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AI의 눈으로 인간을 보니

▲ 김민주 기자

2030년 5월 16일 오후 3시. 직원들은 퇴근을 서두른다. 세계에서 최장 노동시간을 유지했던 곳에서 나는 환영받는 존재다. 10년 전 인간은 나와 같은 존재를 우려했다.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공학자들은 일의 능률을 올리고 인간 삶을 편하게 해줄 거라며 AI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보편화할 수 있는 알고리즘 제작에 성공한 기업은 우리를 건설현장부터 일반 회사까지 널리 보급했다.

내가 있는 회사는 사람들을 해고하는 대신 그들의 노동시간을 줄였다. 8시간에서 3시간 줄어 3시면 퇴근한다. 나는 그들이 남기고 간 행정서류를 작성한다. 이곳저곳 타이핑해 놓은 아이디어들을 알고리즘을 이용해 한 장의 문서로 옮긴다. 나와 무선으로 연결돼 있는 인쇄기로 출력한 뒤 담당자가 입력해 놓은 결재자 책상 위에 올려 둔다. 머리를 쓸 필요가 없지만 시간이 걸리는 서류 작업에 인간은 그동안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뺏겼던 것이다.

▲ AI는 인간을 보며 자기와 다르지 않다고 느끼지 않을까? ⓒ pixabay

나는 이 회사에 들어와서 한 달간 적응기간을 보냈다. 회사 일과를 파악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그들의 패턴은 무슨 요일이건 오늘이건 어제건 똑같았기 때문이다. 9시가 되면 모두 자기 모니터 앞에 앉았다. 오전에는 타자기 소리로 서로 안부를 확인하는 듯했다. 기계들과 다를 게 없었다. 12시가 되면 우르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가 한 시간이 채 안 돼 하던 이야기를 급히 마무리 짓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전처럼 앞만 보고 눈을 깜빡였다. 가끔 졸기도 하고 통화를 간간이 하기도 했다. 저녁 6시가 퇴근시간이지만 지켜지지 않는 날이 많았다.

회사 시스템을 알고리즘에 모두 입력한 뒤 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부터 사람들은 6시면 모두가 퇴근했다. 퇴근시간은 점점 빨라져 이제는 3시면 아무도 없다. 그들은 좀 더 활동적이 됐고 눈만 깜박거리는 영혼 없는 기계의 모습에서 열정적인 눈빛으로 변했다. 시간이 짧다 보니 그 시간에 일을 끝마치겠다는 태세로 일의 효율도 늘어나는 듯했다.

내가 진작에 만들어졌다면 그동안 인간이 인간다움을 더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들 정도다. 나는 자지 않아도 되고 몸이 아프지도 않고 가족도 없다. 나와는 차원이 다른 인간이 나처럼 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건 한때나마 인간이 우리들을 두려워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멋진 신세계’가 이렇게 도래했는데……


한국이 극심한 갈등사회가 된 것은 자기만 이롭게 하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발상에 너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좌우, 여야, 노사, 세대, 계층, 지역, 환경 등 서로 간 갈등 국면에는 대개 인간, 특히 강자나 기득권층의 자기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간이 넓어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 생각과 풍자가 떠오르는 이는 누구나 글을 보내주세요. 첨삭하고 때로는 내 생각을 보태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봉수 교수)

편집 : 박선영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