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경계선’

▲ 윤연정 기자

‘공간’은 공기처럼 어디에든 존재하지만 인식하기 어렵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배경이 공간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한 동네 살면서 지나쳐 다니다가 어느 날 낯선 공간을 발견하고 ‘여기 이런 데가 있었네’하며 놀란 경험은 누구나 있을 터이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일지라도 우리가 서로 관계를 맺을 때 그곳은 비로소 기억과 경험을 담은 구체적인 ‘장소’가 된다.

장소는 사람들의 삶으로 만들어진 현재다. 사람과 역사가 배제된 공간은 사람이 살아가는 '장소'가 될 수 없다. 방치된 유적지도 발굴되어 박물관이나 전시관으로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될 때 의미있는 ‘장소’로 변신한다. 영국 지리학자 도린 마시는 '장소'를 사회적 관계의 흐름으로 구성된 곳이라 정의했다. 그 장소 내 구성원들에 의해 변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간과 장소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간다.

우리의 ‘장소’는 반세기가 넘도록 비무장지대(DMZ)라는 경계선 남쪽으로 한정돼 왔다. DMZ세계평화공원의 평화콘서트, 임진강 주변 마라톤 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모두 ‘우리’만의 일시적인 축제다. 사람 왕래가 적은 DMZ 경계지역은 물론 넘어갈 수 없는 북측은 우리에게 상상 속 ‘공간’일 뿐이다.

▲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DMZ) 경계선으로 갈라져있던 우리에게는 서로를 인지하고 느낄 수 있는 상호관계의 '장소'가 필요하다. ⓒ 녹색연합

4월 열린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을 이어주는 유일한 ‘장소’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최근 ‘시범적 비무장화’ 논의가 이뤄졌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9월에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이다. 판문점이라는 장소가 평화지대가 되는 것을 시작으로 상호관계가 더 확대될수록 DMZ 경계 공간이 진정한 장소로서 의미를 더하게 될 것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준비되고 있는 남북철도연결사업,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민간 차원의 더 많은 왕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남북한 사람들이 제각각 살고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던 감정들이 이런 만남들을 통해 교감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서로를 인지하고 느낄 수 있는 상호관계의 ‘장소’가 필요한 이유다, 그것이 판문점이든 평양이든 서울이든.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끊임없이 재구성될 때 사람들은 변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느끼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한반도 평화체제를 앞당기는 동력이 될 것이다. 남북한이 DMZ 경계선으로 갈라지는 ‘공간’이 아니라 거기 사는 사람들이 함께 경험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공동의 ‘장소’가 되길 기원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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