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디지털 퍼스트'

▲ 박지영 기자

인간의 이성적 사유는 ‘인과관계’를 기본으로 한다. 대니엘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류는 위험한 환경에서 제한된 정보로 빠르게 결정해야 하는 일을 많이 경험하면서 인과적 사유를 발달시켰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왜’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판단능력을 키우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반면, 디지털 퍼스트 시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빅 데이터는 ‘상관성’을 기본으로 한다.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보들을 분석한다. 빅 데이터는 이용자의 물음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정답’이 아닌 관련성 있는 정보들을 나열해 제시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상관성’에 기반한 빅 데이터의 알고리즘 방식이 ‘인과관계’를 기본으로 한 인간의 이성적이고 날카로운 사유 능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디지털 퍼스트 시대에 저널리즘의 본질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기자의 역량이 더욱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왜’라는 물음은 저널리즘의 시작이다. 사안의 본질을 꿰뚫고 갈등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저널리즘의 본질이라면, ‘왜’라는 물음이 그 본질을 실현할 수 있는 시작점이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기사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이 끊임없이 ‘읽을 만한 기사’들을 찾아 헤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카드뉴스, 인포그래픽, VR 등 볼거리로 가득 찬 기사,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 중에서도 독자들이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며 퍼뜨리는 기사들 대부분은 바로 ‘왜’라는 물음에 충실한 것들이다.

정보성, 속보성 기사들이 쏟아내는 사실들을 맥락에 맞게 재정리하고 사안의 인과관계를 밝혀낸 기사만이 독자에게 인정받는다. 눈에 띄는 기술을 접목하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만든다 하더라도 결국 근본적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기사는 독자의 ‘시간 죽이기’ 소비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인과 관계’에 충실한 저널리즘만이 상관성을 기반으로 한 빅 데이터 시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 인과성보다 상관성의 가치를 강조하는 디지털 퍼스트 시대에 '인과관계'를 기본으로 '왜'라는 물음을 제기하는 저널리즘만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 Pixabay

결국 ‘질문’하지 않는 언론은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단순 속보성 기사, 정부 부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쓴 기사들은 ‘인공지능 로봇’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미 프로야구에 ‘로봇기자’가 등장했다. 보도된 기사를 그대로 받아쓰는 ‘어뷰징 기사’ 또한 인터넷상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다. 기자의 ‘질문’이 없는 기사들은 인터넷 화면 속 빈 공간을 채울 뿐이다.

종이신문이 쇠퇴하는 현실을 두고 ‘언론의 위기’라 말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저널리즘의 본질에 충실한 언론과 언론인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뉴스’의 형태가 다양해질수록 저널리즘은 본질을 향해야 한다. 속보성, 정보성 기사가 아닌 ‘질문’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저널리즘만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대니엘 카너먼은 ‘인과성을 파악하게 되면 부분을 보고 전체와 미래를 예상할 수 있어 경제적 사유와 판단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인과 관계에 충실한 저널리즘만이 디지털 퍼스트 시대에 인간의 이성적 사유 능력을 향상시키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저널리즘의 미래는 여기서 결정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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