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미투’와 나

나는 방관자였다. 남자 중학교에 다니던 나는 같은 반 학생들이 여선생님 수업 시간에 맞춰 교실 앞 대형 TV 모니터에 ‘야동’을 틀어놓았을 때 ‘하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 대학 신입생 시절 같은 과 남자 선배들이 지나가던 여학우의 얼굴과 몸매를 노골적으로 품평할 때 ‘그만하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런 침묵과 방관이 은밀한 성희롱과 성폭력을 확산시키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서지현 검사가 방송에 나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행동하지 못했던 ‘비겁한 나’를 돌아봤다.

▲ 서지현 검사가 2018년 1월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가해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 JTBC <뉴스룸>

침묵했던 우리, 소극적 공범 아니었나

‘나도 당했다’, ‘나도 고발한다’고 외치는 ‘미투(MeToo)’는 용기의 언어다.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의 성추행을 고발한 뒤 용기의 언어는 문화예술계와 정계, 학교와 기업 등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침묵하던 피해자들이 꽁꽁 싸맸던 상처를 드러내 보인다. 이들을 지지하며 연대하겠다는 ‘위드유(With You)’ 선언도 활발하다. 지난날 침묵의 방관자였던 자신을 반성하며 ‘더 이상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반면 미투운동에 회의와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미투운동이 악용될 수 있고,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운동이 남녀갈등을 부추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성폭력은 일부 남성의 일탈일 뿐인데, 지나친 혐오 분위기 속에서 죄 없는 남성들까지 ‘잠재적 가해자’로 몰린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지 따져보자. 우리 사회의 권력형 성폭력은 특정 집단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정관계에서는 고위층이, 회사에서는 상사가, 학교에서는 교수나 교사가, 공연계에서는 연출자, 문단에서는 유명 문인이 각각 인사권, 평가권, 배역 선정권, 추천권 등 갖가지 ‘권력’을 미끼로 힘없는 상대를 괴롭힌다.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사적 영역에서까지 휘두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이런 만행의 피해자는 여성뿐 아니라 성소수자와 남성 등 모두가 될 수 있다. 미투운동으로 권력형 성폭력이나 갑질 문화에 제동이 걸린다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다. 일상 속의 성평등과 민주주의의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막연한 ‘악용론’ 등으로 이 운동의 의미를 흐리는 것은 옳지 않다.

‘펜스룰’로 도망가는 건 부끄러운 일

어떤 이들은 사소한 실수로 무고를 당할까 두려우니 ‘펜스룰’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펜스룰은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자기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는 따로 밥을 먹지 않겠다고 말한 데서 나온 용어다. 펜스룰은 역설적으로 기울어진 성별 권력 구조를 드러낸다. 대다수 조직의 상층부를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사회에서 펜스룰을 거론하는 것은 여성을 배제하겠다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남성이라면, 미투운동이 반짝 관심을 끄는 뉴스로 끝나지 않고 사회개혁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자고 말하는 게 옳다. 피해자들을 위해 법적·심리적 지원 체계를 만드는 일, 2차 가해나 무고한 피해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언론 보도 등에서 신중을 기하게 하는 일, 학교와 언론을 통해 올바른 성 인식이 자리 잡도록 교육하는 일 등이 그중 일부가 될 것이다.

▲ 타임즈업(Time's Up)은 미투운동을 주도한 미국 할리우드 배우와 작가, PD가 힘을 합쳐 2018년 1월 1일 결성한 단체다. 미국 전역의 직장 내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 해소를 목표로 한다. ⓒ ABC <굿모닝 아메리카>

미국 영화계에서 시작된 운동의 이름처럼 타임즈 업(Time's Up), 이제 나쁜 권력자의 시대는 끝났다. 피해자 혼자 눈물 흘리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용기를 내 고발하는 사람들 옆에 많은 동지가 나란히 서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미투’에 ‘위드유’로 답하고, ‘타임즈 업’을 함께 외칠 시간이다.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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