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주제 ② 인터뷰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직후 <오마이뉴스>와 단독 인터뷰했어요. 사건이었어요. 당시 <오마이뉴스>는 창간 2년차 신생 언론사였죠. 제가 한 첫 질문은 ‘많은 언론이 요청했는데 왜 <오마이뉴스>의 요청을 받아줬습니까’였어요. 기사에는 옮기지 않았지만 그때 대답은 이거였어요. ‘시대가 바뀌었으면 바뀐 식으로 해야지.’”

▲ 오연호 대표는 30여명 언론인 지망생들과 질의응답 형식으로 두 번째 주제 강연을 했다. ⓒ 김서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기자 인생에서 ‘최고의 인터뷰’가 무엇인지 묻는 학생의 질문에 노무현 대통령 인터뷰를 꼽았다. 오 대표는 노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였다. 그는 정치인 노무현이 처음 대통령의 꿈꿨을 때, 공식적으로 후보로 출마했을 때, 대통령이 된 직후,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단독 인터뷰를 했다. 그는 대통령 당선 직후 인터뷰가 “특히 인터넷 미디어 시대가 오는 것을 보여줬다”고 회상했다.

인터뷰 대상자의 ’사생팬’이 돼라

“취재 방법은 두 가지가 있죠. 현장을 묘사하는 르포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예요. 이 중 인터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현장을 리얼하게 잡더라도 사람이 빠지면 심심해요. 기사는 사람이라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독자는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요.”

▲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는 오연호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과 한 심층 인터뷰가 담겨있다. ⓒ 오마이뉴스

좋은 인터뷰를 만드는 오 대표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그는 ‘사전취재’를 통해 ‘주제 장악력’을 키우라고 강조했다. 기자는 중요한 질문인 ‘핵심축’을 중심으로 미리 설계해서 인터뷰를 준비하는데, 이 핵심축을 놓치지 않으려면 철저한 사전취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대뜸 본론으로 들어가면 취재대상도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는 인터뷰 직후 5분 정도를 ‘아이스 브레이킹 타임(Ice breaking Time)’이라고 부르며, 서서히 중요한 질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사전취재와 주제장악을 신나게 할 수 있을까요? ‘사생팬’을 생각해보세요. 그 사안에 대해 좋아하면 돼요. 성공하는 인터뷰는 ‘내가 이 사람을 탐험하고 싶은가’에서 나와요. 그런 사람을 취재할 수 있다면 (기자로서도) 행복하겠죠.”

오 대표가 이런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기자생활 덕분이다. 그는 88년 <월간 말>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말>은 기존 언론사에서 쫓겨나 전두환 대통령과 ‘대결’하는 매체였다. 연세대학 재학 때 학생운동을 한 그와 궁합이 잘 맞았다. 그가 기획회의에서 주도적으로 낸 아이디어는 대부분 통과됐다. 그곳에서 쓴 기사를 모아 2년만에 단행본도 냈다. 이쯤 되면 그를 두고 ‘천생 기자’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언론인이라 불리고 싶지 않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이 오연호를 얘기하면 언론인이라고 불렀고, 저도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저를 언론인으로만 부르면 그건 저를 정확하게 이해한 게 아니에요.”

▲ 오 대표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미디어 행위라며 학생들에게 저널리즘의 한계를 규정 짓지 말라고 주문했다. ⓒ 김서윤

오 대표는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언론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자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단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행동하거나 더 즐거운 인생을 위하여 저질러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사를 쓰는 일은 그 목표를 위해 행하는 하나의 영역일 뿐이라고 말했다.

“저는 제 청춘을 모두 저널리스트에 바쳤어요. 그런데 지금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언론을 패싱할 것 같아요. 세상을 바꾸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오 대표는 기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미디어 행위는 다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즉 강연을 하고, 학교를 운영하고, 책을 발간하고 하는 행위가 모두 미디어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강연을 듣는 이들에게 더 넓은 것을 봐달라고 주문했다. 저널리스트 영역을 한정 짓지 말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목표 의식이다. 저널리스트 행위를 왜 하는 건지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거 예요. 사실 기자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걸 넘어 ‘무엇을 위해서’가 핵심입니다. 저는 처음에 소설가를 꿈꿨어요. 그때도 스스로에게 물었죠. 무엇을 위해서 소설가인가? 나중에는 기자가 꿈이었어요. 스스로에게 또 물었죠. 왜 기자인가?”

언론인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길

그는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도 즐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가 아직까지 <오마이뉴스>에 적을 두고 있는 것은 여전히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이 만약 짐만 된다면 지금도 그만둘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오 대표 이름 뒤에는 교육자라는 다소 낯선 직함이 하나 더 붙어 있다. 지난 2016년, 강화도에 개교한 ‘꿈틀리 인생학교’에서 국어교사 겸 이사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중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1년간 자유롭게 인생을 탐구할 기회를 제공하는 대안학교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철학, 역사, 고전읽기부터 밭농사, 목공, 도예까지 다양한 공부를 한다. 또 관심사가 맞는 학우들이 세 명 이상만 되면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 1년간 탐구하고 싶은 분야를 자유롭게 정해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도 있다고 한다. 뮤지컬과 연극, 합창 등 다채로운 형태의 공연을 준비해 발표하는 협동 프로젝트도 있다. 그가 이런 방대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즐겁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세상에는 재미있는 게 너무나 많아요. 현재 이렇게 강연을 하고, 또 학교를 운영하고, 책도 쓸 수 있는 것 모두 제가 행복하기 때문이에요.”

▲ 오 대표는 “무슨 일이든 행복하지 않으면 그 동력이 빨리 식는다”며 요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강연은 그게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김서윤

오 대표는 원래부터 그랬다. 언론사를 창간한 이유도 매체를 직접 운영해야겠다는 무미건조한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쓰는 표현을 빌리면 조금 더 ‘꿈틀거리는 것’이 그 원동력이었다고 할까? 흥미로운 것, 그가 흥분할 만한 일이기에 언론사도 창간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경영학 수업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며 학문에 ‘학을 뗀’ 천진난만한 학생처럼 웃었다. 그는 다만 언론 지형을 바꿔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모든 시민이 기자가 되어서 운영되는 신문을 창간한 것이다. 그 당시 우리 언론 환경에는 그런 매체가 없었다.

“지난 5년간 책을 내고 강연을 다니며 생각이 많이 변했어요. 그 전에는 언론만 생각했죠. 기사를 쓰는 것도 미디어의 한 영역이에요. 요즘은 기자가 아닌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인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더 좋아해요.”

오 대표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그 누구에 뒤지지 않을 만큼 역동적으로 살아왔다. 소설가를 꿈꾼 시골 소년에서 운동권 대학생으로, 월간지 기자에서 언론사 경영자로, 그리고 또다시 교육자와 강연가로 끊임없이 변모해온 게 오늘의 그를 이룩했다.

'한경오 프레임'은 미디어의 숙명

‘한경오 프레임’ 등 <오마이뉴스>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한경오'란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를 줄인 말이다. 진보언론이 보수언론과 권위주의적인 면은 다를 것 없다는 의미로 인터넷 등에서 쓰이는 용어다.

"그럴싸해요. '한경오'도 비판이라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언론에 대한 모든 비판은 허용되어야 합니다. 언론인은 비판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비판도 책임을 져야죠."

▲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로 2000년 창간한 <오마이뉴스> 홈페이지. ⓒ 오마이뉴스

오 대표는 "비판이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지 않는 한 언론이 소송을 거는 일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 박사 논문 주제가 '매개자(미디어)의 숙명'입니다. 모든 미디어는 한계를 노출한다는 숙명이 있습니다. 미디어는 편집을 거치기 때문에 정확한 현실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후배세대에게 기회이기도 합니다. 기존 미디어가 한계를 보일 때 새로운 것이 치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끝으로 오 대표는 "<오마이뉴스>에 입사하고 싶다"는 말보다 "새로운 매체를 만들었으니 협력하고 싶다"는 말을 더 듣고 싶다고 했다.

"미국 유학 때 '직접 미디어를 만든다면?'이라는 주제를 받았어요. 그때 지금 <오마이뉴스>처럼 시민이 기자가 되는 매체를 구상해서 좋은 학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교수가 '아이디어는 좋지만 스스로 사업은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현실감각이 약한 저널리스트는 사업하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요. 그러나 저는 18년째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한 이야기도 참고만 해주세요. 미래는 여러분이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편집 : 안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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