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양승룡 고려대 교수
주제 ② 농산물 유통: 쟁점과 과제

지난 5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농정의 두 축인 농림축산식품부장관과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이 사임한 지 두 달이 넘었는데도 인선이 안 되고 있다’며 ’한시바삐 농정공백을 해소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지난해 7월 취임한 김영록 장관은 지난 3월 농정을 이끌어온 지 8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남도지사에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날 청와대 신정훈 농어업비서관도 사표를 던지고 전남도지사에 출마했다. 신 비서관을 보좌하던 이재수 선임행정관마저 춘천시장 선거에 뛰어들었다.

‘농정 수장’ 셋이 떠나고 80일이 지났지만 비워진 자리는 여전히 메워지지 않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쪽은 “역대 어느 정권도 농림부장관과 농어업비서관직을 이렇게 오래 비워둔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 '농업은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했지만 당선 이후 농업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 양승룡 고려대 교수가 농산물 유통 개혁의 쟁점들을 설명하고 있다. ⓒ 이민호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지역∙농촌문제세미나]에서 “농림부 장관이 돌연 도지사에 출마하겠다고 농정을 두고 떠났다”며 외면받는 농업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농업을 책임 있게 이끌어줄 정부는 정말 없는 걸까?

정치로 이용된 농산물 유통정책

▲ 역대 정부의 농산물 유통정책. ⓒ 양승룡

“역대 정부의 유통정책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모두 직거래를 활성화한다고 했죠. 농산물 유통의 문제를 유통 구조가 복잡하고, 상인이 중간에서 독점적 이윤을 취한다고 본거죠.”

1993년부터 25년간 정부는 농산물 유통 단계를 줄이는 데만 정책의 중점을 둬왔다. 양 교수는 “역대 정부의 농산물 정책이 직거래 위주로만 논의된 것은 정치적으로 부각되기 쉽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은 앞다퉈 도매시장의 비효율적인 구조와 중간 상인의 횡포가 농업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문제의 핵심이 유통구조가 아니라 단계마다 수행했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일렀지만 그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누군가 기존에 있던 유통 단계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는가? 그건 아니라고 보는 거죠. 정부는 과거에 도매시장 단계를 단순화하고 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산지조직과 대형업체, 대형마트, 대형 백화점에 지원금까지 줬어요. 그러나 유통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지금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양 교수는 “유통 단계의 해법은 ‘유통조성기능’에 있다”고 강조했다. 유통조성기능이란 상품의 거래와 흐름을 신속 정확하게 비용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경매단계를 건너뛰거나 경매 기능을 약화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왜곡되고 불합리하게 조성된 유통기능이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 양 교수의 주장이다. 이어서 그는 “정부가 제기한 농산물 유통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라면 일찍이 시장원리에 의해 도태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장 없애고 직거래?

▲ 시장이 없다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시장의 다양한 기능을 대신 수행해야 한다. ⓒ 양승룡

농림축산식품부는 직거래를 ‘생산자 또는 생산단체가 소비자 또는 소비자단체와 거래할 때 중간단계를 개입시키지 않고 직접 거래를 하는 형태’로 정의한다. 직거래를 위해 정부가 그동안 많은 예산을 투입해왔지만 유통 문제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조사한 ‘2014 농산물유통실태’에 따르면 소비자가 100을 지불할 때 유통마진은 대략 45% 발생한다. 유통단계별로는 출하단계 10%, 도매단계 11.6%, 소매단계 23.2%이다. 정부 주장대로 도매단계를 생략하고 출하단계와 소매단계를 연결했을 때 줄일 수 있는 비율은 11.6%다. 그러나 양 교수는 11.6%라는 수치도 잘 들여다 봐야 한다고 말했다.

▲ 그래프는 도매유통이 오랜 기간 최적화 과정을 통해 효율적인 유통 구조의 일부분이 됐음을 보여준다. ⓒ 양승룡

“도매단계에서 이윤은 3%에 불과합니다. 과거 10년 동안 농산물 유통마진 자체는 변동이 별로 없었어요. 우리가 도매단계로 줄일 수 있는 비용은 고작 3%밖에 안 되는 거죠. 오늘 아침 뉴스를 봤는데 대형마트와 거래하는 납품업체들이 한 건 이상 불공정거래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롯데마트 마진이 36%, 홈플러스는 33%라고 하더군요. 도매단계보다 소매단계에서 유통을 효율화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유통을 효율화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비용 효율성’이고, 또 하나는 ‘가격 효율성’이다. 양 교수는 “유통단계 축소는 비용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가격 효율성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일렀다. 시장은 예로부터 물류의 정보가 흐르던 곳이다. 시장이 없다면 많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스스로 거래할 방법을 찾아야 하며, 발품을 파는 과정에서 흥정과 매수, 물류 등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양 교수는 “시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상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측정하고 그 상품의 자원 배분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도매인제는 퇴행한 제도 다시 도입하자는 것

▲ 가락시장은 시설현대화사업으로 기존 도매시장 안에 혼재하던 청과·수산·축산·건어·친환경·식자재∙주방용품 등을 편리 하게 원스톱 쇼핑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 가락몰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의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이하 가락시장)은 국내 최대 규모로 농수산물이 유통되는 곳이다. 전국 33개 공영도매시장 가운데 전체 거래물량의 34%를 차지하고, 수도권에서 소비되는 농산물의 45% 이상을 취급한다. 가락시장 전광판에는 경매 현황과 생산자, 품명, 등급, 수량 등 농산물 관련 정보가 표기되는데 이 중 경락가격은 전국의 농산물 평균시세를 결정하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가락시장은 전에 용산시장에서 상주하던 상인이 1985년에 이주해 온 것입니다. 이때 시장은 위탁상 제도였어요. 산지에서 농민들이 농산물을 가지고 오면 위탁상에게 맡기는 방식이었죠. 위탁상이 농산물을 받아서 판매하고. 그 뒤에 정산해줍니다. 그런데 위탁상이 판매금액으로 100원을 받는다고 하면 진짜 100원을 받았는지 알 길이 없어요. 거래가 투명하지 않은 일들이 많았고 농민들 원성이 자자했죠. 심지어 물건을 받고 한 달 뒤에 어음으로 결제해주기도 했어요. 산지의 생산자는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했죠.“

과거 위탁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락시장에 공용도매시장을 만들고 경매제를 도입했다. 경매제는 생산자가 물건을 제시하면 중도매인이 알맞은 가격을 적어낸다. 가장 높은 가격을 적어낸 중도매인과 생산자를 연결해주고 도매법인을 통해 사흘 안에 생산자에게 결제해주도록 의무화했다. 생산자 쪽에서는 그 전보다 농산물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최근 위탁상 제도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경매제를 이용하려면 생산자가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더는 위탁상한테 당하지 않게 됐지만 생산자는 4%의 수수료가 부담스럽죠. 그래서 기존 경매제도를 없애고 위탁상제도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요. 이를테면 시장도매인제도를 도입하자는 거죠.”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 놓고 가락시장 갈등 심화

▲ 시장도매인 유통경로는 출하자→시장도매인→소매상인/대형업체→소비자 순으로 이뤄져 경매제보다 단계가 축소된다. ⓒ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최근 가락시장은 시설현대화사업이 진행되면서 시장도매인제 도입 여부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기존 경매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시장도매인제는 출하자로부터 상품을 직접 수탁해 대형매장이나 소매상 등에 판매하는 농산물 거래방식이다. 농가 수취가격(총수익)을 증가시키고, 기존 유통단계를 줄임으로써 비용을 절감해 농산물 가격의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도입 목적이다. 2000년 1월 ‘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을 시작으로 도입 근거가 마련된 시장도매인제는 2004년부터 강서시장에서 경매제와 같이 운영되고 있다.

“시장도매인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출하자와 시장도매인, 둘만의 교섭으로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당사자 외에는 거래가격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산자의 상품이 시장에서 얼마 하는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시장의 역할인데 그것을 할 수 없게 된 거죠.”

▲ 경매제 유통경로는 출하자→도매법인→중도매인→소매상인/대형업체→소비자 순으로 이뤄진다. ⓒ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이와 반대로 경매제는 출하자가 판매를 위탁한 도매시장법인이 경매를 통해 중도매인에게 농산물을 판매한다. 경매를 통해 가격이 결정되어 가격 결정 과정이 투명하고, 시장참여자들이 쉽게 가격을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장도매인제는 부도가 나면 생산자가 물건 값을 못 받게 됩니다. 내가 어떤 시장도매인에게 물건을 맡길 건지 하는 탐색비용과 협상비용도 발생하죠. 이 비용들은 숨겨진 비용이지만 분명히 지불되고 있는 금액입니다. 경매를 건너뛸수록 발생비용은 증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람직한 농산물 유통 개혁의 방향은?

농산물 유통 개혁에 경매제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다만 직거래 도입이나 소매단계를 축소하는 것보다 경매제의 문제로 지적되는 점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양승룡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경매제에 관한 오해나 그릇된 인식을 먼저 풀고 유통의 효율화를 위해 합리적이고 명확한 등급표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생산자, 중도매인, 소비자가 생각하는 농산물 등급표준의 기준이 제각기 다르다. ⓒ 양승룡

등급표준화는 유통의 가장 기본 전제로 꼽힙니다. 농산물 박스 옆에 보면 ‘상’ ‘특’ 이렇게 등급이 표시돼 있죠. 현재 산지에서 자체적으로 선별해 표기하도록 돼 있습니다. 유통 비용을 줄일 뿐 아니라 견본만 보고도 믿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하죠. 그런데 현실은 가락시장에 오는 상품의 90%가 ‘특’으로 표기돼 옵니다. 산지 단계에서 전혀 등급표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거죠. 시장에 오면 일일이 다시 다 뜯어봐야 합니다.”

양 교수는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유통비용이 많이 발생하며,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선호를 반영한 등급표준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도 다양한 방법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고입찰가 방식을 취하는 경매제는 중도매인의 실제 지불의사보다 가격을 낮게 책정해 부르기 때문에 생산자 쪽에서 물건이 과소평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중도매인의 주거래 법인 소속은 20년 동안 고착돼왔다. ⓒ 양승룡

“가락시장에는 6개 법인이 있어요. 법인 밑에 중도매인이 속해 있죠. 생산자들이 특정법인에 가서 물건을 맡기면 그 법인에 소속된 중도매인한테 물건을 넘기는 구조입니다. 법인 간에 법적 장벽은 없지만 중도매인을 장악하고 못 나가게 하고 있어요. 도매법인 간 경쟁이 촉진되면 서비스도 좋아질뿐더러 중도매인도 훨씬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살 수 있죠.”

양 교수는 이 밖에도 농산물 유통기능의 정상화, 합리화, 효율화를 위한 방법으로 다음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위험 선물거래 청산소를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밭떼기거래(선물거래)란 출하시기 전 미리 정한 가격으로 계약을 맺는 것을 말합니다.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 계약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해 생산자의 피해가 크죠. 청산소 도입으로 이러한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하자는 겁니다. 두 번째는 농산물 관측업무를 농촌경제연구원이 독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는데 여러 기관의 경쟁을 통해 정확성과 실효성을 제고하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통합정산기능입니다. 법인은 거래만 하고 돈은 정산회사가 독립해서 운영해 전문성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현재 시장에서는 생산자만이 4%의 수수료를 내고 있다. 생산자 수수료로 법인이 중도매인의 이자와 완납장려금까지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산자와 중도매인 모두 분담해야 수수료가 인하돼 생산자의 부담이 줄어든다고 양 교수는 설명했다.

국내 상황 고려한 유통 정책 시행돼야

▲ 가락시장은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농산물이 경매된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보통 한국의 농산물 유통 정책을 일본이나 미국하고 많이 비교해요. 그러나 저는 다른 나라와 비교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도매유통은 굉장히 잘되어 있어요. 시장에는 미국보다 신선 채소가 많고. 사람들이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 도매시장은 사실 문제가 많아요. 일본은 경매사가 농산물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예요. 그런데 자신의 결정으로 손해를 본 사람들이 발생하니까 스트레스도 엄청 받고 심지어 자살하는 경매사도 있어요.”

일본의 유통정책은 예약상대거래제를 채택하고 있다. 출하자가 사전에 농산물 가격을 제시하면 도매시장법인이 중간에서 중도매인과 가격을 조정해 경매가 아닌 방법으로 매매하는 거래방식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도매유통 전체량의 20%를 일본의 예약상대거래제와 비슷한 정가수의매매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 교수는 이미 경매제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해외나 일본의 사례를 국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잘못 진단된 유통정책의 방향은 가락시장 사태처럼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효율적인 유통조성 기능만이 유통뿐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효율화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대산농촌재단과 함께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이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에 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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