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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도 집어삼킨 미국 SF영화

기사승인 2018.07.08  18: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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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토크] ‘레디 플레이어 원’

<레디 플레이어 원>은 지난 3월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영화다. 2045년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한 빈민촌이 배경이다. 배경이 하나 더 있다. 가상현실(VR) 게임 ‘오아시스(OASIS)’다. 오아시스에서 사람들은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 갈 수 있고, 상상하는 것도 뭐든 할 수 있다.

영화는 ‘시궁창’ 같은 현실과 ‘낙원’ 같은 가상세계 오아시스를 오가며 진행된다. 2027년생으로 18살인 주인공 웨이드 와츠(타이 셰리든)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이모와 함께 빈민촌의 컨테이너 타워에 산다. 와츠의 유일한 낙은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일이다. 오아시스에서 와츠는 닉네임 ‘파시발’로 변신한다. 와츠뿐 아니라 빈민촌 사람들은 하루 대부분을 가상현실 헤드셋 기기를 끼고 산다.

현실세계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공간일 뿐이다. 오아시스 개발자 제임스 할리데이는 엄청난 부를 벌어들이고 회사를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킨다. 그는 흥미로운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오아시스에 숨겨놓은 보물 ‘이스터에그’를 찾는 사람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라."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상현실 오아시스(OASIS)를 배경으로 모험을 펼치는 SF 영화다. ⓒ 네이버 영화

자본주의 병폐를 꼬집는 스토리텔링? 

‘이스터에그’ 사냥이 시작되면서 가상현실 오아시스는 할리데이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헌터들의 경쟁으로 뜨거워진다. 주인공 와츠(오아시스에서는 파시발)는 아르테미스, 에이치, 다이토, 쇼와 힘을 합쳐 임무에 도전한다. 모두 빈민촌 출신 청소년이다. 에그를 노리는 또 다른 이는 IOI의 CEO 놀란 소렌토(벤 멘델슨)다. 현실의 IOI는 오아시스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독점 제작·판매하는 회사로 세계 두 번째 규모다. 이들은 세계 1위 기업이 되기 위해 에그 사냥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대결이 영화 스토리텔링의 기본 골격이다. 프로타고니스트 와츠는 프롤레타리아, 안타고니스트 소렌토는 자본가다. 자본가와 무산계급의 대립이라는 구조다.

IOI는 가상세계뿐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와츠팀과 대결한다. 자본과 권력을 동원해 와츠팀이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아지트를 습격해서 이들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려 한다. IOI의 막강한 힘과 거센 방해에도 주인공은 동료들과 함께 가상세계에서 이들을 물리친다. 스필버그 감독은 현실세계에서도 빈민촌의 전 주민이 연대해 거대기업 IOI를 물리치는 것으로 줄거리를 구성했다.

사람들은 IOI가 독점 제작하는 오아시스 연동 주변기기와 아이템을 빚을 져서라도 구매한다. 아이템이 있어야 오아시스에서 더 큰 쾌락과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갚을 수 없는 빚을 떠안은 사람들은 IOI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로 전락해 착취를 당하다 숨지기도 한다. 스필버그는 가상현실, AI, 로봇 등 4차산업혁명이 진전된 미래세계에서 실현될 마르크시즘적 세계관을 그리고 있다.

   
▲ IOI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오아시스에서는 ‘식서’로 불린다. 이들은 이름대신 6자리의 숫자로 불리며, 옆에는 이들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다. ⓒ 네이버 영화

사상마저 상품으로 전락시킨 자본주의 시장

앞서 다룬 내용만 보면 영화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서사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대중문화와 미국 할리우드의 전략 장르인 SF 형식을 갖추는 등 철저하게 자본주의 시장에서 먹힐만한 요소로 범벅되어 있다. 80년대 대중문화를 소환해 향수를 자극하고, 가상현실이라는 상상의 범주를 현실과 결합했다. 이는 꿈과 희망을 파는 SF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마르크시즘적 세계관을 자본주의적 영화에 융합해 오락상품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다 똑같이 시작하지만 코인이 많을수록 레벨이 올라가고 만약 아바타가 죽으면 모든 걸 잃는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이 오아시스를 설명한 이 대사는 자본주의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주인공이 IOI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한 아이템도 코인을 이용해 ‘아바타 상점’에서 구매한 것이다. 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미국의 SF 영화 중 시간에 관한 유형으로는 미래사회물을 들 수 있는데, SF영화가 그리는 미래는 유토피아(utopia·이상사회)라기보다는 통제된 디스토피아(dystopia·암울한 미래사회)에 더 가깝다”며 “이 SF영화들은 대체로 인간의 과학기술, 이성, 도덕성에 회의를 드러낸다”고 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에서 태동한 대중문화는 그 이전 문화와 완전히 성격을 달리한다. 대중문화는 예술가 개인의 작품이라기보다 문화산업의 제품이다. 상투적이고 보수적이고 규격화해 있다. 마르쿠제는 대중문화는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현실을 노동자들이 외면하게 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구조를 삶의 방식으로 내재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대중문화를 통해 학습한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벗어난 삶의 방식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들어 이들의 정치성을 희석하고, 자본주의 틀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의 목표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중문화를 ‘긍정적’ 문화라는 개념과 대비했다. 이는 현실세계에 대한 비판의식을 토대로 더 높은 이상을 표현하는 문화를 말한다. 대조적으로 대중문화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욕망을 지피기보다 현실을 왜곡해 버틸만한 것으로 만들고 체제전복적이지 않은 목표를 제시한다. 그는 대중문화가 고통스러운 삶의 무게를 이런 방식으로 완화해서 억압적인 지배구조를 연장하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서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일까? 영화처럼 현실에서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스필버그는 컴퓨터그래픽 특수영상으로 범벅한, 화려하고 단순한 오락영화 한 편을 제작한 걸까?


편집 : 김서윤 기자

고하늘 PD gosky07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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