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을 망친 사람들] ③ 김세의 전 MBC 기자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것처럼, 언론인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금언(金言)이다. 판사가 판결이 아닌 다른 언행으로 특정 정치성향이나 사적 이해관계를 노출하면 그 판사가 한 판결의 공정성과 객관성은 물론이고 신뢰성도 무너진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다툼과 옳고 그름을 판정하고 이슈화하는 판사와 기자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크고 엄중하기 때문에 판결이나 기사로만 말하라는 것이다. 언론인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금과옥조(金科玉條)를 아무렇지도 않게 걷어차 버리고 아예 정치인으로 나선 ‘가짜 기자’가 있다.

현직 기자가 내놓고 특정정당 편향 정치활동

지난 6월 6일 자유한국당의 여의도연구원은 ‘북핵과 통일 그리고 북한인권’을 주제로 한 트루만톡 토크쇼를 열었다. 여의도연구원은 행사 포스터를 통해 ‘진실만 말하는 트루만 5인방이 온다’고 했는데, 그런 소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인사가 패널로 참석했다.

▲ 지난 6월 자유한국당 여의도연구원 청년정책센터가 주최한 ‘트루만톡’ 토크쇼에서 김세의 전 MBC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 윤종훈

이날 패널은 이윤정 자유한국당 중앙대학생위원회 위원장, 우원재 자유한국당 부대변인, 2016년 새누리당 중앙청년위원회 청년문화컨텐츠분과위원장을 맡았던 한상윤 작가 등 당직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들과는 전혀 다른 현직 기자가 ‘개인 자격’이란 명분으로 참석했다. 당시 MBC에 재직하던 김세의 기자다.

김 기자는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MBC 기자로 나온 게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나왔다”면서 “(이 자리에 오기 전) 1시에 광화문 태극기집회를 다녀왔다”고 밝혔다. 그는 “태극기집회에도 이곳에 계신 젊은 분들이 많이 나오셔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토크쇼에서 ‘북한 3대 세습 정권은 무너져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종전선언은 막아야 한다’, ‘우파 청년단체, 우파 노동조합, 우파 언론 시민단체가 만들어져야 (좌파 단체들과) 싸울 용기가 생긴다’ 등의 발언을 했다.

기사를 취재하고 쓰는 기자가 아니라 자유한국당 당원이나 당직자보다 더 확실한 자유한국당 편향의 정치인이었다. 그 스스로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MBC 기자 자격으로 나온 게 아니다’라고 강변했지만, 행사성격과 참석한 패널이나 주제는 물론 그 자신의 발언을 보면, 명백한 현직기자의 정치활동이다.

태극기 집회 참석해 ‘빨갱이는 죽여도 돼’ 인증샷

그의 정치 활약상은 이것뿐이 아니다. 기자이면서도 각종 정치집회에 거리낌 없이 참석해 주요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2월 22일에는 최대현 전 아나운서와 함께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등 친박·극우단체 주최로 열린 태극기집회에 참석했다. 당시 MBC 제3노조 공동위원장이었던 그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우리 노조를 알아봐 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라면서 “우리 노조가 굳건히 버티면서 특정 정치세력이 MBC 뉴스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노조위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발언이긴 하지만 그것은 사내 모임이나 노조의 대외활동 등에서 할 이야기이지 정치집회인 태극기 집회에서 할 말은 아니다.

그는 이날 집회에서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팻말을 든 집회참석자와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팻말을 든 사람은 ‘일베 스님’으로 알려진 정한영씨로, 페이스북에 ‘MBC 공정방송노조 농성텐트 격려 방문. 좌 최대현 앵커, 우 김세의 기자. 둘 다 공동위원장”이란 글을 올렸다.

▲ 김세의(오른쪽) MBC 기자가 지난해 2월 서울 상암동 MBC사옥 앞에서 열린 태극기집회에 참석해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고 쓰인 팻말을 든 정한영(가운데)씨, 최대현(왼쪽) MBC 아나운서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정한영 페이스북

기자가 최소한의 균형감각과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지 못하면 그런 기자가 쓴 기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은 보장될 수 없다. MBC 방송강령 제6조 방송제작자 2항은 ‘방송제작자는 방송물을 통해 민주적 여론형성과 평화통일에 이바지해야 하며, 지역간·세대간·계층간·성별간 격차나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팻말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기념촬영을 한 김 기자의 태도를 보면, 그가 기자로서 기본적인 윤리의식도 갖지 않고 있거나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 백남기 농민 유족’, ‘세월호 리본 단 스포츠스타’ 비난

김세의 기자는 각종 정치집회는 물론 SNS를 통해서도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페이스북에 시위 도중 물대포를 맞고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아무개 씨를 비난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그는 백 씨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은 채 “위독한 아버지의 사망 시기가 정해진 상황에서 해외여행지 발리로 놀러 갔다, 사실상 안락사시킨 셈이다”라는 글을 올려 교묘하게 백씨를 비방했다. 백남기 농민 가족의 태도를 비난하면서 유족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희석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MBC 방송강령 제6조 방송제작자 1항은 ‘방송제작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사회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기자가 논란이 된 고인의 사망 원인과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취재를 하거나 관련 기사는 제대로 쓰지 않고 SNS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의심하게 하는 언행을 한 것은 기자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태도다.

▲ 김세의 기자는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김아랑 선수의 헬멧에 새겨진 노란 리본이 올림픽 헌장을 위반하고,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게 아니냐는 주장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 김세의 페이스북

김 기자는 또 지난 2월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쇼트트랙 김아랑 선수 헬멧과 지난해 3월 WBC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한 이대호 선수 글러브에 새겨진 세월호 추모 리본을 두고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적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월 ‘김아랑 선수에게 묻고 싶다, 오로지 4년 전 세월호 침몰에 대한 추모뿐인가, 아니면 박근혜 정부의 책임도 함께 묻기 위함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운동선수가 정치적 표현을 한다고 비난하고 있으나, 거꾸로 그 자신이 기사로는 말하지 않고 SNS를 통해 정치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팩트 왜곡 리포트로 교묘한 정치활동

그의 정치활동은 기자로서 뉴스를 제작하고 리포트하는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그는 지난해 10월 22일 ‘신고리 공론화위 '원전 축소' 권고안… 월권 논란’ 기사를 통해 ‘탈원전정책’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가 중단보다 19%포인트 높았던 결과에 대해서는 '더 높았다'고 말한 공론화위원회가 원전 축소가 원전 유지 또는 확대보다 8%포인트 많아 오차 범위를 간신히 넘겼는데 이를 '훨씬 높았다'고 표현한 것을 놓고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김세의 기자의 리포트만 보면 원전 축소와 확장에 대한 지지율 차이는 ‘겨우’ 8% 포인트 차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당시 언론에 발표된 시민참여단 투표 결과를 보면 신고리원전 건설 재개 의견이 59.5%, 건설 중단이 40.5%였다. 또 원전 축소를 지지하는 비율은 53.2%였고 원전 유지는 35.5%, 원전 확대는 9.7%였다. 그는 원전 축소 의견이 과반수가 넘는 53.2%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고, 원전 유지나 확대에 비해 8%포인트밖에 높지 않다고 함으로써 원전 축소 의견을 애써 줄이거나 묵살하려는 듯한 의도로 리포트를 한 것이다.

▲ 평창특별법 조항을 비판하며 이를 정부가 악용해 공기업을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보도한 김세의 MBC 기자. 평창특별법이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보도하지 않았다. ⓒ MBC

지난해 8월 23일자 기사 ‘한전 등 8백억 후원 약속… 공기업 '팔 비틀기'?’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공기업 압력 행사 의혹을 제기했다. 그 근거로는 평창특별법을 문제 삼았다. 평창특별법의 “조직위는 국가나 공공기관에 재정적 지원 등을 요청할 수 있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조직위의 요청을 따라야 한다”는 조항이다. 김 기자는 그러나 평창특별법이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보도하지 않고, 마치 문재인 정부가 불합리한 평창특별법을 제정해 공기업 팔 비틀기를 한 것처럼 보도했다.

지난해 5월 대선 때 김 기자는 ‘다시 도전한 대권, 다자구도 속 압승 요인은?’이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문재인 후보의 높은 지지율을 분석하는 기사였는데 이 리포트에 문 후보에 비판적인 취재원을 등장시켰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우파 유권자에게) 홍준표 후보는 좀 과격하고 안철수 후보는 좀 못 미덥고, 이러니까 투표장에 안 갔고요. 그래서 문재인 대세론을 오히려 확인시켜준 꼴이 됐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문 후보의 높은 지지율이 적극적 지지라기보다는 차선의 지지라는 점과 많은 보수 유권자들의 기권으로 문 후보 대세론이 굳어지고 있는 것처럼 들리게 하는 리포트다.

▲ 김 기자가 리포트에 등장시킨 신율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후보에 비판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대선 후보를 분석하는 기사에서 편향된 취재원을 활용한 것이다. ⓒ MBC

신 교수는 대학 강의 중 “문재인은 안면인식장애가 있어서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신 교수는 또 “그가 공약한 것을 대부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문재인이 된다고 나라가 바뀔 것 같냐” 등의 발언을 할 만큼 문 후보에 부정적인 인물이다. 김 기자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춰 기사 프레임을 세운 뒤 같은 성향의 취재원을 등장시키는 방법으로 이슈화를 시도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언론인도 정치 성향 가질 수 있지만 정치활동은 금물

기자도 특정한 이념적 정치 성향을 가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자기 주장이나 소신을 칼럼 등으로 쓸 수는 있다. 그러나 특정한 이념적 편향성을 갖고 정치활동을 하게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기자가 기사로 말하지 않고 직접 정치를 하려면 기자를 그만두고 정치권으로 들어가야지 특정 언론사나 매체를 정치활동의 도구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김 기자는 지난 1일 MBC에 사직서를 내고 기자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기자로서 본분을 훼손하는 것이 옳지 않아 그만둔 게 아니라 정치권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사직서를 썼다. 그는 사직서를 낸 뒤 페이스북에 “강용석 변호사와 가로세로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다”며 “비록 시작은 미미하지만 의미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돈벌이 우파, 생계형 우파, 위장 우파, 패션 우파... 이런 우파들과는 철저히 다를 것’이라고도 했다.

김 기자는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건국 70주년 기념식 및 8.15 국가해체세력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오늘부터 제가 자유로운 신분이 됐다, 당당하게 태극기집회에 참석하게 돼 기쁘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이제 내놓고 정치활동을 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자신이 해온 일이 언론활동이 아니라 정치활동을 해온 것임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 강용석 전 국회의원과 김세의 전 MBC 기자가 함께 설립한 연구소 홈페이지. ‘기존 정치권이 드러낸 실망의 정치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정책을 연구한다’고 소개돼 있다. ⓒ 가로세로연구소 홈페이지

그는 MBC사직서 제출 후 <뉴데일리> 인터뷰에서 “누구보다도 MBC를 사랑한다고 자부한다, 아버지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MBC를 동경해왔고, 그렇게 원하던 MBC에 입사해 15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의 부친은 노태우 정권 시절 MBC사장을 지낸 김영수씨다. 박정희 유신정권 아래서 MBC 보도국장을 역임하고 바로 이어 유신독재의 친위세력이었던 유정회(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기자 스스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 부분을 잘 음미해 보면 그가 언론활동을 한 것인지, 정치활동을 한 ‘가짜 기자’였는지 가늠할 단서가 들어 있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 영향권에 있는 매체들이 논조를 180도 바꾸는 사례를 수없이 보면서 시민들은 ‘언제 우리도 BBC 같은 공정한 언론을 갖게 되나’라는 염원을 품어왔다. 사실 언론 독립은 제도의 문제인 동시에 언론인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언론에는 저널리즘의 표준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채 언론인이나 이데올로그 행세를 하면서 언론을 망치거나 출세의 도구로 악용하는 이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기성언론은 비판의식과 윤리의식 부재 또는 동업자의식 때문에 미디어 자체비평과 상호비평을 피하려 한다. 성역 없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가 한국 언론을 망친 이들의 행적과 보도태도를 추적하고 고발하는 장기기획을 시작하는 이유다. (편집자)

편집 : 안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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