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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는 멍 때리기를 갈망한다

기사승인 2018.04.24  23: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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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제3회 한강 멍 때리기 대회

올해 11회를 맞는 ‘멍 때리기 대회’는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하자’는 의도로 웁쓰양컴퍼니 대표 겸 예술가인 웁쓰양이 2014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처음 개최했다.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3번째이며, 국내를 포함해 중국, 대만, 네덜란드 등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해마다 참가자가 늘어 올해는 150명을 선발하는데 2750명이 지원해 18: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2016년 가수 크러쉬가 1등상을 받고, 지난해는 고등래퍼 MC그리가 참가해 화제가 됐다. (편집자)

지난 22일 여의도 한강공원 너른들판에서 웁쓰양컴퍼니와 서울시가 주최하는 ‘2018 한강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멍 때리기 대회는 취재 나온 기자들과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접수대를 향한 참가자들의 긴 줄이 이어졌고, 저마다 개성을 살려 입은 참가자들의 의상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 2018년 한강 멍때리기 대회 포스터. 올해는 비가 올 것을 우려해 오전으로 앞당겨 행사가 진행됐다. @ 웁쓰양컴퍼니

어린아이부터 수험생, 구의원후보까지

참가자들은 어린아이부터 외국인까지 성별, 연령, 인종이 다양했다. 15시간 넘게 택배 일을 하다 새벽에야 겨우 귀가해 쉬고 싶다는 택배 기사, 쇼트트랙 선수, 수능 207일 남겨둔 수험생, 아이 셋을 키우느라 멍 때릴 여유조차 없는 주부 등 참가자들의 지원 동기는 각양각색이었다. 이들은 교복과 의사 가운, 택배 기사 조끼 등 자신의 직업, 위치, 상태를 나타내는 의상을 입고 출전했는데, 이에는 하나의 작은 사회와 도시를 보여주기 위한 주최자의 목적이 숨어있었다. 멍 때리기 대회를 개최한 웁쓰양은 “사람들의 직업군을 통해 작은 도시를 형상화하고 싶었다”며 “바쁜 도시민과 멈춰있는 사람을 통해 시각적 대조를 이루고자 했다”고 뜻을 밝혔다.

   
▲ 구의원 후보로 출마하기 전 <오마이뉴스>에서 일한 적 있다고 말한 곽승희 씨. @ 김미나

“제가 지금 지방선거 구의원 후보로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어요. 도와주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저 혼자 해결해야 할 부분도 많고 너무 힘들어서 이번 기회에 대놓고 쉬어보자는 의도로 신청하게 됐어요.”

시흥시 금천구 시흥1⋅4동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구의원 후보 곽승희(31⋅여) 씨는 “평소 명상을 즐겨 하는데 선거 운동하는 동안 한 번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곽 씨는 “멍 때리는 것처럼 청년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면서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며 구의원에 출마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당선이 된다면 동네에서 멍 때리기 대회를 열고 싶다”고 덧붙였다.

   
▲ 이세찬 군은 “평소에 멍을 자주 때려서 ‘멍 때리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있다”고 말했다. @ 김미나

갓을 쓰고 대회장에 나타난 이세찬(18⋅용인외대부고 2년) 군은 “학교에서 공부만 해야 하는 따분한 일상을 보내는 중 SNS에서 ‘멍 때리기 대회’ 홍보 글을 보고 지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들이 공부 안하고 멍 때리면 걱정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오히려 아들보다 멍을 더 많이 때리기 때문에 아들을 이해한다”며 “아들의 도전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 전날 낚시를 다녀온 문상렬(34⋅일산) 씨는 “멍 때리는 것은 낚시와 같은 행위"라고 답했다. @ 김미나

“멍 때리기 너무 열심히 하지마세요”

   
▲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고 새벽에야 겨우 귀가한다고 말한 드림 택배 기사. @ 웁쓰양컴퍼니

멍 때리기 대회 참가자들은 90분 동안 오직 ‘멍’한 상태만 유지해야 한다. 대회 중 수면, 휴대폰 사용, 음식물 섭취, 잡담을 하면 바로 퇴장이다. 참가자는 15분마다 심박수를 확인하고, 심박수가 높게 나오면 경고를 받는다. 대회를 관람하는 시민들은 대회장 한쪽에서 참가자들이 직접 지원 이유를 적어 넣은 게시판을 보며 인상적인 참가자들에게 투표를 하고, 최다 득점자 중에서 안정적인 심박 그래프를 보인 이들의 점수를 합산해 1~3등을 가린다.

   
▲ 참가자의 심박수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참가자의 머리띠에는 ‘올해는 합격’이라고 쓰여 있다. @ 김미나

대회가 시작되자 저마다 ‘멍 때리기’를 위한 최적의 자세를 취했다. 접이식 캠핑용 의자와 대형 파라솔을 가져온 이부터 대놓고 누워 수학능력시험지를 얼굴에 덮거나 반려동물인 거북이나 비둘기와 함께 멍을 때리는 사람도 있었다. 대회 중간에는 저승사자와 포구대장이 참가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규정을 어기는 사람이 없는지 감시했다.

   
▲ 저승사자와 포구대장이 규율을 어긴 참가자에게 경고할 때는 노란색 손팻말을 보여주고 퇴장 표시로는 빨간색 손팻말을 보여준다. @ 김미나

“대회 지원할 때 ‘아무것도 안 하겠다, 열심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오래 앉아서 자세를 바꾸지 못하고 있으니깐 순간 힘들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힘든데도 참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완주하려고 애쓰지 말고 일어나자. 나와의 약속을 지키자. 그래서 기권했어요.”

대회에서 3번째로 탈락한 최지인(28⋅여) 씨는 스스로 경기를 포기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는 남은 참가자들을 향해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 최지인 씨는 임용고시 준비생인 참가자에게 투표한 뒤 "그를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 김미나

최 씨는 임용고시에 3번 도전한 끝에 경기도 포천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사로 3년째 일해오고 있다. 그는 “임용고시 준비하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제가 살면서 깨달은 점이 있어요. 내가 굉장히 애쓰고 노력하고 있는데 스스로에게 그 말을 못 해줬더라고요. 평소 모범생 콤플렉스가 있어서 매사에 목표를 이루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편이었거든요. ‘수고했다’ 그 말을 저에게 하는 순간, 제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멍 때리기는 내 삶에 단비”

올해 멍 때리기 대회에서 초등학교 6학년 박세현 군은 특별상을, 쇼트트랙 선수 이준영 군은 3등을, 초등학교 5학년 한동우 군은 2등을 차지했다. 1등은 중학교 2학년 양희원 양에게 돌아갔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1~3등을 차지한 건 4년 만이다.

   
▲ 1등을 한 양희원 양은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멍 때리는 것도 열심히 하겠다”며 내년에도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밝혔다. @ 김미나

“오늘은 제게 가장 행복한 날로 남을 것 같아요. 영어 학원에서 멍을 때리면 선생님한테 맨날 혼났는데 이렇게 1등을 하니깐 너무 기뻐요. 멍 때리는 게 제 적성인 것 같아요.”

1등을 한 성남시 은행중학교 2학년 양희원(15) 양은 “학교 시험 기간이라서 일부러 교과서를 대회에 가져나왔다”며 “공부하기 싫어서 교과서를 던져 버리는 느낌으로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하루하루 촉박한 시간 속에 멍 때리는 건 단비 같은 의미였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 시험공부하기 싫어서 대회에 참석했다고 지원동기를 적은 144번과 145번 참가자. @ 김미나

멍 때리기 대회를 기획한 웁쓰양은 이번 대회에서 인상 깊은 점으로 ‘청소년 참가자’를 꼽았다. 매년 청소년 참가자가 있었지만 예년보다 유난히 그 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교복만 입고 왔다면 이번에는 학교 시험지나 교과서를 가져나오는 등 보다 적극적인 행위를 펼쳤다. 웁쓰양은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의 공부 스트레스가 점점 더 높아지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멍 때리기 참여자보다 주최 이유에 주목

“한국에서 멍 때리는 것은 시간낭비 개념이었어요. 그러나 대회 이후에는 멍 때리는 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다는 인식으로 변화하고 있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상을 준다는 자체가 아이러니거든요.”

   
▲ 저승사자 의상을 입고 있는 웁쓰양. 그는 “참가자들이 1등을 하기 위해서 애쓰기보다 대회 자체를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 김미나

멍 때리기 대회가 시작되고 4년째 접어들었다. 웁쓰양은 “멍 때리기 대회가 인기가 많아진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멍 때리기가 회자되는 것이 무조건 좋은 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웁쓰양은 “멍 때리기 대회에서 참가자에게만 집중하기보다 도심 한복판에서 멍 때리는 집단이 등장한 것 그 자체에 주목해주길 바란다”며 “대회를 바라보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일렀다.

“저희가 열심히 일을 하면 돈을 벌잖아요. 저는 열심히 일한 만큼 시간도 벌게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보통 우리는 시간을 벌면 다른 일들로 그 시간을 채워요. 돈을 벌었을 때는 약간의 사치도 허락하면서 자신을 위한 시간에는 사치를 부리지 않아요. 가끔은 시간에 사치를 부려도 나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전 세계인들이 한날한시에 멍 때리는 상상

   
▲ 국내를 넘어 해외로 빠르게 확산해 가는 멍 때리기 대회. 올해는 가족단위 팀과 청소년이 많이 참가했다. @ 웁쓰양컴퍼니

웁쓰양은 “중국, 대만, 홍콩, 네덜란드 등 멍 때리기 국제 대회가 많이 치러지고 있는 시점에서 세계 멍 때리기 대회의 날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포부를 밝혔다. 요즘 그는 즐거운 상상 중이다.

“전 세계인이 한날한시에 멍 때리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어요. 꿈은 클수록 좋다고 하잖아요. 전국을 넘어 전 세계로 다 같이 즐겁고 재밌게 멍 때릴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라요.”


편집 : 김미나 기자

김미나 기자 wlswnals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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