 1980년에는 제1회 아시아 카바디 선수권 대회가 인도에서 열렸다. 2004년 11월 인도 뭄바이에서 제1회 월드컵이 열렸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했지만, 올림픽에서는 아직 채택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조직위원회가 인도 카바디 협회와 AAKF를 접촉한 것이 첫 만남이다. 부산아시안게임 기간 중 열린 AAKF 총회에서 우리나라가 가입을 신청함으로써 정식가맹국이 되었다. 부산의 여러 대학에서 카바디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2003년 12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해 4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였다.

2004년과 2007년에 개최한 제1회, 제2회 월드컵 카바디에 참가했다. 여자국가대표는 2008년 제1회 아시아 비치 경기대회에 참가해 동메달을 땄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남·여 대표팀이 동반 첫 출전했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국가대표팀이 처음으로 동메달을 땄다.

▲ 지난 8월 23일 자카르타-팔레방 아시안게임 4강전 경기에서 우리나라 남자 국가대표팀이 파키스탄의 레이더를 막고 있다. ⓒ 대한카바디협회

국제카바디연맹(Internation Kabaddi Federation: IKF)은 올림픽 종목 채택을 위해 노력 중이다. 전 세계에 카바디 보급을 위해 스타 스포츠 TV(Star Sports TV)와 협약하여 2014년부터 종주국인 인도에서 현지 선수들과 국외 용병선수로 8개의 프로구단을 구성하여 1개월간 프로카바디리그(Pro Kabaddi League: PKL)를 시작했다. 그 후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크리켓의 시청률을 뛰어넘으면서 본격적인 Star Sports의 관심과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4개 구단이 더 생겨나면서 12개의 구단으로 3개월간 시즌이 열리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카바디연맹과 아랍카바디연맹이 결성되고, 2018년 파키스탄에서도 프로리그를 시작하면서 프로화가 진행되고 있다. 대한카바디협회 관계자는 “인도와 이란은 벌써 프로팀이 있다”며 “우리도 전국체전 정식종목 채택 등으로 실업팀을 양성하고 카바디가 프로 경기로 발전할 수 있도록 환경조성을 해나가는 것이 중장기 목표”라고 말했다.


편집 :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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