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장현석 기자

▲ 장현석 기자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 경내에는 침류각(枕流閣)이란 누각이 있다. 1900년대 초 건립된 전통가옥으로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건물이 최근 언론을 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이 누각 사진을 영상화면에 띄우고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이 건물 안내판이 어려운 건축용어로만 돼 있다며 알기 쉽게 바꿔보라고 하면서 일반에 알려졌다. 이날 문 대통령이 띄운 침류각 사진은 마침 <조선일보>가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견제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것과 맞물리면서 묘한 여운을 남겼다.

침류각의 ‘침류’는 ‘흐르는 물을 베개 삼아’라는 뜻으로 ‘수석침류’(漱石枕流)라는 고사성어에서 따온 말이다. 진나라 사람 손초가 산속에 은거하기로 마음먹고 친구인 왕제에게 “돌을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을 하며 살고 싶다”(枕石漱流 침석수류)고 말하려다 실수로 ‘수석침류’라고 말해버렸다. ‘돌로 양치질을 하고 물로 베개를 삼겠다’고 한 것인데, 친구 왕제가 웃으며 실수를 지적하자 손초는 그걸 인정하기 싫어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흐르는 물을 베개 삼겠다는 것은 옛날 은나라 허유처럼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으려는 것이고, 돌로 양치질을 한다는 것은 이를 닦으려는 것일세.”

▲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제시한 '침류각' 안내판 사진. ⓒ 연합뉴스

이는 견강부회(牽强附會)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고사성어로,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끌어다 맞추려는 것을 뜻한다. 집요하게 남북∙미북 정상회담에 부정적인 태도로 대북정책을 견제해온 <조선일보> 보도를 ‘견강부회’라 규정하고, ‘쓸데없는 말을 들었으니 귀를 씻으련다’고 말하는 듯해, 우연이지만 묘한 뒷맛이 남는다. <조선>은 지난달 21일 ‘2030세대 92% “北 핵 포기 안 한다”’는 기사를 1면 머리로 내보냈다. 20, 30대 대다수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면 순수한 전망 기사가 아니라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조선일보>의 조바심이 느껴진다.
 
<조선>은 이번 조사가 일반 여론조사 방식이 아닌 숙의 과정을 거친 공론조사 방식이었음을 강조했다. 100명 참여자를 대상으로 하루 동안 북한과 관련한 교육과 토론을 한 뒤 설문조사를 하는 공론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어떤 사안에 대한 전망이나 예측에 관해 여론조사를 하는데 공론조사란 방식이 합당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도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 예측이나 전망조사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망조사에서 사전교육을 하고 토론한 뒤 설문조사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공론조사는 국민의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갈리는 정책 등을 결정하기에 앞서 정확한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고리 5∙6호기 가동을 중단해 놓고 재가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때 활용했다. 중요한 국가 정책을 결정할 때 단순 여론조사를 하면 그 사안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적 선동이나 일시적 감정,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 의견을 개진하게 돼 국가적 중대사를 그르칠 수 있다. 그런 오류를 막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 조사대상을 선별해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장기간 찬반 토론을 거쳐 내용을 숙지시킨 뒤 찬반 여부를 물어보는 것이 공론조사다.

<조선일보>는 그러나 20, 30대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는지,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지’ 전망을 물어보는 데 공론조사 방식을 동원했다. 정말 북의 핵 포기 여부가 어떻게 될 것인지가 정부 정책 결정에 중요하다면 전문가그룹으로부터 공론조사를 해서 그걸 참조하면 된다. 단순히 20, 30대의 생각이나 전망을 알아보기 위해 공론조사를 해서 그 결과를 1면 머리로 보도하는 것은 아무래도 견강부회처럼 보인다.

▲ 지난달 21일 조선일보는 '2030세대 92% "北 핵 포기 안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리로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공론조사 방식을 토대로 조사를 했음을 강조했다. ⓒ chosun.com website

전망이나 예측을 공론조사 방식으로 알아볼 수는 있다. 하지만 단순히 20, 30대가 북한이 핵을 포기할지 여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데, 사전 교육과 토론 등을 거쳐서 공론조사를 하는 것은 특정한 방향으로 결론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조선>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줄곧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집요하게 부각해 왔다. 그런데도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미북 정상회담까지 추진되자 20, 30대 거의 전부가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점을 1면 톱으로 보도함으로써 남북화해와 평화체제 이행에 제동을 걸어보려 했던 듯하다.

<조선>이 실시했다는 공론조사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먼저 공론조사 참여자들을 어떻게 선별해서 구성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재가동 여부를 묻는 공론조사를 할 때는 참여 의사를 밝힌 2만여 명 중 성·연령 지역 등 인구 비례를 고려해 무작위로 471명을 시민참여단으로 선정했다. <조선>은 전국 20~39세 남녀 중 1차 조사 때 1000명, 2차 조사 때 100명을 뽑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론조사 참여단 선정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공론조사단의 대표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공론조사 숙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1000명을 대상으로 1차 조사를 벌이고, 5월 12일 하루 동안 100명의 참여단을 대상으로 2차 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2차 조사에서는 남북관계와 통일에 관한 강연과 토론회를 통해 숙의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신고리 5∙6호기 재가동 여부를 물을 때는 석 달에 걸쳐 네 번의 설문조사를 거쳤다. 마지막 설문조사 때는 33일간 온·오프라인 강연과 토론 등의 숙의 과정을 가졌다. 여기에 제3의 독립기구로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기도 하고, 언론에 공개하는 브리핑도 했다. 모두 공론화 과정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견주면 <조선>의 공론조사 숙의 과정은 너무 짧고 교육내용과 찬반 토론 내용,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 자세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단 하루에 과연 얼마나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는지, 참여자들이 새로 접하게 된 정보와 지식 등을 참고해서 충분히 자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는지, 상식적인 국민이라면 의문을 가져볼 수밖에 없다.

▲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 종합토론회 현장.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는 세 달에 걸쳐 시민들이 직접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는 숙의 과정을 거쳤다. ⓒ KTV국민방송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20, 30대 대다수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 오히려 공론조사란 방식을 동원해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높여서 1차 조사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비율로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게 만들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북한 핵 폐기 문제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중대한 사항이다. 북핵 국면에서 모든 국민이 경각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조선>의 논조도 일리는 있다. 그렇더라도 지금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 핵폐기 협상을 앞두고 신뢰하기 힘든 방식으로 도출된 젊은 층의 전망결과를 대서특필해 사실처럼 호도하는 것은 책임 있는 언론의 자세가 아니다.

20·30세대가 교육을 받고 토론을 거친 공론조사를 통해 부정적으로 보는 것과 상관없이 북한이 이번 협상을 통해 핵을 폐기할지 안 할지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북한의 극소수 핵심 당국자들만 알고 있거나, 그들도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지 말지에 관한 20, 30대의 생각은 지금 한반도 정세변화나 정책 결정에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조선>의 보도는 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하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언론이 하고 싶은 주장을 위해 합당하지 않은 조사방식을 동원해 전망이나 예측을 하고 그것을 기정사실인 양 보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보도가 아니라 사실 왜곡이고 결과적으로 여론을 호도한다. 청와대 ‘침류각’에 대비시켜 <조선일보> 옆에 ‘부회루’(附會樓)라는 누각을 세워주면 어떨까?


편집 : 장현석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