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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뫼의 눈물’ 딛고 첨단 친환경 도시로

기사승인 2018.09.20  23: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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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㉗ 스웨덴의 경험 (하)

스웨덴의 서남단, 외레순 해협을 사이에 두고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마주 보고 있는 항구도시 말뫼(Malmö)는 지난 2007년 유엔환경계획(UNEP)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한 곳이다. 쾌적한 주거환경,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활비가 매력적이어서 코펜하겐에서 일하는 덴마크 청년들도 이곳에서 출퇴근하려고 몰려온다. 그래서 약 40만 인구의 절반가량이 35세 이하의 젊은이들이다. 재생에너지·정보통신·생명공학 등 첨단 산업단지의 벤처기업인들과 말뫼대학의 연구진, 학생 등이 만들어내는 이 도시의 활기는 절망적 쇠락의 아픔을 딛고 얻은 것이기에 더욱 값있게 보인다. 

현대중공업이 ‘단돈 1달러’에 산 골리앗 크레인 

1980년대까지 조선업의 세계적 강자였던 이곳 기업 ‘코쿰스’가 경쟁력을 잃고 문을 닫으면서 회사의 상징이던 골리앗 크레인을 한국의 현대중공업에 단 1달러에 팔아넘기게 됐다. 해체와 이동경비를 감당한다는 조건이었다. 2002년 마침내 골리앗 크레인이 해체되고 배에 실려 떠나는 장면은 스웨덴 국영방송이 장송곡과 함께 생중계했다. 일자리를 잃은 조선소 노동자 등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래서 울산 현대중공업에 설치된 골리앗 크레인에 ‘말뫼의 눈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비통하게 크레인을 떠나보낸 말뫼는 그러나 주저앉지 않았다. 시 당국과 주민이 똘똘 뭉쳐 ‘첨단 친환경도시 건설’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이미 스웨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야심만만하게 시작한 ‘화석연료 제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말뫼는 친환경특별지구 지정과 함께 중앙정부로부터 약 350억 원의 재정지원을 받았다. 말뫼시와 민간기업이 협력해서 코쿰스의 크레인이 있던 자리에 친환경 주상복합건물 ‘터닝 토루소’를 올리고, 대학캠퍼스와 벤처단지를 지었다. 해안을 따라 조성한 신규주택단지는 자연과의 조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활용,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분양임대 등의 원칙에 따라 친환경적이고 사회통합적인 마을로 건설됐다.

   
▲ 코쿰스 조선소의 대형 크레인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터닝 토루소’(중앙)와 해안을 따라 조성된 말뫼의 친환경 주택 단지. ⓒ 제정임

인체의 상반신을 90도로 비튼 모양이라고 해서 터닝 토루소(Turning Torso)라는 이름이 붙은 54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은 인근에 조성된 풍력단지와 건물 벽면의 태양광, 옥상의 빗물, 땅 밑 지열 등을 활용하는 재생에너지 건물로도 유명하다. 말뫼시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해안가 신규주택단지인 베스트라 함넨 지구도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인근 바닷가 풍력단지, 건물 옥상과 벽면의 태양열집열판 등 재생에너지원에서 얻는다. 또 건축자재는 단열재를 사용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했고, 모든 가로등은 태양전지로 작동한다. 생활쓰레기는 지역난방에 활용하고 음식물쓰레기는 지하 파이프를 통해 바이오가스 공장으로 보낸다.    

코쿰스 조선소가 문을 닫았을 때 2만8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사람이 떠나는 도시’가 됐던 말뫼였지만 2000년 이후엔 정보기술(IT) 등 첨단산업분야에서 6만3000여 개 일자리가 새로 생기며 ‘사람이 모여드는 도시’가 됐다. 새로 만들어진 기업만 200여 개에 달한다.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메르세데스 벤츠 등 다국적기업은 북유럽 본사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말뫼로 이전했다. 지속가능한 도시개발을 눈으로 확인하려는 ‘생태투어’ 관광객이 꾸준히 늘고, 관련 국제회의도 자주 개최되고 있다.

   
▲ 친환경 주택단지에 조성된 해안길을 따라 여름 햇살을 즐기는 말뫼의 주민들. 단지 내 건물들은 모두 태양광·지열·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고 있다. 말뫼시는 이들 주택을 분양 혹은 임대할 때 노인, 청년, 신혼부부, 장애인 가구에 일정 비율 배정을 의무화하고 분양가와 임대료를 낮게 책정하는 방법으로 사회통합적 마을을 조성했다. ⓒ 제정임

석유에서 원자력, 이제 재생에너지 100%를 향해  

“예전 스웨덴은 난방과 온수에 석유보일러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었습니다. 석유파동 이후, 우리는 원자력발전소와 수력발전소에서 싼 전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운동과 더불어 우리는 원자력을 단계적으로 제거하고 바이오매스 기반 에너지로 대체하고자 했고, 이에 대해 점점 더 많은 논쟁을 벌였습니다.”

벡셰시의 얀 요한손(51) 에너지담당관은 지난 7월 5일 <단비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벡셰와 말뫼 등 세계적 친환경도시를 탄생시킨 스웨덴의 에너지전환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스웨덴 에너지청이 지난 3월 펴낸 ‘스웨덴의 에너지-실상과 수치 2018(Energy in Sweden-Facts and Figures 2018)’ 보고서를 보면, 1970년 가장 큰 공급 비중을 차지한 에너지원은 전체 442테라와트시(TWh) 중 76%를 공급한 석유였다.

그런데 1970년대에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스웨덴이 수입한 원유값은 배럴당 평균 12달러(1976년)에서 37달러(1980년)로 3배 이상 뛰었다. 유전이 없어 석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던 스웨덴으로서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스웨덴 중앙정부는 석유 수입량을 줄였고, 석유의 빈자리는 1970년대 가동을 시작한 원자력이 메웠다. 1972년에서 1985년까지 석유공급량이 317TWh에서 200TWh로 줄어든 반면, 원자력공급량은 4TWh에서 173TWh로 늘어났다.

하지만 곧 원자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일본의 환경·에너지전문가 이이다 데츠나리(59)의 저서 <에너지 민주주의>에 따르면 스웨덴 정부는 1965년부터 건설해 1972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오스카르샴 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총 24기 규모의 원전 건설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1972년 의회에서 당시 산업부 장관이 “현재 국제적으로 인정된 방사성폐기물 최종 처리방법은 없다”고 공식 발언하면서 스웨덴 정치인들 사이에 신규 원전 건설을 둘러싼 논쟁이 시작됐다. 고준위핵폐기물, 즉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1979년 3월 미국에서 스리마일 원전사고가 발생했고, 원전 이슈는 스웨덴 사회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정치권은 결국 1980년 3월 ‘원전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원자로 6기가 가동 중이었고, 신규 원자로 6기 건설을 계획하고 있던 때다. 

국민투표에는 세 가지 선택지가 제시됐다. 온건당이 내놓은 1안은 ‘신규원전 6기 계속 추진(원전용인)’이고 자유당 일부와 사회민주노동당의 2안은 ‘원전 6기를 건설하되, 대체에너지 개발 등 조건 충족(조건부 원전용인)’, 자유당 일부·좌익당·기독교민주당의 3안은 ‘신규 원전 거부, 가동 원전 10년 내 폐쇄(원전 폐지)’였다.

재계와 시민들은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연구모임을 만들고 캠페인을 벌였다. 1안을 지지하는 재계는 ‘사실은행(Fact Bank)’을 만들어 원자력산업을 홍보했고, 노조 중심의 2안 지지파는 ‘2안을 위한 국민위원회’를 조직해 ‘원전은 폐쇄한다, 그러나 이성적으로’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시민단체 중심의 3안 지지파는 원전반대 논리를 담은 ‘반대에 투표를!(Rösta Nej!)’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무려 50만부가 팔렸다. 

   
▲ 스웨덴의 원전 정책 국민투표 당시 시민단체가 중심이 된 3안 지지파가 펴낸 <반대에 투표를! 원자력과 석유를 대체하는 책> 표지. ⓒ Bokbörsen

국민투표로 ‘질서 있는 탈원전’ 결정, 그러나 

투표율 75.7%를 기록한 국민투표의 결과는 1안이 18.9%, 2안이 39.1%, 3안이 38.7%로 ‘질서 있는 탈원전파’가 ‘원전 폐쇄파’를 근소한 표차로 이겼다. 스웨덴 의회는 투표 결과에 따라 1980년 6월 ‘신규 원전 6기를 계획대로 건설하되, 2010년까지는 12기 원자로를 모두 폐로한다’는 결의를 내놓았다. 그러나 2010년을 훌쩍 넘긴 현재 스웨덴의 원자로 12기 중 가동을 멈춘 곳은 바르셰벡 원전 1호(1999년)와 2호(2005년), 오스카르샴 원전 1호(2017년)와 2호(2016년) 등 4기에 불과하다. 의회 결의 후에도 정치권은 ‘원전 수명연장’과 ‘조기폐쇄’를 두고 끊임없이 논쟁했고, 그때마다 세부 정책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민투표에서 못 박은 탈원전 시한인 2010년까지 정치권은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결국 2010년 2월 원자력발전법 개정을 통해 ‘2010년까지 단계적 원전 폐쇄’ 조항은 폐기됐다. 그리고 기존 원전 부지에 노후 원자로를 대체하는 신규 원자로 건설을 허용했다.

스웨덴 연구소(Sweden Institute)가 관리하는 정부 공식 홈페이지(http://www.sweden.se)를 보면 “원자력은 스웨덴 정당을 나누는 논쟁거리로 여전히 남아있다”고 나와 있다. 남은 원자로 8기는 지금도 가동 중이다. 하지만 모든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계획과 1980년 시민들이 투표로 결정한 ‘원자로 12기’ 개수 기준만큼은 변함 없다는 것이 스웨덴 정부의 입장이다. 요한손 담당관은 지난 8월 16일 <단비뉴스>와의 추가 이메일 인터뷰에서 “현재 정부 정책은 모든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은 2040년까지 전력 생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한다는 데 합의했다”며 “남은 원자로들의 기술적, 경제적 폐로 시점을 각각 계산해보면 2020년까지 생산 능력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 1970년부터 2016년까지 스웨덴의 에너지원별 총 에너지 공급량 변화 추이. 80년대 이후 석유 공급은 줄고, 원자력이 비중 있는 공급원으로 자리 잡았으며, 바이오매스의 비중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 스웨덴 에너지청, 박진홍

재생에너지 성장으로 ‘2045년 탄소배출 제로’ 선언 

원자력에 대한 논쟁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스웨덴의 재생에너지 생산은 괄목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력정보 2017(IEA Electricity Information 2017)’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스웨덴의 재생에너지는 전체 전력 생산량 161.961테라와트시(TWh) 중 103.675TWh(64%)를 차지했다. 원자력이 56.348TWh(35%), 석탄이 1.261TWh(1%)로 뒤를 이었다. 재생에너지 중에서는 수력 75.439TWh, 풍력 16.268TWh, 바이오매스 9.016TWh 순으로 전력 생산 비중이 컸다. 

가장 상승세가 가파른 전력원은 풍력이다. 주한스웨덴대사관의 ‘스웨덴 풍력에너지 현황 및 전망(2013)’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스웨덴 정부는 풍력으로 2020년까지 30TWh의 전력을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당시 풍력 생산량은 2TWh에 불과했다. 스웨덴 에너지청은 풍력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기술 개발 프로젝트인 ‘빈드발(Vindval) 프로젝트’에만 3500만크로나(약 42억원)를 지원하는 등 풍력 관련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재정 지원을 했다. 그 결과 풍력 생산량이 2014년 11TWh, 2016년에는 15TWh를 넘어섰다.

석유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활용에 박차를 가하면서 스웨덴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은 세계적인 모범이 되고 있다. 스웨덴은 오는 204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지난 2월 발표했다. 지난 2016년 유럽연합(EU)이 2030년까지 2005년 배출량의 40%까지 줄일 것을 스웨덴에 제시한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목표다. 2005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9.09메가톤(Mt)CO2였던 스웨덴은 이미 10년 만인 2015년 37.07MtCO2로 32.4%를 줄였다. 목표 달성이 가까워져 오자 계획을 더 높게 잡으면서 세계 각국에 ‘분발하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 스웨덴의 이산화탄소배출량은 2005년 49.09메가톤(Mt)CO2에서 2015년 37.07MtCO2로 32.4% 줄었다. 스웨덴은 여기서 나아가 ‘2045년까지 배출량 제로’를 선언했다. ⓒ 국제에너지기구, 박진홍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 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편집자)

① “아이들 미래 위해 원전 말고 안전!”

② '블랙스완' 부인하다 일본도 당했다.

③ 생존배낭 챙겨 두고 ‘쿵’ 소리에도 깜짝

④ 동해안 원전에 쓰나미 덮칠 수도

⑤ 100만 명 ‘7시간 내 대피’ 가능할까

⑥ 사고 은폐, 불량부품에 근무 중 마약도

 사용후핵연료 저장건물 테러 무방비

⑧ ‘핵쓰레기통’ 10만년 묻을 땅 찾아야

⑨ “핵재처리는 원전 수백년 더 짓자는 것”

⑩ “내 손으로 원전 짓고 암 환자 됐소”

⑪ 아이 몸에도 삼중수소, 어른은 암 속출

⑫ ‘173등짜리 공기’에 병드는 한국

⑬ 발암 먼지에 사람도 게도 까맣게 '속병'

⑭ 석탄 함정에 빠진 '세계 4대 기후악당' 

⑮ "일본이 당한 재난, 한국에 닥칠 수도"  

⑯ 끔찍한 재앙 후에도 여전한 ‘거짓말’

 '싼 전기 공급' 매달리다 원전·석탄 중독

⑱ "후쿠시마 7년, 일부 마을 오염 더 증가"

⑲ 잇단 참사에도 원전을 더 짓자는 세력

⑳ 그 기사는 돈 받고 쓴 것이었다

㉑ 돈 풀어 '친원전 이데올로기' 주입

㉒ 폭염·혹한···지금은 '기후붕괴 시대'

㉓ '기후 악당' 한국에 '온난화 징벌' 본격화

㉔ '트럼프 암초'에서 파리협정을 구하라

㉕ EU 탄소 40% 줄일 때 한국 83% 증가

㉖ '화석연료 제로' 밀어붙이는 '주민의 힘'

편집 : 유선희 기자

박진홍 기자 fall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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