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이재형 전 통계개발원장

▲ 이재형 박사

통계청장 교체가 요즘만큼 뜨거운 사회적 논쟁거리로 등장한 적이 없다. 황수경 통계청장 교체를 둘러싸고 연일 공방이 뜨겁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이나 인사들은 최근 경제지표가 나쁘게 나타난 데 책임을 물어 황 청장을 경질했다고 주장한다. 청와대에서는 그런 건 전혀 아니며 정기적인 인사일 뿐이라고 한다. 필자는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른다. 다만 필자가 가진 지식을 토대로 추리해볼 뿐이다.

청와대 설명대로 이번 인사가 정기 인사의 일환이라면 이 문제는 전혀 논쟁거리가 되지 못한다. 굳이 문제를 삼자면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통계청장을 1년이 겨우 지난 시점에서 교체하는 게 타당한가 정도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면 일단 ‘경질성 인사’라고 가정하고 판단해보자.

지난 26일, 청와대의 차관급 인사 단행으로 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13개월 만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통상 차관급 인사를 두고 논란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번 통계청장 인사가 '경질성'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MBC 뉴스데스크

조작’은 전체 통계인을 모독하는 말

먼저 경질 이유가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정부에 불리한 통계지표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통계청장 교체를 통해 정부에 유리한 쪽으로 통계지표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통계작성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안다. 임의로 통계지표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온도계를 아무리 바꾼다 해서 기온이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통계청장 교체로 통계지표를 조작하려 한다는 주장은 우리나라 전체 통계인을 모독하는 말이다. 통계는 마치 블록체인 기술과 같아 조작을 한다면 나중에 반드시 들통이 나게 되어있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통계지표가 나쁘게 나왔기 때문에 경질했다는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정부에 호의적인 사람을 청장에 앉힌다고 해서 경제상황에 변화가 없는데 통계지표가 좋게 나타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또 하나 가능성은 통계지표의 급격한 악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가지 통계기술적 원인에 대해 충분한 검토나 설명, 또는 보완조처가 부족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이는 통계청장에게 일정부분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타워팰리스 주민과 가난한 사람은 접근도 힘든 가계조사

최근에 문제가 된 통계는 가계조사통계이다. 이 통계는 가구를 대상으로 소득과 소비지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묻는 조사인데, 통계 가운데서도 조사가 가장 어려운 부문이다. 이 조사는 시작 이래 가계부조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조사대상 가구로 선정되면, 해당 가구는 3년간 매일 가계부를 써야 한다. 가구의 세세한 수입(소득)은 물론이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더라도 무엇을 얼마나 샀는지 모두 가계부에 꼼꼼히 기록해야 한다. 이렇게 조사된 자료를 바탕으로 매달 가구의 소득과 소비에 관한 통계를 작성한다.

이러니 조사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독자들도 한번 생각해보시라. 통계청에서 찾아와 3년간 매일 꼼꼼히 가계부를 적어서 제출해달라는 데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래서 조사원들이 읍소를 하고, 공식적인 선물도 주면서 조사 협조를 부탁한다. 그런데도 응답률이 점점 낮아지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이전에는 응답률이 90% 가까웠는데 최근에는 80% 근처까지 낮아졌다고 한다.

이 조사는 원래 소득을 파악하자는 게 아니라 소비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이 조사를 바탕으로 물가통계의 가중치를 계산하는 등 다양한 통계를 만든다. 특히 이 통계는 소득불평등을 조사하는 데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소득불평등 통계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부자에서 아주 가난한 사람들까지 골고루 조사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양극단에 있는 가구를 조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타워팰리스처럼 고소득자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조사원들이 접근도 못한다. 또 아주 가난한 사람들, 곧 독거노인, 알바를 하는 1인가구, 소년‧소녀 가장 등은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따라서 아주 부자나 아주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조사는 불충분할 가능성이 있다. 불충분한 양극단의 정보를 토대로 소득불평등 통계를 작성하면 현실의 소득불평등도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측정방법 바뀐 건 설명할 의무 있어

가계조사는 최근 조사에 따른 어려움으로 조사방식을 변경했다. 과거 표본가구를 3년으로 가져가면서 한 가구를 36개월씩 조사하던 것을 조사 때마다 표본을 바꾸어 1회만 조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조사대상자도 과거보다 양극단의 가구를 좀 더 많이 포함시켰다. 우리나라 가계조사가 실시된 이래 50년 이상 지속해오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것이다. 이러한 조사방법 변경은 불가피하게 큰 비표본오차(조사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오차)의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조사방법과 대상이 바뀜에 따라 통계지표의 차이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경우 통계지표의 변화는 사실(fact)의 변화에 의한 변화, 가령 경제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나타난 변화와 측정방법을 바꿨기 때문에 나타난 변화가 뒤섞이게 된다. 통계청은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분석하고, 상세한 관련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통계청이 이 일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라면 일정부분 통계청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통계청이 좀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통계지표 나빴기 때문에 경질? 동의 못 해

여전히 나는 통계청장 교체 원인을 모른다. 다만 통계지표가 나빴기 떄문에 교체되었다는 주장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통계청장 때문에 통계지표가 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서슬퍼런 유신정권에서도 통계조작은 없었다. 다만 일부 정부부처가 통계지표가 좋아지도록 꼼수를 부린 적은 있지만, 통계기관 자체가 의도적으로 거짓 통계를 작성한 적은 없었다. 통계작성 시스템상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장 교체를 둘러싸고 좀 더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언론들도 지금처럼 통계에 뜨거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통계청은 극도로 중립적인 기관이여야 하며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믿는다. 통계청의 중립성은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하지않는 것이다. 주관적 판단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게 통계기관의 임무다.


이재형 박사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대기업정책과 산업정책, 특히 통계제도를 집중 연구해왔고, 정부 통계개발원장과 국가통계위원을 역임했다.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기업집단 내부거래의 평가와 정책대응> <국가통계발전계획> 등을 저술했다.

편집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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