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개인 책임 사회’

▲ 김민주 기자

지하에 살던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은 자살을 택했다. 병들고 신용불량자가 된 그들은 마지막 집세를 겨우 남겨두고 ‘죄송합니다’를 연이어 쓰며 가지지 못한 것을 자기들 잘못으로 여겼다. 또 다른 세 모녀는 그들이 가진 것을 자기들 능력으로 여겼다. 대기업 2세를 남편과 아버지로 둔 그들은 ‘돈도 실력’임을 온 직원에게 증명하며 살았다. 세 모녀는 검찰 포토라인에 서서 “죄송합니다”를 기계처럼 되뇌었다. 비극적 결과가 개인 차원으로 나타나는 원인에는 우리 사회가 결과의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 돌리는 데 있다.

돈 있는 자들이 마음대로 기분 풀이를 할 수 있고 돈 없는 자들이 스스로 비관하며 자살을 택해야 하는 ‘개인 책임 사회’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능력주의’로 만들어진다. ‘왜곡된 능력주의’는 부모의 재산 축적이나 지위 획득 과정이 어떻든 결과적으로 돈이 많고 높은 직위를 갖고 있으면 이 사회의 ‘갑’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들을 받쳐주는 것은 모순되지만 수많은 ‘을’들이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자들을 비난하면서도 너도나도 그들처럼 돈과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래야 이 사회에서 몸이 편하고 괜한 모욕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갑들은 갑질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개인이 능력을 가진 것은 오로지 개인의 능력이고 따라서 돈과 권력이 없는 이들의 책임도 그 능력을 갖지 못한 개인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기준 없이 파편화한 책임은 길거리 카페에서도 갑질이 일어나는 사회 병폐가 생기게 한다. 직장에서는 을일지언정 카페에서만큼은 돈을 쥐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돈 있고 힘 있는’ 갑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갑질 낙수 효과’는 ‘을질’, ‘병질’, ‘정질’로 이어진다. 사회 제도는 갑을 위해 이루어져 있는데 그 영향을 받는 시민이 그것에서 벗어나면 돈과 권력을 좇기 어려운 구조다. 이러한 사회에서 개개인에게 차별 없는 인식을 갖게 하고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희망 고문일 뿐이다. 제도가 사회 구성원의 인식을 규정한다. ‘갑질’을 하지 않고 순진하게 있으면 당한다는 사회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 대학 서열 문화는 사회 내 갑질, 을질, 병질을 용인해주는 결과로 나타난다. ⓒ pixabay

사람을 서열화하는 인식이 깔리게 된 데는 한국의 대학입시 제도가 크게 기여했다. 학교 순위로 사람의 등수도 서열화하기 때문이다. 부모를 잘 만나 사교육을 잘 받은 순서로 대학에 들어가는 ‘능력’을 ‘개천에서 용 난다’는 개인 책임 프레임으로 개인에게 무한한 보상을 주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오로지 개인의 노력으로 명문대에 입학했을지라도 스무 살에 치른 객관식 시험으로 한 사람의 존엄성이 결정되는 제도는 문제가 있다. 스무 살에 용이 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은 열패감에 휩싸여 사회에 나오게 한다. 제도가 만들어낸 열패감은 자신의 존엄성을 자신이 낮추고 남에게 갑질을 당해도 자신의 ‘능력’ 탓으로 여기며 순응하는 것이다. 서열 제도는 사회에 갑질을 용인해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프랑스는 68혁명 이후 대학 평준화를 통해 평등 교육을 실현했다. 프랑스는 2002년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을 노동법전에 가장 먼저 새긴 나라다. 우리나라는 6월항쟁 이후 직선제를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뤄냈지만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상의 민주화는 뿌리내리지 못했다. 제도가 바뀌어야 문화가 정착된다. 대학입시를 겪고 사회에 나오면서 상대방과 위치가 다르다는 인식은 일상의 민주화를 막고 갑질 문화를 정착시킨다. 평등한 입시 제도를 통해 평등한 인식이 퍼지면 돈 많고 빽 있다고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그들이 함부로 갑질을 하는 일상은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책 <작은 인간>에서 인간의 권력욕은 본능이 아니라고 말한다. 선사시대 인류는 어느 날 운 좋게 큰 수확을 올리면 이웃에게 나눠주며 지배자 없이도 잘살았다고 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제도가 본능을 이긴 것이다.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인간은 본능을 억누르고서라도 갑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4년 전 한진 세 모녀가 송파 세 모녀를 도와줬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능력’있는 자가 진정한 존중을 받고 상대적 약자 또한 사회 시스템에 도움을 청하며 자기네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송파 세 모녀와 한진 세 모녀가 공존하는 사회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연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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