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다시 불붙는 군 장병 외출·외박 제한 논란

▲ 정부는 지난 9월 11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국방부가 '최근 30년간 시행 사례가 없는 등 실효성이 작고 위헌 소지가 많다'며 상정한 위수령 폐지령안을 의결했다. 위수령은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국회 동의 없이 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어 군사독재 잔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 YTN

‘위수령 폐지면 위수지역 폐지도 당연(히) 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 복무하는 군인의 인권보다 지역경제를 생각하는 것은 범주에 어긋난다. 턱없이 비싼 물가를 유지하고 있는 지역경제를 위해 군 장병이 희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상위법이 폐지된 이상 하위법도 개정해야 한다. (중략) 이에 위수지역도 폐지해야 함을 청원한다.’ 

“위수령 폐지면 외출∙외박 지역 제한도 폐지해야”

지난 9월 11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위수령 폐지령안이 의결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위수지역 폐지 청원이 올라왔다. 지난 2월 국방부가 군적폐청산위원회 권고로 위수지역 폐지 방침을 발표했다가, 접경지역 주민들 반발로 흐지부지됐던 위수지역 폐지 목소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위수령 폐지 직후, 군 장병들의 외출∙외박 제한 지역인 위수지역 폐지 청원이 앞에 소개한 것을 포함해 세 건 올라왔다.

“공군 해군에는 없는 육군 전방 위수지역 폐지를 청원 드립니다. (중략) 위수령도 폐지하셨는데 위수지역 폐지, 적극 청원 드립니다.”

“육군 부대가 한 지역에 계속 주둔하면서 그 지역의 경비, 군대 질서 및 군기 감시와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된 대통령령이었던 위수령이 폐지됨에 따라 관할구역을 담당하여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조성되었던 위수지역 역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위수지역 폐지 청원에는 추석 연휴가 시작된 22일 현재까지 첫 번째 청원에 43명, 두 번째 청원에 14명, 세 번째 청원에 20명 등 모두 77명이 참여하는 등 동참자가 늘고 있다.

▲ 위수령 폐지 소식이 알려지자 군 복무를 마친 남성들을 중심으로 올해 초 존치 논란이 있었던 위수지역 폐지 의견이 다시 일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청원 3건이 올라온 상태고, 동참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 청와대 홈페이지

위수령 폐지에 따른 위수지역 폐지 요구에 국방부는 “위수령과 위수지역 폐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가 이번에 폐지한 위수령은 이승만정권 시절인 1950년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것으로, 군부대가 주둔지역을 중심으로 한 위수지역에서 유사시 치안 유지를 위해 군부대를 동원하기 위한 근거로 제정된 것이란 설명이다. 

‘위수지역’은 위수령에 규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제 60조, 곧 ‘외출 및 외박 구역은 그 부대의 임무와 상황에 따라 지역적 또는 시간적 제한을 고려하여 지휘관이 정한다’는 규정에 근거한 ‘외출외박 제한 지역’이란 것이다.  

하지만 위수지역 폐지를 권고한 군적폐청산위원회나 군 장병, 그리고 군복무를 마친 이들은 “위수지역이 위수령과 전연 무관한 것만은 아니다”며 “위수령 폐지를 계기로 흐지부지되고 있는 위수지역 문제를 다시 공론화해 빨리 폐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수령 폐지로 유사시 대비 명분 소멸”

강원도 화천에 있는 부대에서 복무하고 최근 전역한 ㄱ씨(22)는 “순간적으로 위수지역과 위수령이 헷갈렸지만, 두 가지가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다”며 “위수령과 위수지역 모두 시대착오적 제도이니 위수지역도 차제에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병들의 외출∙외박 제한 조처가 위수령에 근거한 것은 아니지만, 위수령 폐지로 장병들의 외출∙외박 지역을 위수지역 내로 묶어 놓은 근거가 되는 ‘유사시 대비’라는 명분이 사라진 만큼 외출∙외박 제한 조처도 동시에 폐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강원도 양구에서 군 복무를 한 ㅈ씨는 “교통과 통신이 어려운 시절 장병들의 긴급 소집을 위해 외출∙외박 지역을 제한했던 것인데, 위수령 폐지로 병사들을 급하게 복귀시켜야 할 명분이 사라진 만큼 위수지역은 즉각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군적폐청산위 관계자는 “군복무기본법 시행령 제38조는 외출∙외박 지역 제한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등의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며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한 위수령까지 폐지돼 이제 군 장병들의 외출∙외박 제한 조처의 근거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군적폐청산위 다른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국방개혁 2.0은 장병들이 최적의 병영 생활을 영위하면서 온전하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그런 점에서도 위수지역은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6월 국방부 고위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도 지역 상인이나 주민들의 소리만 들을 게 아니라 장병들의 의견을 반드시 함께 듣고 그들 입장에서 이 문제를 처리하라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지휘관이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외출∙외박

이 관계자는 또 “사실 군 장병 외출∙외박 지역 제한 문제는 정책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군부대 지휘관들의 운영 문제”라며 “지금도 부대 지휘관들의 판단과 결정으로 외출∙외박 지역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병들의 외출∙외박 지역 제한 조처의 근거가 되는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제60조는 ‘부대원의 휴가·외박·외출 시 이동지역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은 해당 부대의 장성급 지휘관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훈령에는 ‘신병격려 외출외박 및 성과제 외출∙외박은 개인별 여건을 고려하여 자가(집) 등에 다녀올 수 있도록 지역을 확대하여 허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 만큼 국방부 방침에 관계없이 지금도 위수지역 바깥으로의 외출∙외박이 가능하다. 군적폐청산위 관계자는 “지금 우리 군은 주말뿐 아니라 평일 외출제도도 도입돼 있는 만큼 외출·외박 시 지역 제한 없이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방식으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방부 “의견수렴 후 12월 최종 결정”

▲ 전방지역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유사시 대비’라는 명분으로 한 외출·외박 제한령에 묶여 위수지역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사진은 지난 4월 강원도 양구군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 외출·외박을 나온 장병들이 몰려 서있는 모습. ⓒ 유선희

국방부 관계자는 “군 대비 태세가 가장 중요한 만큼 거기에 중점을 두고 장병기본권, 지역 상생 등을 고려해 개선방안을 강구 중”이라며 “오는 10월 유관부처와 지자체, 주민 대표들을 만나 의견수렴을 한 뒤 12월에 최종 결정을 내리려 한다”고 밝혔다.


편집 : 조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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