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 ⑱ 한국 불상의 기원을 찾아서

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사에 가 보셨는지? 야트막이 경사진 비탈길을 오르면 석불 하나가 우뚝 솟아오른다.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 흔히 ‘은진미륵(恩津彌勒)’이라 불린다. 미륵불은 부처가 열반한 지 56억7000만 년 뒤에 나타나는 미래불이다. 태양계와 지구 나이가 46억 년쯤 되니까,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흘러야 출현한다는 건데… 높이가 18.12m. 국내 불상 유물 가운데 가장 크다. 얼굴을 비롯해 인체 비례는 비현실적이어서 입체파나 초현실주의 묘사에 가깝다. 고려 시조 왕건의 셋째 아들인 4대 광종(재위 949∼975년)의 명으로 만들었으니, 1000여 성상(星霜) 눈비 맞으며 한민족을 보듬었다. 5월 22일은 태국이나 미얀마 같은 불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들에서 부처님 오신날이다. 우리는 음력 4월 초파일이지만, 그네들은 4월 보름을 기린다. 부처님 오신날 다르듯, 지난 4월 국보 323호로 승격된 관촉사 미륵처럼 생김도 제각각인 불상. 언제 처음 등장해 전파되며 모습이 바뀌었는지 불상 풍속사를 살펴본다.

▲ 평안남도 원오리 절터에서 출토된 6세기 고구려 불상.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 김문환

◇고구려 불상, 균형 잡힌 신체, 갸름한 얼굴에 옅은 미소의 사색 이미지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 전시실로 가보자. 강력한 기마민족의 위용이 담긴 유물 사이로 조각 소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연꽃무늬 받침대에 앉거나 선 불상들이다. 돌을 깎아 하나하나 조각한 게 아니라 흙으로 빚어 가마에서 대량으로 구워낸 소조(塑造)다. 1937년 일본인들이 발굴했는데, 출토지는 평양에서 가까운 평안남도 평원군 덕산면 원오리 절터다. 시기는 6세기 중국에서 불교문화를 주도하던 선비족의 나라, 남북조 시대 북조 국가들인 북위(北魏)나 북제(北齊)의 불상과 닮았으니 6세기로 추정된다. 대승불교에서 ‘많은 부처(佛)가 하나의 부처(佛)로 모아진다’는 천불신앙(千佛信仰)의 상징, 천불상(千佛像)의 하나다.

생김을 보자. 400여 년 뒤에 나타난 은진미륵과 전혀 다르다. 가부좌를 틀고 배 위에 손을 얹은 선정인(禪定印)의 좌상(坐像)이나 오른손을 들어 펴 보이고 왼손을 아래로 향하는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의 입상(立像) 모두 균형 잡힌 신체, 즉 이상적인 조형미가 돋보인다. 얼굴은 갸름하며 콧날은 오뚝하고, 입가에는 지을 듯 말 듯 옅은 모나리자 미소를 머금었다. 눈을 지그시 감으며 사색에 잠겼다. 불상이 원래 이런 모습인가?

▲ Ⓒ 김문환

◇우즈베키스탄 파야즈 테페 불상, 고구려 불상과 닮은꼴 

답을 얻기 위해 장소를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으로 옮긴다. 우즈베키스탄 최남단의 아프가니스탄 국경도시 테르미즈. 이곳에서 택시를 타고 10분 거리에 불교유적 파야즈 테페가 나온다. 바로 앞에 아무다리야강(옥수스강)이 흐르고, 강 건너는 아프가니스탄 발흐 지방이다. 파야즈 테페의 2∼3세기 불교 사원 탑을 장식했던 불상을 보자. 원오리 절터 불상처럼 좌대 위에 선정인 자세로 결가부좌를 틀었다.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콧날, 눈을 지그시 감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사색에 잠긴 모습도 닮은꼴이다. 통견 법의(法衣)도 원오리 절터 고구려 불상과 같다. 파야즈 테페 불상이 확연히 서양인 얼굴이란 점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불상은 이렇게 서양인 모습이었던 것일까? 불상의 기원을 찾아 남쪽으로 더 내려가 보자.

◇파키스탄 라호르 국립박물관 ‘단식하는 부처(Fasting Buddha)’

2001년 알카에다의 뉴욕 세계무역센터 비행기 공격 때, 알카에다의 본거지 아프가니스탄 종군취재를 위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캠프를 두고 현지 취재에 나섰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잠입취재에 실패하고, 파키스탄 유적 취재로 방향을 틀었다. 인도 국경의 라호르 국립박물관은 인상적으로 고풍스러운 건물만큼이나 독보적인 유물로 취재진의 발길을 붙잡았다. 파키스탄 북부 페샤와르를 중심으로 한 간다라(Gandhara) 지방 출토 불상들이다.

단연 돋보이는 불상은 보리수 아래 단식수행을 묘사한 ‘단식하는 부처’. 고행으로 앙상하게 뼈와 살가죽만 남은 부처의 모습, 뼈 위로 핏줄까지 섬세하게 드러낸 사실적인 묘사는 보는 이를 전율시킨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얼굴 생김을 뜯어본다. 갸름한 얼굴에 곱슬머리, 날카롭게 뻗은 코와 지그시 감은 큰 눈. 서양인의 외모 그대로다. 얼굴을 넘어 불상의 전체 구도를 보자. 선정인 손 모양의 결가부좌, 번뇌를 딛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깊은 사색에 잠긴 명상수행 표정. 균형 잡힌 신체와 사실적인 묘사. 1∼3세기 만들어진 이 불상은 간다라 불상의 특징을 잘 담아낸다. 간다라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고구려 원오리 절터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간다라 불상 조각기법. 누가 처음 제작했을까?

◇알렉산더 동방원정, 간다라 지방에 그리스 문화 이식

그리스 북부의 작은 역사 도시 디온(Dion)으로 가보자. 제우스를 비롯한 12신이 산다는 올림포스산이 멀리 바라다보이는 옛 마케도니아 땅 디온이 동서 역사에 의미를 갖는 이유는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더(재위 BC 336년∼BC 323년) 때문이다. 아버지 필리포스 2세(재위 BC 359년∼BC 336년)와 함께 그리스 폴리스들을 굴복시킨 알렉산더는 BC 334년 당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구현했던 페르시아 제국 정벌 출정식을 디온에서 가졌다. 정벌군은 마케도니아군 1만3000명을 주축으로 한 보병 4만8100명, 정예 마케도니아 기병 5100명 중심의 기병 6000명, 전함 120척에 승무원 3만8000명, 거기다 각 분야 학자들과 연회를 주도할 헤타이라(우리식 기생)까지 대규모였다.

디온을 출발한 알렉산더는 마르마라해를 건너 트로이에 들러 아킬레스 무덤을 참배한 뒤, 첫 교전 그라니코스강 전투에서 예상을 뒤엎고 대승을 거둔다. 이후 연전연승 행진. BC 333년 터키 남부 이수스 전투, BC 331년 이라크 과가멜라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를 2번이나 격파하며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트린다. 이어 페르시아의 속국이던 소그디아나(사마르칸트 중심의 우즈베키스탄)에서 현지 공주 록사나와 결혼식을 올린다. BC 323년 알렉산더가 33세 나이로 급사하자, 부하들이 소그디아나와 박트라(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북부) 땅에 남아 다스린다. 이어 BC 245년 그리스 총독 디오도투스가 박트라 왕국을 세운다. 그리스 문화가 이식된 박트라 왕국을 중국 역사에서 대하국(大夏國)으로 부른다. ‘간다라’라고 부르는 땅이다.

◇훈(흉노)에 밀린 월지족 쿠샨 제국, 박트라 정복해 간다라 불상 창조

중국 역사로 잠깐 눈을 돌리자. 주나라(BC 1046년∼BC 771년) 때부터 춘추시대(BC 771년∼BC 403년), 전국시대(BC 403년∼BC 221년) 한족은 북방 기마민족의 침략에 시달린다. 만리장성은 기마민족을 막기 위해 수백 년에 걸쳐 쌓은 산성을 진시황 때 연결한 거다. BC 3세기 세를 떨친 기마민족을 훈(Hun, 흉노(匈奴)는 한족이 비하해 붙인 이름)이라 부른다.

훈족이 몽골초원에서 남진하며 진나라와 한나라를 압박하고, 나아가 서진하면서 오늘날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주의 타림분지에 살던 월지(月氏)족을 밀어낸다. 고향에서 쫓겨난 월지족은 서쪽으로 이동해 알렉산더 후예의 그리스 왕국인 박트라를 무너트린다.

월지의 5부족 가운데 하나가 쿠샨(Kushan)이다. 중국에서는 귀상(貴相)이라 불렀다. 쿠샨은 인더스강 너머 펀자브를 정복하며 서북 인도까지 장악해 제국을 세운다. 쿠샨 제국은 박트라 왕국의 선진 그리스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리스 문자는 물론 신을 인간 형상으로 빚는 조각술이 대표적이다. 당시 박트라 땅에는 불교가 전파돼 있었다. 부처님이 불멸기원(佛滅紀元), 즉 열반하신 BC 544년 이후 인도에서 불교가 융성했지만, 불상을 조각하지는 않았다. 쿠샨 제국이 인간 모습의 신을 빚는 그리스 풍속을 배워 불상을 처음 만들었다.

▲ 그리스 원작을 로마시대 복제한 아폴론 상. 로마 팔라초 마시모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 김문환

◇그리스 태양신 아폴론 조각이 불상 조각의 모델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미술관으로 가보자. 부처님은 실제 어떻게 생겼을지 답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부처님은 네팔 땅 카필라성의 왕 슈도다나와 마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BC 1000년경 기마문화와 함께 인도에 진입한 산스크리트어 사용의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백인인지, 검은 피부의 토착민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불상을 처음 조각한 쿠샨 제국 사람들이 혹시 자기들 생긴 대로 불상을 조각한 것은 아닐까? 쿠샨 귀족의 얼굴 조각이 타슈켄트 미술관에 남아 있다. 콧수염이 인상적인 백인이다. 쿠샨 제국 월지족은 중국 서부에 살았지만, 뿌리는 페르시아 민족에 둔다. 그렇다면 간다라 불상은 쿠샨인의 모습일까?

로마 팔라초 마시모 박물관에서 만나는 그리스 태양신이자 학문과 예술의 수호신 아폴론을 보자. 균형 잡힌 몸매, 갸름한 두상에 금발 곱슬머리, 날렵하고 오뚝한 코, 사색에 잠긴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머금은 얇은 입술… 초기 간다라 불상은 이렇게 완벽한 조형미를 갖춘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그리스 조각을 그대로 옮겼다. 그리스 고전기(BC 480년∼BC 331년)에 완성된 스타일이다. 프랑스 파리의 기메 박물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 박물관, 일본 도쿄(東京) 박물관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박물관을 빛내는 간다라 불상이 모두 그렇다.

◇5호 16국 시대 372년 전진 왕 부견, 고구려에 불경, 불상 전파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 박물관에는 쿠샨 제국 전성기를 이끈 카니슈카왕 금화가 전시돼 있다. 그리스 문자로 자기 이름을 적은 카니슈카왕은 이상적인 제왕, 즉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불리며 2세기 실크로드를 통해 불교와 불상을 중국으로 보낸다. 한나라 2기인 동한(東漢, 23∼222년) 시기다. 하지만, 한나라는 유교를 비롯해 도교 같은 고유 사상의 뿌리가 깊었다. 불교가 불길처럼 일어난 것은 기마민족이 지배하던 5호 16국 시대(304∼439년)다.

티베트 출신 저족이 세운 전진(前秦, 351∼394년)의 3대 왕 부견(부堅, 재위 357∼385년) 역시 불교를 수호하는 전륜성왕으로 불렸다.

부견은 중국 전역에 불교를 전파시키며 372년 승려 순도를 통해 고구려 소수림왕(광개토대왕 큰아버지)에게 불경과 불상을 보냈다. 간다라 불상일 터이다. 고구려, 신라, 백제, 남북국 시대를 풍미한 이상적 아름다움과 정제된 조형미를 간직한 사색 이미지의 우리 민족 불상은 이렇게 유입된 간다라 불상 풍속을 이어받은 결과다. 세월이 흐르며 은진미륵처럼 토착화된 생김과 표정의 불상이 나타나지만, 알렉산더의 정복 발길이 머나먼 동방, 무궁화동산(槿域)에까지 잔영을 남긴 거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

편집 : 박재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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