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김영미 독립 PD
주제 ① 독립저널리스트로 살아남기

딱 예순까지만 언론인으로 종사하고 다른 직업을 찾겠다는 김영미(48) 독립 PD. 남은 11년간 매년 두 편씩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한 주에 하나씩 기사를 쓰면 언론계를 떠난다고 한다. 1년마다 뇌 MRI 검진을 받는다는 그는 어떤 취재를 했길래 은퇴 설계까지 벌써 마친 걸까?

▲ 김영미 PD는 그리스 선박 엘피다호 선장한테 스텔라데이지호의 필리핀 선원 2명을 구조하는 영상을 얻어냈다. ⓒ 김영미

김영미 PD는 <시사IN> 국제문제 편집위원으로, 작년 3월 31일 우루과이에서 3,000km가량 떨어진 남대서양 한복판에서 발생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한국인 8명과 필리핀인 14명의 선원이 실종된 사고였다. 구조된 이는 필리핀 선원 둘뿐이었다. 사고가 난 뒤, 한국인 실종자 가족은 사라진 선원들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실종자 가족은 청와대 민원을 넣어 추가 수색을 약속받았다. 사고 현장에 수색선 한 척이 긴급 투입되었다.

현장에 사고 원인을 규명해야 할 언론은 없었다. 남대서양 한복판서 벌어진 사건이라 취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취재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PD님이 그곳에 가주시면 안 돼요?" 실종자 가족의 부탁에 김영미 독립 PD만이 현장을 향했다. 작년 9월 11일 시작한 취재는 꼬박 두 달이 걸렸다. 끈질긴 취재 끝에 배가 Y자로 두 동강 나 침몰했다는 정황을 알아냈다. 또 그리스 선박 엘피다호 선장한테 침몰 당시 선원을 구조하는 영상을 얻었다. 올 1월 해양수산부는 블랙박스 수거를 위한 TF팀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움직일 생각이 없던 정부가 행동에 나선 건 김영미 PD가 현장에서 찾은 증거자료 덕분이었다.

세계 80개국을 넘나들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그는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현장의 참혹한 광경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다른 누가 (분쟁현장에) 가준다면 안 가고 싶다"는 그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분쟁이 있는 현장은 생사가 오가는 위험한 곳이다. 주류 언론사가 국제 분쟁 문제에 관해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취재를 꺼리는 동안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그는 분쟁지역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PD도 기자도 누가 시킨 게 아닌 내가 결심한 것

“PD를 시작한 것도 제 선택이에요. 회사가 시켜준 게 아니라, 부모님이 시켜준 게 아니라, 제 선택, 제가 하고 싶으니까 했어요. PD로 일하고 싶으니까 PD로 일하고, 기자도 재미있어서 하겠다는데 누가 말릴까요?”

본업은 피디지만 기자도 겸한다는 그는 자신을 ‘투잡(two-job) 인생’이라고 말한다. SBS 계약직 피디로 일을 시작한 그는 몸이 아파 자리를 비운 선배를 대신해 아침방송에 투입됐다. 그때부터 방송 영상을 제작했는데 그가 만든 영상은 재미도 있고 동료들 반응도 좋았다. 당시 SBS는 예능 PD를 원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던 그는 "조직의 이해관계와 내가 원하는 것이 달라 많이 부딪혔다"고 토로했다. 결국 그는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나와 프리랜서의 길을 택했다.

▲ 김영미 PD가 세명대 저널리즘특강에서 독립 저널리스트로 살아남는 방법과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있다. ⓒ 박경난

저널리스트는 국민과 노예계약 맺은 사람

“제가 전쟁지역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도 안 가서예요. 대한민국 언론사에서 아무도 안 보내기 때문에, 알 권리의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그걸 메우기 위해 가는 거예요.”

‘왜 전쟁지역에 가냐’는 질문에 김영미 PD가 한 대답이다. 그는 저널리스트라면 누구나 ‘노예계약’을 맺고 있다고 말한다. 노예계약의 주인은 국민이고 그 내용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은 저널리스트로서 지켜야만 하는 필수조건이자 존재 가치"라고 말했다. 김 PD가 전쟁지역을 가는 이유를 말하자 “<연합뉴스>나 언론사 국제부에서 외신을 번역해주지 않느냐”는 학생들의 반문이 나왔다. 그는 의사와 저널리스트를 비교했다.

“의사들이 편한 과에만 몰리고 힘든 외과를 꺼리면 의료 혜택에 공백이 생기잖아요. 다리를 다쳤을 때 정형외과가 없으면 치료할 수 없죠. 이때 의료계는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해 올 수 있지만 언론인은 수입이 안 됩니다. 대한민국이 뭘 알고 싶은지는 대한민국 사람이 제일 잘 알기 때문이죠.” 

김 PD는 외신번역 기사가 국민에게 제대로 된 뉴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 AP, 프랑스 AFP, 영국 <로이터>는 모두 국영 통신사다. 그러다 보니 현실과 기사가 다를 때가 많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일으켰다. 미국을 대변하는 AP가 이라크 전쟁의 불합리성이나 인권 사태를 비판적으로 쓸 수 있을까? 한국 주류언론은 그 기사를 그대로 수입해 번역한다. 결국 AP 뉴스를 통해 미국의 눈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외신번역 기사는 '오보'가 많다. 얼마 전 로라 비커 BBC 한국 특파원은 한국 언론에 자신의 기사를 제대로 번역해달라 요구했다. <조선> <동아> 기사를 보면 BBC가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듯 보인다. 문장을 제대로 번역하지 않아 생긴 오류로,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의미다. 김 PD는 한국의 많은 언론이 최소한의 크로스 체킹도 하지 않은 채 잘못된 뉴스를 전달하지만 책임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한국의 언론인 여러분, 제 기사를 정확하게 번역해 주세요. ‘트럼프와 북한의 대화: 21세기 정치적 도박’이라는 제 기사는 보도된 것처럼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익 역사학자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그가 천재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BBC 한국 특파원 로라 비커가 3월 18일 보낸 트윗. 한국 언론의 오역을 지적하고 있다. ⓒ 로라 비커 트위터

정부와 싸우는 걸 즐겨라

“저는 취재 때문에 출국금지 7번 당한 사람이에요. 저널리스트는 정부와 친하면 안 돼요. 정부와 무조건 싸워야 해요.”

김 PD는 저널리즘의 고객은 딱 하나, 국민이라고 말했다. 국민이 원해서 취재하고 국가를 움직여 세상을 바꾸도록 하는 게 저널리즘이다. 언론은 대통령을 비판하고 잘못한 것을 끊임없이 지적해야 한다. 김 PD는 노무현 정부 시절 언론중재위원회에 출퇴근 도장을 찍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명예훼손으로 매일 법정에서 진술하곤 했다.

김 PD는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적이 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6명이 나왔다. 변호사 살 돈이 없었던 김 PD는 “제가 저를 변호하고 싶다”며 “헌법을 공부할 시간을 달라”고 판사에게 부탁해 두 달을 얻었다. 법원에서 나오는 길에 헌법 책을 산 김 PD는 첫 장을 펴본 뒤 책을 바로 반품했다. ‘모든 국민은 언론의 자유를 가진다.’ 그는 “취재하는 사람으로서 언론의 자유를 충실히 지켰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김 PD는 정부의 고소가 ‘언론인을 길들이는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질 줄 알면서도 귀찮게, 겁먹게 함으로써 위축되게 하는 것이다. 그는 길들지 않기 위해 출국금지를 포함해 재판, 언론중재위원회 출석을 즐긴다고 말했다. 저널리스트로서 감당해야 하는 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고소를 당하고 대법원까지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다 촬영 범주 안에 넣는다. 그러다 보니 요령도 생겼다.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은 외교부와 해수부에서 나가지 못하게 할 걸 예상해 파리행 비행기를 끊어 머물다가 남미로 가 취재했다. 그는 “압력도 즐기니 별거 아니더라”고 웃으며 말했다.

"저는 굳이 특종을 하고 싶진 않아요. 특종은 기자한테 좋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왜냐하면 자기가 잘하는 줄 알아요. 기자가 특종을 해서 유명해지고 방송에 나오면 진지하고 겸손한 취재 태도는 뒷전으로 밀리고 점점 자기가 잘난 줄 아는 거죠."

▲ 김영미 독립 PD에게 질문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 ⓒ 조승진

김 PD는 취재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의식하거나 인기에 연연하게 되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본분을 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기자나 PD가 자기 본분을 잊고 유명세를 좇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취재하는 사람이 자기 유명세를 키우려고 더 큰 사건이나 사고를 찾아다니는 동안 정작 들어야 할 국민의 목소리는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의 요구가 크든 작든 더 길게, 더 자세히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가 '특종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다른 언론에서 다루지 못한 '특종'을 쏟아낸 비결일지 모른다.

적게 벌어도 하고 싶은 걸 해야

"사실 독립 PD로 살려면 꼭 협찬을 받아야 해요. 요즘은 지상파 PD도 다 어디 가서 협찬을 받아와야 방송이 나갈 수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절대 협찬을 안 받아요. 왜냐면 받은 돈만큼 나 괴롭힐 거 아니까. 그럼 나한테 자유가 없어지는데 차라리 돈 안 받고 나 괴롭히지 말라는 거죠. 저는 덕분에 자유를 누리지만 고 퀄리티 생활은 못 하죠."

김 PD는 "공무원들이랑 밥 먹고 밥값 영수증에 제 이름이 들어가는 게 제일 싫다"고 말했다. 누구는 밥 한번 얻어먹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여기겠지만 그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고 되묻는다. 그는 "취재하는 사람한테 밥을 산다는 것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라며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보다 중요한 건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PD는 "정말 열심히 모은 적금도 깨야 하고, 자식 학비도 뺏어서 투자해야 하는 것이 이 직업"이라며 "이런 게 싫으면 이 직업을 안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기자나 PD가 돈의 유혹에 넘어가면 더는 국민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김 PD는 "나도 인간인지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흔들리지 않게끔 성찰과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 김영미 독립 PD와 <시사IN>은 펀딩으로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실을 단행본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해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 <스토리펀딩> 누리집

"국민과 맺은 노예계약이 끝날 때까지만 좀 참아보려고요. 계약이 끝나고 나면 아주 세속적인 저를 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전까지 국민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게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라고 생각해요. 이 직업이 아니면 제가 뭐 하러 국민 알 권리를 위한다고 제 자신을 희생하겠어요. 그래서 아직 행복하게 제가 좋아하는 작업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1학기 [저널리즘특강]은 한승동 김영미 오연호 강정수 이정환 최경영 박인규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장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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