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보수∙진보 신문의 판이한 ‘노동시간 단축 보완책’

지난 2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이다. 당장 300인 이상 사업장에 오는 7월 1일부터 적용된다. 근로시간 단축 관련 개정안은 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다. 5년이 지나 20대 국회에 와서 겨우 통과된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논쟁이 끝난 건 아니다. 개정안 통과 전후에 보수·경제신문과 진보신문은 근로시간 단축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책을 전혀 다르게 내놨다.

정부는 지난 5월 17일 ‘노동시간 단축 현장 안착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보수지와 경제지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제도 정착을 위해 기업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보수지·경제지는 ‘사용자 위한 보완책’ 촉구

<조선일보>는 다음 날인 18일 ‘실업급여 줄 돈을 '週 52시간 대책'에 쓴다’라는 기사에서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줄이기 위해 3조원 규모 일자리안정자금을 투입한 데 이어 근로시간 단축 대책은 향후 5년간 고용보험기금에서 4700억원을 빼내 쓰겠다는 내용’이라며 사업주와 근로자가 절반씩 내는 돈으로 조성하는 고용보험기금이 주로 실업급여 등에 쓰이는데 결국 노사 쌈짓돈으로 정부가 생색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5월 18일자 <조선> 실업급여 줄 돈을 '週 52시간 대책'에 쓴다. ⓒ <조선일보>

또 이에 따라 일자리가 창출되리라는 게 정부의 기대지만 자동화기기 대체로 오히려 고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마지막으로 중소·중견기업들의 반응을 전하며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가 근로시간 단축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최영기 한림대 교수의 말도 전했다.

<동아일보>는 18일자 사설 ‘근로시간 단축 부작용도 세금으로 ‘돌려막기’ 하나’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해결하겠다며 올해만 일자리안정자금 3조원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막상 기업이 요구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려달라는 목소리는 외면했다’며 <조선>과 같은 주장을 했다.

▲ 5월 18일자 <동아> '근로시간 단축 부작용도 세금으로 '돌려막기' 하나' 사설. ⓒ <동아일보>

또 일자리가 늘 것이라 생각하지만 기업은 신규채용 대신 자동화로 인력을 줄이거나 인건비가 낮은 해외로 사업장을 옮기려 할 것이라며, 노동시장 유연화를 해야 추가 고용을 꺼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일경제>도 18일 ‘노동계 눈치보나…"52시간 고집하단 안전사고" 산업현장 `멘붕`’이라는 기사에서 ‘대표적으로 산업현장에서 요구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에 대한 방향이 이번 대책에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며 ‘노동계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고용부가 노동계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고 전했다.

▲ 5월 18일자 <매경> '노동계 눈치보나…"52시간 고집하단 안전사고" 산업현장 '멘붕'' 기사. ⓒ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18일 ‘최저임금 보전에 3兆 푼 정부… 근로 단축 대책도 '현금 살포'’라는 기사에서 ‘올해 최저임금 인상분을 보전하기 위해 3조원의 예산을 투입했던 정부가 이번에도 재계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현금 살포’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며 ‘근로시간을 선제적으로 줄인 기업에 추가 혜택을 주자는 고용노동부 안이 대폭 반영됐다’고 했다.

▲ 5월 18일자 <한경> '최저임금 보전에 3兆 푼 정부…근로 단축 대책도 '현금 살포'' 기사. ⓒ <한국경제>

또 ‘모두 사업주와 근로자가 낸 고용보험기금에서 충당하기로 했다’며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시 ‘핵심 보완책’ 중 하나인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최장 1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재계의 주장을 전했다.

진보지는 ‘노동자 위한 보완책’ 촉구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같은 날인 18일 정부의 대책 발표를 단순 전달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경향> ‘노동시간 줄인 기업 신규채용시 1인당 최대 100만원 정부가 지원’, <한겨레> ‘노동시간 단축 기업, 1명당 월 최대 100만원 지원’)

<경향>과 <한겨레>는 정부가 대책을 발표하기 전부터 근로시간 단축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책을 촉구해왔다. <한겨레>는 17일 ‘‘2급 발암물질’ 철야노동에 몸도 가정도 모두 망가졌다’라는 기사에서 제조업 노동 환경을 다루며,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 강도 강화와 임금감소 등의 충격을 완화할 보완책을 제시했다.

▲ 5월 17일자 <한겨레> ''2급 발암물질' 철야노동에 몸도 가정도 모두 망가졌다' 기사. ⓒ <한겨레>

<한겨레>는 ‘개별 사업장, 개별 노동자에 대한 종합적·다각적 고민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한쪽을 눌렀을 때 나머지 한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 효과를 낳는다’며 노동자들이 정책 실효성을 느낄 수 있게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서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시간에 비례해 급여를 받는 저임금·단순 노무자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등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며 “업종에 따라 휴식권을 강제하는 제도도 고안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재광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노동자의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거래 구조가 확립되는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며 “개별 사업장 사업주나 노동자에게 부담이 모두 전가되면 답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향>도 15일 ‘노동시간 줄면 임금도 깎이나… 7월이 불안한 시내버스 기사들’이라는 기사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저임금 노동자들 삶의 질 보완책으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노동시간을 전반적으로 조정하는 과도기에 저임금·장시간 노동자들의 임금이 줄어든다면 정부가 어느 정도는 메워줘야 한다”며 “고용보험기금을 활용해 당장 생활의 압박을 받는 이들을 지원하고, 남은 과제는 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가 기업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보완책을 내놓기로 예고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정부의 대책 발표를 지지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 5월 15일자 <경향> '노동시간 줄면 임금도 깎이나…7월이 불안한 시내버스 기사들' 기사. ⓒ <경향신문>

노동시간 단축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책으로 언론사들이 내놓은 것은 이해관계에 따라 둘로 나뉜다. 보수지·경제지가 강조하는 ‘사용자를 위한 보완책’과 진보지가 강조하는 ‘노동자를 위한 보완책’이 그것이다.

보완책 검증해 갈등비용 줄여야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미칠 충격을 완화할 보완책이 필요하다. 고용보험기금을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 정말 실효성이 있을지, 고용보험기금을 쓰는 것에 대해 당사자인 노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고용보험기금의 고갈 우려는 없는지 등은 검증 대상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정말 근로시간 단축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지, 노동시장 유연화로 가는 조처는 아닌지도 논의해볼 사안이다.

또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정말 노동 강도가 세지는지, 아니면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아닌지, 사회안전망·직업훈련·휴식권 강제 등의 제도가 노동자들이 정말 원하는 노동자를 위한 보완책인지도 검증해봐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거래 구조가 확립된다고 노동자의 임금이 보전된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이러한 검증을 생략한 채, 각 언론사들이 한 편에만 서서 각자 이해관계만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사 갈등을 부추기고 노동 현장에 혼란을 가져올 뿐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데 5년이 걸렸다.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개정된 법이 적용되고 2020년에는 50~299인 사업장, 2021년에는 5~49인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된다. 지금처럼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른 보완책만 주장한다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은 2021년을 넘어 계속될 수 있다.

언론은 다양한 이해관계의 목소리를 공정하게 반영해야 한다. 노사가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보만을 취하지 않도록 해야 ‘공론장’으로서 언론의 역할도 다할 수 있다. 언론은 우리 사회의 갈등비용을 높이는 일에 기여해서는 안 된다. 노동시간 단축의 제도적 안착을 위해 각각의 주장을 검증해봐야 할 때다.


편집 : 황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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